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임제한 강화에 예우까지 줄어…"판사 신상털이에 회의"
인사 앞두고 고위 법관들 줄사표…작년보다 20여명 늘듯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법원장과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비롯한 고위 법관들이 잇따라 사의를 표명하고 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에 사의를 표명한 전국 법관은 이날까지 8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법원장과 고등법원 부장판사만 20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정기인사에서 60명가량 퇴직한 것과 비교해볼 때 아직 정기인사까지 시간이 남은 점을 고려하면 올해 법복을 벗는 판사들이 대폭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법원장과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경우 작년 퇴직자는 원장 3명,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원로법관 5명 등 8명에 그쳤던 것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다.

전국 최대 규모 지방법원인 서울중앙지법 민중기 원장도 대법원에 사의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고, 서울고법 김필곤·김환수·이동근·이범균 부장판사 등도 사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사의를 표한 법관 중 이른바 `10조 판사'(고법 판사)들도 10여명 포함됐다.

지방법원 부장판사 수준의 경력이 있는 판사들이 보임되는 고법 판사는 법관 인사규칙 10조에 따라 보임된다는 이유로 이같이 불린다.

고위 판사들을 중심으로 사의 표명이 예년보다 크게 늘어난 것은 정부의 수임 제한 강화 움직임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법무부는 작년 11월 고위 판·검사 출신 변호사의 수임 제한을 강화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현행법은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퇴직 전 1년 동안 근무한 기관의 사건을 퇴직 후 1년 동안 수임할 수 없게 규정한다.

반면 개정안은 검사장이나 법원장, 고법 부장판사 출신은 퇴직 전 3년 동안 근무한 기관의 사건을 퇴직 후 3년 동안 수임할 수 없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고위 법관에게 주어지는 예우가 축소되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사법행정자문회의 결과에 따라 대법원은 올해 2월 정기인사부터 재판업무를 담당하는 고법 부장판사에게만 전용차를 제공하지 않을 예정이다.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연루된 판사들이 대거 재판에 넘겨지고, 판결에 관한 불만이 판사를 향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판사들이 회의를 느낀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고등법원 판사는 "민간 시민단체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이 나오면 판사의 신상을 공개한다"며 "양심에 따라 성실하게 근무해온 대다수 판사는 허탈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