[다시! 제주문화] ② 평화와 공존의 여성신화 "우리의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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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적 면모…자주적으로 운명을 개척한 당당한 여신들
"남성 중심 세계 벗어나 자연과 공존 추구, 여성성 회복"
제주에는 유독 여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신화가 많다.
제주도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설문대할망.
관광객들도 제주 여행을 하면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설문대할망 신화는 주요 제주신화가 전승되는 '제주큰굿'이 아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간신히 그 명맥을 이어왔다.
혹자는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전설·설화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많은 제주도민을 비롯해 연구자들은 설문대할망을 제주 섬을 만든 '창조의 여신'으로 생각한다.
즉, 제주도와 한라산·오름이 형성된 배경을 말해주는 '창조 신화'라는 것이다.
설문대할망은 거구(巨軀)의 여신으로 알려졌는데, 도대체 얼마나 크길래 한라산과 오름 등 제주 섬을 만들었다는 것일까.
설문대할망은 바다를 건너 육지와 왕래할 때 바다 깊은 곳도 무릎까지밖에 차지 않았고, 치맛자락에 흙을 담아다가 한라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산을 만들다가 치마의 터진 구멍 사이로 흘린 흙이 제주 섬 곳곳에 있는 360여개의 오름이 됐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한라산 봉우리를 툭 떼어 던지니 그게 산방산이 됐고, 산꼭대기 웅덩이가 진 곳이 백록담이 됐다고도 한다.
실제 설문대할망의 키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데 '한라산을 베고 누우면 다리가 제주 앞바다 관탈섬에 걸쳤다'는 구절이다.
한라산 정상에서 소관탈섬까지는 약 40㎞, 대관탈섬까지는 약 43㎞ 정도다.
설문대할망이 적어도 40㎞(4만m)가 넘는 엄청난 거구였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나라 신화에서도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춘 신들을 '거인'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곤 했는데, 마찬가지로 설문대할망의 큰 키 역시 일종의 상징적 표현으로 보인다.
설문대할망과 관련한 창세신화 흔적도 눈길을 끈다.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민간에서 조각조각으로 짧게 나뉘어 전해지곤 했는데, 1980년 제주시 오라동에서 채록한 설화 등에 설문대할망이 처음으로 세상을 만들었다고 하는 창세적 요소가 드러난다.
아득한 옛날 천지가 붙어 있던 혼돈의 시기에 설문대할망이 하늘을 밀어 올려 하늘과 땅을 분리했고 이어 제주 섬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천지 분리와 국토형성이라는 창세신화적 면모가 설문대할망 이야기에 들어가 있다.
창조의 신을 넘어 창세신으로서 설문대할망의 위상을 재조명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설문대할망의 죽음에 대해선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설문대할망이 자식인 오백명의 아들(일명 '오백장군')들을 위해 죽을 쑤다가 죽솥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한라산 산정호수인 '물장오리'의 물이 얼마나 깊은지 알아보려고 들어갔다가 그곳에 빠져 사라졌다는 이야기 등이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에 의해 구전되는 과정에서 변형이 이뤄진 것이다.
선후관계를 떠나 연구자들은 설문대할망 신화가 쇠퇴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변형됐고, 설문대할망의 '죽음'에서 여성 중심의 사회가 남성 중심의 사회로 변화된 역사적 변천 과정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여신들도 있다.
제주신화 중 가장 매력적인 여주인공 중 하나인 '자청비'다.
제주큰굿 '세경본풀이'를 통해 전해지는데, 용기와 미모·지혜를 갖춘 자청비가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하늘 옥황(玉皇)의 문도령과 사랑의 결실을 보는 이야기다.
자청비는 권위적인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여성 영웅'과 같다.
자주적으로 행동할 뿐만 아니라 위기 상황에선 적극적으로 기지를 발휘해 남성을 리드한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자청비의 여정은 험난했다.
남장을 하고 문도령과 글공부를 하러 떠나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지만 금세 이별하게 된다.
어렵게 문도령과 만나 혼례를 치른 뒤에도 남편 문도령이 하늘 옥황 선비들의 반란으로 목숨을 잃는다.
자청비는 서천꽃밭의 환생꽃과 멸망꽃을 따다가 문도령을 살리고, 하늘의 난리를 막는 등 커다란 공을 세우게 된다.
하늘 옥황의 천지왕은 하늘나라의 기름진 땅을 나눠주겠다며 하늘에서 같이 살자고 했지만, 자청비는 끝내 거절한다.
자청비는 "하늘님아 상을 내리시겠다면, 부디 제주 땅에 내려가서 심을 오곡의 씨를 내려주시옵소서"라고 간청한다.
여러 가지 곡식 종자를 얻어서 땅으로 내려온 자청비는 농경의 신이 돼 사람들이 풍년 농사를 짓도록 돕는다.
자청비는 사랑과 농경의 신이자 자연의 생명을 주재하고 가난한 백성을 살리는 생명의 신이다.
풍부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자청비의 캐릭터 덕분에 세경본풀이는 연극과 뮤지컬 등으로 각색돼 많이 공연된다.
'삼공본풀이'에서 운명을 관장하는 신이 된 가믄장아기 역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가믄장아기는 누구 덕에 사느냐는 부모의 물음에 순종적으로 '부모님 덕에 산다'고 대답하는 언니들과는 달리 '내 덕에 산다'고 말을 하며 당당하게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간다.
집에서 쫓겨나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남성과 결혼해 부자가 되고 부모와 재회한다.
그리고 운명의 신 전상신으로 좌정한다.
'마누라본풀이'에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남자'라고 '여자'를 깔보던 마마(천연두)신이 삼승할망의 위용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외에 당본풀이에서도 여성신이 남성신과 대결해 당당히 이기고 좌정하는 등 수많은 여신이 등장한다.
여신을 숭배하는 관념은 전 세계적으로 자연을 숭배하고 자연과의 공존을 추구하는 원시적 상상력의 발현이다.
하지만 여성 중심의 모계사회가 남성 중심의 부계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바뀌게 된다.
다른 나라의 신화를 보면 여신에 의한 천지창조 이후 힘센 남성신이 등장하면서 여신은 점차 영웅의 어머니와 같은 보조적인 존재로 역할이 작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남성신에 의한 지배, 인간 세상을 차지하기 위한 신들의 경쟁 등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신화가 재편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남성 중심의 신화체계로 재편돼 여성신화가 매우 빈약한 편이다.
반면, 제주에는 모계 중심 사회의 신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여성신화가 풍부히 남아있다.
허남춘 제주대 국문과 교수는 "인간사회는 애초 모계 중심 사회였다.
대지와 자연을 중시하던 모계사회에서 가부장적이고 권력과 위계를 중시하는 부계사회로 넘어간 뒤 전쟁과 자연 파괴가 잇따랐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힘으로 다투는 남성 중심, 경쟁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평화와 공존의 여성성을 회복해야 할 때"라며 "이러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제주의 여성신화에 주목해야 한다.
제주신화가 우리의 오래된 미래"라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설문대할망과 제주신화'(허남춘 저), '조근조근 제주신화 1·2·3'(여연·신예경·문희숙·강순희 저) 등 책자를 참고해 제주신화를 소개한 것입니다.
]
/연합뉴스
"남성 중심 세계 벗어나 자연과 공존 추구, 여성성 회복"
제주에는 유독 여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신화가 많다.
제주도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설문대할망.
관광객들도 제주 여행을 하면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설문대할망 신화는 주요 제주신화가 전승되는 '제주큰굿'이 아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간신히 그 명맥을 이어왔다.
혹자는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전설·설화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많은 제주도민을 비롯해 연구자들은 설문대할망을 제주 섬을 만든 '창조의 여신'으로 생각한다.
즉, 제주도와 한라산·오름이 형성된 배경을 말해주는 '창조 신화'라는 것이다.
설문대할망은 거구(巨軀)의 여신으로 알려졌는데, 도대체 얼마나 크길래 한라산과 오름 등 제주 섬을 만들었다는 것일까.
설문대할망은 바다를 건너 육지와 왕래할 때 바다 깊은 곳도 무릎까지밖에 차지 않았고, 치맛자락에 흙을 담아다가 한라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산을 만들다가 치마의 터진 구멍 사이로 흘린 흙이 제주 섬 곳곳에 있는 360여개의 오름이 됐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한라산 봉우리를 툭 떼어 던지니 그게 산방산이 됐고, 산꼭대기 웅덩이가 진 곳이 백록담이 됐다고도 한다.
실제 설문대할망의 키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데 '한라산을 베고 누우면 다리가 제주 앞바다 관탈섬에 걸쳤다'는 구절이다.
한라산 정상에서 소관탈섬까지는 약 40㎞, 대관탈섬까지는 약 43㎞ 정도다.
설문대할망이 적어도 40㎞(4만m)가 넘는 엄청난 거구였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나라 신화에서도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춘 신들을 '거인'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곤 했는데, 마찬가지로 설문대할망의 큰 키 역시 일종의 상징적 표현으로 보인다.
설문대할망과 관련한 창세신화 흔적도 눈길을 끈다.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민간에서 조각조각으로 짧게 나뉘어 전해지곤 했는데, 1980년 제주시 오라동에서 채록한 설화 등에 설문대할망이 처음으로 세상을 만들었다고 하는 창세적 요소가 드러난다.
아득한 옛날 천지가 붙어 있던 혼돈의 시기에 설문대할망이 하늘을 밀어 올려 하늘과 땅을 분리했고 이어 제주 섬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천지 분리와 국토형성이라는 창세신화적 면모가 설문대할망 이야기에 들어가 있다.
창조의 신을 넘어 창세신으로서 설문대할망의 위상을 재조명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설문대할망의 죽음에 대해선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설문대할망이 자식인 오백명의 아들(일명 '오백장군')들을 위해 죽을 쑤다가 죽솥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한라산 산정호수인 '물장오리'의 물이 얼마나 깊은지 알아보려고 들어갔다가 그곳에 빠져 사라졌다는 이야기 등이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에 의해 구전되는 과정에서 변형이 이뤄진 것이다.
선후관계를 떠나 연구자들은 설문대할망 신화가 쇠퇴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변형됐고, 설문대할망의 '죽음'에서 여성 중심의 사회가 남성 중심의 사회로 변화된 역사적 변천 과정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여신들도 있다.
제주신화 중 가장 매력적인 여주인공 중 하나인 '자청비'다.
제주큰굿 '세경본풀이'를 통해 전해지는데, 용기와 미모·지혜를 갖춘 자청비가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하늘 옥황(玉皇)의 문도령과 사랑의 결실을 보는 이야기다.
자청비는 권위적인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여성 영웅'과 같다.
자주적으로 행동할 뿐만 아니라 위기 상황에선 적극적으로 기지를 발휘해 남성을 리드한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자청비의 여정은 험난했다.
남장을 하고 문도령과 글공부를 하러 떠나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지만 금세 이별하게 된다.
어렵게 문도령과 만나 혼례를 치른 뒤에도 남편 문도령이 하늘 옥황 선비들의 반란으로 목숨을 잃는다.
자청비는 서천꽃밭의 환생꽃과 멸망꽃을 따다가 문도령을 살리고, 하늘의 난리를 막는 등 커다란 공을 세우게 된다.
하늘 옥황의 천지왕은 하늘나라의 기름진 땅을 나눠주겠다며 하늘에서 같이 살자고 했지만, 자청비는 끝내 거절한다.
자청비는 "하늘님아 상을 내리시겠다면, 부디 제주 땅에 내려가서 심을 오곡의 씨를 내려주시옵소서"라고 간청한다.
여러 가지 곡식 종자를 얻어서 땅으로 내려온 자청비는 농경의 신이 돼 사람들이 풍년 농사를 짓도록 돕는다.
자청비는 사랑과 농경의 신이자 자연의 생명을 주재하고 가난한 백성을 살리는 생명의 신이다.
풍부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자청비의 캐릭터 덕분에 세경본풀이는 연극과 뮤지컬 등으로 각색돼 많이 공연된다.
'삼공본풀이'에서 운명을 관장하는 신이 된 가믄장아기 역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가믄장아기는 누구 덕에 사느냐는 부모의 물음에 순종적으로 '부모님 덕에 산다'고 대답하는 언니들과는 달리 '내 덕에 산다'고 말을 하며 당당하게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간다.
집에서 쫓겨나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남성과 결혼해 부자가 되고 부모와 재회한다.
그리고 운명의 신 전상신으로 좌정한다.
'마누라본풀이'에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남자'라고 '여자'를 깔보던 마마(천연두)신이 삼승할망의 위용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외에 당본풀이에서도 여성신이 남성신과 대결해 당당히 이기고 좌정하는 등 수많은 여신이 등장한다.
여신을 숭배하는 관념은 전 세계적으로 자연을 숭배하고 자연과의 공존을 추구하는 원시적 상상력의 발현이다.
하지만 여성 중심의 모계사회가 남성 중심의 부계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바뀌게 된다.
다른 나라의 신화를 보면 여신에 의한 천지창조 이후 힘센 남성신이 등장하면서 여신은 점차 영웅의 어머니와 같은 보조적인 존재로 역할이 작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남성신에 의한 지배, 인간 세상을 차지하기 위한 신들의 경쟁 등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신화가 재편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남성 중심의 신화체계로 재편돼 여성신화가 매우 빈약한 편이다.
반면, 제주에는 모계 중심 사회의 신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여성신화가 풍부히 남아있다.
허남춘 제주대 국문과 교수는 "인간사회는 애초 모계 중심 사회였다.
대지와 자연을 중시하던 모계사회에서 가부장적이고 권력과 위계를 중시하는 부계사회로 넘어간 뒤 전쟁과 자연 파괴가 잇따랐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힘으로 다투는 남성 중심, 경쟁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평화와 공존의 여성성을 회복해야 할 때"라며 "이러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제주의 여성신화에 주목해야 한다.
제주신화가 우리의 오래된 미래"라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설문대할망과 제주신화'(허남춘 저), '조근조근 제주신화 1·2·3'(여연·신예경·문희숙·강순희 저) 등 책자를 참고해 제주신화를 소개한 것입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