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한국경제신문 인공지능(AI)경제연구소장(오른쪽)이 15일 한국경제신문이 개최한 ‘CES 2021 특별 웨비나’에서 KAIST 교수진과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기업 경제경영연구 전문가들과 토론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안현실 한국경제신문 인공지능(AI)경제연구소장(오른쪽)이 15일 한국경제신문이 개최한 ‘CES 2021 특별 웨비나’에서 KAIST 교수진과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기업 경제경영연구 전문가들과 토론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지난 11~14일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전시회 ‘CES 2021’에서 메리 배라 제너럴모터스(GM) CEO는 ‘미래 모빌리티 회사’로 GM을 소개했다. 전통의 완성차 업체에서 벗어나 첨단기술 기업을 지향한다는 의미였다.

올해 CES에 참여한 기업의 약 30%인 705개사는 로봇·드론·인공지능(AI) 업체였다. GM처럼 AI 기반의 기술을 적용한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인 기업도 전체의 23%나 됐다. 허석준 KT경제경영연구소장은 “AI 기반 기술을 쓰지 않는 기업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AI가 CES 무대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며 “AI 기반 로봇이 가사를 돕는 일상이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이 일상화된 기업들

15일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한 ‘CES 2021 완전정복! -결산 특별 웨비나’에서 전문가들은 “올해 CES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미래기술이 빠르게 현실로 녹아들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전염병 확산에 따른 어려움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혁신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새로운 기술 도입도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방역, 헬스케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로봇 및 드론 기술도 접목됐다. 기아·빈곤 문제, 환경문제 등 국제기구에서 다룰 법한 전 지구적 문제를 AI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비전도 나왔다.

명현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에스토니아의 스타트업 ‘스타십 테크놀로지스’를 사례로 꼽았다. 이 회사는 미국에서 하루 수천 건의 로봇기술 기반 무인배송을 상용화한 업체다. 명 교수는 “이번 CES의 한 세션에서 아티 헤인라 스타십 공동 창업자는 로봇기술을 활용해 구호물품, 생필품 등을 원거리까지 보낼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에선 “전기차 플랫폼뿐 아니라 자율주행 시스템, 로봇, 항공 등 기술 외연을 확대하는 기업이 생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들 영역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모두 고효율 모터, 배터리, 인지·판단·제어 시스템 등이 핵심 기술 요소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이 교차점을 토대로 기술력을 쌓고 있는 현대자동차 도요타 GM 등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고 센터장은 2인용 수직 이착륙 무인기 ‘VTOL’을 선보인 GM을 예로 들었다. 전기차 플랫폼뿐 아니라 항공 이동수단까지 함께 공개해 자동차 기업의 한계를 넘어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드러냈다는 얘기다. 그는 “모빌리티업계는 ‘365일이 CES’라고 할 정도로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며 “완성차업계뿐 아니라 마그나, 만도 등 부품회사도 IT기업처럼 체질 전환에 나서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종결합’ 더욱 중요해져

올해 통신산업 분야 전시에선 기술적인 발전보다는 디지털 전환을 위해 서로 다른 기업·산업 간 손을 잡는 ‘이종결합’의 중요성이 부각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이 대표적이다. 버라이즌은 물류기업 UPS, 드론기업 스카이워드와 손잡고 드론배송 사업에 나섰다. 버라이즌의 4세대(4G) 이동통신망을 활용해 스카이워드 드론을 띄우고 UPS의 물류 사업망을 이용해 택배를 배송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헬스 분야와 관련해 “원격진료가 본격화하고 있는 해외와 달리 국내 시장은 아직 제자리걸음”이라고 진단했다. 정기훈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이번 CES의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 사례로 △식단·수면 패턴·스트레스 수준 등을 토대로 환자 상태를 실시간으로 의료진과 공유하는 앱(앱시) △태아의 심박수 및 산모의 자궁 활동을 측정해 병원에 보내주는 벨트(필립스) △혈압을 측정해 의료진에 보내면 뇌졸중 및 심장마비 전조를 판단해주는 기기(오므론헬스케어) 등을 꼽았다. 정 교수는 “다양한 혁신이 일어나고 있지만 국내는 원격진료를 막는 규제부터 풀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의료법은 환자가 의료진에게 원격으로 진료 및 처방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원격진료를 허용했지만, 여전히 전화상담 수준에 그쳤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전통 제조업 기업들이 스마트 비즈니스로 급속하게 전환하고 있다는 점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농기계 업체 존디어는 올해 스마트 트랙터로 CES 2021 혁신상을 받았다. 트랙터에 장착된 비전센서가 탈곡기의 곡물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탈곡 정도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최대 50%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게 존디어의 설명이었다. 장영재 KAIST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중장비업체 캐터필러는 2층 높이의 300t급 자율주행 채굴트럭을 선보였다”며 “기술 혁신에 드는 비용이 점차 낮아지면서 앞으로 전통 제조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윤리문제 해결은 풀어야 할 과제

올해 CES에서도 기술 발전에 따른 윤리적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인종이나 성에 따른 차별과 같은 기존 사회의 편견이 담긴 데이터로 인해 AI에서도 바이어스(편향)가 나타나고 있다. 이날 웨비나에서도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을 빚은 챗봇 서비스 ‘이루다’가 거론됐다. 이루다는 대화 데이터에 포함된 혐오발언을 필터링 없이 재생산하면서 서비스가 중단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IBM의 AI 개발 원칙을 참고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IBM은 2011년 AI 개발과 관련해 사람을 대체하는 대신 보조하는 역할을 지향하고, 설명이 가능하고, 투명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따뜻한 AI’를 탄생시키기 위해 개발 과정에 심리학·인류학 등 인문학 전문가도 참여시켰다.

AI의 발전을 위해 기업 간 데이터 공유도 더욱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명현 교수는 “AI가 성공하려면 천문학적인 데이터가 필요한 만큼 기업 간 협업은 필수”라며 “AI 디스토피아가 올 수도 있다는 일각의 경고는 소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수빈/이선아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