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 진단업체들이 반도체 공정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머리카락 굵기의 수백분의 1에 불과한 미세회로를 하나의 칩에 장착하는 반도체 기술을 활용하면 지금보다 작은 기기로 더 많은 질환의 감염 여부 등을 좀 더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17일 진단업계에 따르면 나노엔텍은 지난달 국내 최초로 ‘랩온어칩(lab-on-a-chip)’ 기술을 적용한 코로나19 및 독감 항원 동시진단 키트를 유럽 시장에 출시했다.

랩온어칩은 반도체처럼 바이러스 항원 분석에 필요한 장치들을 한데 모아 놓은 플라스틱 칩을 말한다. 연구실에서 쓰는 대형 분석기기를 손바닥만 한 크기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칩 위의 실험실’로 불린다. 이 회사는 반도체 설계 공정에 쓰이는 미세유체역학 기술을 활용해 수많은 미세관을 하나의 칩에 장착시켰다.

앞서 이 회사가 내놓은 랩온어칩 기반 항체진단키트는 지난해 9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사용승인(EUA)을 받았다. 경쟁제품에 비해 검사시간(15분→3분)이 덜 걸리는 데도 정확도(96.7%)는 더 높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현재 시중에 나온 제품들의 정확도는 90~95% 수준이다.

나노엔텍 관계자는 “반도체 기술을 활용하면 같은 크기의 칩에 더 많은 기능을 넣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정확도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퀀타매트릭스 역시 미세유체역학 기술을 적용한 항생제 감수성 검사기기를 만든다. 3일가량 걸리던 항생제 선별 시간을 6시간으로 단축한 게 이 회사 제품의 강점이다. 반도체 기술 덕분이다. 패혈증 환자에게 항생제를 쓰려면 먼저 패혈증을 일으킨 균이 어떤 항생제에 파괴되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이 회사는 단 한 번의 혈액검사로 딱 맞는 항생제를 선별하는 방법을 찾았다. 미세유체역학 기술을 활용해 수십 종의 항체와 DNA를 고정시킨 얇은 유리 입자에 균을 고정시켜 배양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제품은 현재 유럽 11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달 진단키트 수출금액은 3억1009만달러를 기록했다. 전월 2억9416만달러보다 5.4% 늘어나며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이 속속 나오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남들에겐 없는 차별화된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진단 분야는 정확도 향상과 제품 소형화를 위해 반도체 공정 기술 등 기존 제조업 기술을 접목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