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
지난 13일 이 농장에 청천벽력 같은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2.8㎞ 떨어진 한 산란계 농가에서 AI 양성 판정이 나와 1만 마리의 닭을 바로 살처분해야 한다는 통보였다.
이 농장의 조모 대표는 “우리 농장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발생 농장과 생활 반경이 명백히 구분되는 데다 철새 도래지 하천과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며 “소규모 도계장을 운영해 농장 소유의 닭만 취급하는데 단순 거리로만 계산해 음성 판정을 받고도 무조건 살처분해야 한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고 했다. 토종닭협회와 농장주 등은 경기도에 살처분 대상 조정을 재평가해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했다.
AI가 전국으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반경 3㎞ 이내 살처분’ 규정의 개선을 요구하는 가금 사육농가와 단체들의 성명이 곳곳에서 잇따르고 있다. 살처분 규정은 그동안 반경 500m 이내 범위였다가 2019년 말 3㎞로 개정되면서 혼선이 가중됐다. 특히 범위가 직선 거리로 계산돼 실제 거리가 더 멀어도 살처분 대상에 속한다.
11일 기준 살처분 가금류는 약 1502만 마리에 달한다. 이 가운데 75%(1133만 마리)가 예방 차원에서 살처분됐다. AI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더라도 직선 반경 3㎞ 이내 있었다는 이유로 살처분됐다는 뜻이다.
농장주들은 정부의 예방적 살처분 조치가 외국 사례와 견줘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육계협회에 따르면 미국·이탈리아·일본 등은 주로 발생 농가에 한해 살처분을 시행하고 역학 농가는 정밀검사 후 문제가 있을 때만 살처분한다. 강력한 AI 방역대책을 펴는 네덜란드도 반경 3㎞ 이내 농가를 대상으로 AI 검사를 진행한 뒤 반경 1㎞ 이내 농가에 대해서만 예방적 살처분을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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