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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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선진국에서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약초 재배를 장려했습니다. 많은 정성과 정교한 농법이 필요한 약초입니다. 그런데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몇몇 약초 재배업자들이 과다한 농약과 화학비료를 써 대량 재배하여 건강식품으로 제조해 백화점에 납품하게 됐습니다. 백화점에서는 부작용이 전혀 없는 건강식품으로 소개하며 판매했는데 해당 건강식품을 복용한 고객들에게 큰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백화점들은 잔류 농약 검사 등 성분 검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기에 납품업자들에게 속은 피해자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감독 당국은 판매사원들이 구매자들에게 해당 건강식품의 위험 가능성을 알렸는지 여부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했습니다. 구매자들도 '부작용 없는 건강식품'이라는 안내 문구나 말만 믿고 신청서 상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점을 간과했으니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이번 사모펀드 사태가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펀드 투자는 믿을 수 있는 전문가에게 자금 운용을 맡기는 것입니다. 금융 선진국에서는 사모펀드가 대형 금융회사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판매되려면 수년간에 걸쳐 펀드의 운용 능력과 위험관리 시스템이 검증돼야 하며, 한국의 외국계 은행들도 제대로 된 투자 이력이 없는 펀드는 판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보다 높은 판매수수료는 고객의 자금을 넘겨줄 곳(펀드)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인지에 대한 판단 비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단순히 고객을 설득한 대가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운용 실력이 검증된 펀드라 할지라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기에 선진 금융기관은 특정 고객 대상 동일 날짜에 동일 펀드를 자산의 일정 비중 이상으로 판매할 수 없도록 시스템적으로 방지하고 있습니다. 금융상품 투자 이익은 위험 관리에 대한 보상이며 야구 경기 타자가 타율을 높이듯이 평균 수익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관리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펀드 취급 역사가 100년이 된 미국은 펀드가 중산층의 주요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개인들은 대개 퇴직연금의 주요 운용 수단으로 펀드 투자를 시작하며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운용 실력이 검증된 펀드를 선별해 금융 시장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 투자하도록 안내 받습니다.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을 위해 나무를 심듯이 펀드를 가입합니다.

반면 펀드 취급 역사가 20년 남짓한 한국에서는 공모 펀드가 거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보약도 잘못 취급하면 독약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터넷 뱅킹 펀드 가입 페이지에는 최근 수익률이 높은 펀드를 간판처럼 내세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정 펀드로 과도하게 자금이 쏠릴 경우 주가 하락 시 환매 요청도 많아 안정적인 자금 운용이 어렵고 이는 수익률 저조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펀드 판매사가 선취 수수료 취득을 위해 자주 펀드를 교체하도록 유도함에 따라 투자 수익을 쌓아가기 어렵습니다.

공모 펀드가 신뢰를 잃은 자리에 주식형 자문형 랩이 들어왔고 이 또한 과도한 쏠림 투자로 인해 큰 손실이 발생하면서 신뢰를 잃었습니다. 이후 ELS(주가연계증권)가 대세 상품이 됐습니다. 주기적인 상품 교체를 통해 수수료 수입이 확보되고 판매 및 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한 정기예금처럼 확정 수익을 받을 수 있기에 고객들도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ELS는 가입자가 많아 언론에서 ‘국민 재테크 상품’이라고도 불렸는데 발행한 증권사가 부도날 경우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금리와 금융시장 안정 상황이 지속되자 채권 금리와 금융시장의 변동성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ELS 수익률이 계속 하락해매력을 잃게 됐습니다. 연계되는 기초자산(주가지수) 숫자를 늘림으로써 수익률 저하를 방어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지속적인 수수료 수입 확보를 위해서는 ELS를 대체할 수 있는 상품이 필요했습니다. '고수익이 보장되는 안전한 상품'으로 제시된 사모펀드는 가뭄에 물 만난 격이었습니다.

사모펀드 사태는 원금 보장 상품을 원하는 가장 보수적 성향의 고객들에게 '절대 안전한 상품'으로 대규모 판매가 이뤄졌기에 금융회사 직원들과 일부 피해자들만 알고 있던 PB 영업의 문제점이 밖으로 크게 드러난 것입니다.

고객의 금융자산을 관리하는 PB(프라이빗뱅커)는 재무 주치의로 불립니다. PB가 생명을 다루는 의사처럼 자산관리에 필요한 합당한 실력을 갖추고 고객 자산을 정교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하려면 관련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는 운전면허의 필기시험과 같은 것이기에 PB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PB는 고객의 자산관리자로서 고객별 투자능력(자산 수준과 성향)에 따라 맞춤식 자산 배분을 하고 개별 금융상품 위험은 분산 투자를 통해 상쇄하고 시장 변동성 위험은 장기 투자를 통해 극복하는 방식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의 PB 영업은 대부분 비전문가에 의해 주도되면서 PB들을 자산관리자가 아닌 판매 목표 앞에 줄 세워지는 단순한 판매사원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장의 수수료 수입 확대에 초점이 맞춰진 PB 영업은 언젠가는 폐해가 크게 발생할 거대한 폭탄 돌리기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9년 9월 말 기준 국내 생명보험회사들의 방카슈랑스 수입보험료(초회보험료)가 4조 8287억원으로 지난해 동기(3조 5011억원) 대비 37.9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은행들이 사모펀드 사태에 따른 수수료 이익 만회를 위해 방카슈랑스 판매를 빠르게 늘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편에서 계속.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연정 CFA한국협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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