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인천시 등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지난해 10월 시와 부평구에 부평 미쓰비시 줄사택 보존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고 보존을 권고했다.
문화재청은 미쓰비시 줄사택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된 노동자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근대 문화유산이라고 평가하며 "시대적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보존 및 활용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부평구는 해당 공문을 받은 지 3개월이 넘게 지나도록 줄사택을 보존할지, 아니면 철거할지조차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애초 줄사택 철거에 무게를 두고 주차장 조성 사업을 벌였지만, 문화재청 권고를 무시한 채 철거 사업을 진행하기는 다소 부담스럽다.
주차장 사업을 취소하고 줄사택을 보존할 경우 사업 예산이 이중으로 들어갈 수 있다.
부평구는 줄사택을 철거하고 이 땅에 43면 규모 주차장을 조성하겠다며 시비 20억원과 구비 20억원을 합쳐 40억원을 확보해 이 중 30억원을 부지 매입 비용으로 썼다.
줄사택 보존을 위해 주차장 조성 사업을 취소할 경우 시비 20억원을 반납해야 할 수도 있다.
주차장을 조성하겠다는 주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근에 다른 대체 시설을 만들려면 추가로 50억원의 예산도 필요하다.
부평구는 결국 줄사택의 합리적인 처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전문가·주민·구의원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또 관련 부서 직원들로 실무협의회를 구성하고 줄사택 보존 결정 시 필요한 후속 조치를 논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평구가 애초에 의견 수렴을 제대로 했더라면 지금과 같이 예산 부족 문제로 보존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연경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주차장 조성과 줄사택 보존을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달라고 2년 넘게 이야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제라도 보존 여부를 고민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애초부터 왜 하필이면 줄사택 부지에 주차장을 조성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쓰비시 줄사택은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이 관리하는 군수물자 공장인 미쓰비시 제강 인천제작소 노동자가 거주했던 곳이다.
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 대부분은 강제 동원된 조선인으로 추정돼 줄사택은 당시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부평구는 미쓰비시 줄사택 9개 동 가운데 3개 동은 주민 공동이용시설과 행정복지센터를 짓기 위해 2018년 12월과 2019년 7월 2차례에 걸쳐 이미 철거했다.
부평구는 나머지 6개 동 가운데 4개 동도 매입 절차를 거쳐 추가로 철거한 뒤 주차장을 조성하려고 했으며, 2개 동의 처리 계획은 여전히 미정인 상태다.
부평구 관계자는 "문화재청의 보존 협조 요청은 강제 사항은 아니라서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주민과 전문가 등 의견 수렴을 거쳐 미쓰비시 줄사택 보존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