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초록빛 힐링…한라산·돌담과 어우러진 서정적 풍경

차밭은 연둣빛 새순이 돋는 4∼5월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모진 바람을 이겨내고 짙은 초록빛을 선사하는 겨울의 차밭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한겨울 초록의 싱그러움이 그리워질 때쯤, 남쪽 차밭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imazine] 싱그러움 가득, 色다른 겨울 여행 ② 제주 차밭
◇ 물, 바람, 흙…천혜의 환경을 갖춘 제주 차밭
좋은 차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좋은 토질과 풍부한 강수량, 연중 따뜻한 기온이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이 세 가지 조건에 가장 잘 부합하는 지역이다.

차는 연평균 기온이 14∼16도인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재배된다.

특히 겨울의 기온은 영하 5∼6도 이상, 연 강수량은 1천300㎜ 이상이어야 최적이다.

연 평균 기온이 15도, 강수량이 1천500㎜인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이런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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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토양을 이루는 현무암질의 화산회토도 좋은 차를 만드는 일등 공신이다.

유기물을 다량 함유한 제주의 화산회토에는 밟으면 부드럽게 푹푹 꺼질 정도로 미세한 틈이 아주 많다.

차나무가 이 틈 사이로 깊게 뿌리를 내려 웬만한 태풍에도 꺾이지 않을 뿐 아니라, 양분을 잘 흡수할 수 있게 된다.

화산회토는 차 나무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천연 필터 역할도 한다.

토양, 기온, 강수량과 함께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바람이다.

제주의 거센 바람은 차나무에 적당한 스트레스를 주어 차의 감칠맛과 향을 배가시키고 찻잎을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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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제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녹차 산지로 꼽히지만, 차 재배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고 서성환 회장이 1979년 한라산 기슭의 버려진 돌무지 땅 16만 평을 개간해 차밭을 조성하면서 제주의 다원 역사가 시작됐다.

아모레퍼시픽은 제주에 도순다원을 시작으로 한남다원(47만평)과 서광다원(21만평) 등 총 세 곳의 다원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 한라산과 어우러진 서정적 풍경…도순다원
도순다원은 서귀포 시가지 북부 중산간도로와 제2산록도로 사이에 꼭꼭 숨어 있다.

박물관과 카페 등 부대시설을 갖춘 서광다원처럼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풍경만큼은 세 곳 차밭 중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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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와 돌담이 어우러진 마을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다원 입구가 나왔다.

한라산 기슭에 자리 잡은 차밭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동백나무와 소철나무가 뒤섞여 자라는 농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 낮은 언덕배기에 오르니 드디어 사진으로 봤던 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듯 굽이굽이 펼쳐진 차밭 너머로 한라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하다.

뒤를 돌아보니 초록빛 찻잎 물결 너머로 서귀포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형제섬과 저 멀리 가파도까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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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 눈이 쌓인 날, 이곳을 방문하면 눈 덮인 한라산과 초록빛 차밭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이곳을 찾은 때는 12월 7일, 절기상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대설'이었지만, 제주의 한낮은 마치 봄날 같았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차밭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만 들려올 뿐 사방이 인적 없이 고요했다.

따사로운 햇살과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아무 생각 없이 한참 동안을 그곳에 가만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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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과 어우러진 차밭…서귀다원
제주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차밭은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의 서광다원이다.

광활한 다원에 뮤지엄과 카페, 전망대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어 늘 방문객으로 북적인다.

좀 더 한적한 차밭에서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다원을 찾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라산 동남쪽 끝자락, 1115번 도로와 1131번 도로(516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은 서귀다원은 80대 노부부가 운영하는 다원이다.

2만여 평의 감귤밭을 40년간 일궈온 부부가 귤밭을 차밭으로 바꿔 16년째 운영 중이다.

노부부는 지금도 손수 농사를 짓고 차를 덖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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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둘러싸인 다원은 그야말로 고즈넉하다.

노부부가 직접 하나하나 쌓아 올린 현무암 돌담이 초록빛 차밭과 어우러져 정겨움을 더한다.

다실로 올라가는 오솔길 옆에 쭉쭉 뻗어있는 삼나무들도 눈길을 끈다.

이곳이 귤밭이었을 때부터 바람을 막아줬던 방풍 나무라고 한다.

숲과 녹차밭 사이로 난 산책길을 따라 다원을 한 바퀴 둘러보니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 같다.

차밭 한가운데 있는 다실에서는 1인당 5천원만 내면 직접 우린 우전 녹차와 황차를 맛볼 수 있다.

다원에서 직접 만든 귤정과의 맛도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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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과 향으로 즐기는 차 한 잔의 여유
추사 김정희는 우리나라 3대 다인(茶人) 중 한 명으로 꼽힌다.

55세 되던 해 정치적 음모에 휘말려 제주도로 유배 온 그는 8년 3개월간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국보 180호인 세한도와 추사체를 완성했다.

추사체에는 거친 제주의 환경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무암, 혹은 돌담이 연상된다.

추사가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걸작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제주의 자연환경은 추사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됐다.

이런 걸작을 탄생시키기까지 추사는 10개의 벼루에 구멍을 냈고, 1천 자루의 붓이 닳아 없어졌다고 한다.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서광다원에 있는 '티스톤'은 이런 추사의 일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다도 체험 공간이다.

추사의 벼루와 붓을 형상화해 만든 건물 안에서 차를 즐기고 다도를 배우는 티 클래스가 진행된다.

티스톤이라는 이름은 차를 뜻하는 티와 추사의 벼루를 뜻하는 잉크 스톤을 합친 것이다.

거대한 벼루 안에서 차를 우림으로써 자연과 사람이 함께 하는 차 문화를 만들어가자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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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차라도 어떤 다기에 누가 우렸는지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고 한다.

차를 즐겨 마신다면 티 클래스를 들으며 차에 대한 지식을 넓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차는 발효 여부에 따라 녹차와 발효차로 나뉜다.

녹차는 찻잎을 발효시키지 않고 찌거나 덖은 것이다.

찻잎을 발효시킨 발효차는 발효 정도에 따라 다시 반 발효차, 완전 발효차 등으로 세분된다.

중국의 우롱차가 대표적인 반 발효차다.

홍차는 찻잎을 80% 이상 발효시킨 것으로, 강 발효차(혹은 완전 발효차)로 불린다.

서양에서 홍차를 블랙티라고 하는 것은 산화 발효가 일어난 홍차 건잎의 색깔이 검은색을 띠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이 잎을 뜨거운 물에 우리면 붉게 우러나온다고 해서 홍차라 부른다.

녹차는 너무 높은 온도의 물로 우리면 차의 맛이 쓰고 떫어지기 때문에 70도가량의 물로 우리는 것이 좋다.

하지만 발효차는 발효되는 과정에서 떫은맛이 없어지므로 높은 온도의 물로 우려도 된다.

90도가량의 물로 2∼3분 우리면 발효차의 감칠맛이 잘 우러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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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이 좋은 발효차를 마실 때는 맛을 보기 전 그 특유의 향을 느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뚜껑이 있는 다기인 개완에 뜨거운 물을 넣어 데운 뒤 물은 버리고 마른 찻잎을 넣어 뚜껑을 닫은 다음 흔들면 달궈진 개완 안에 찻잎의 향이 가득 퍼진다.

차를 우려 마신 뒤에는 젖어 있는 찻잎의 향기도 맡아 보자. 구수하고 스모키한 건잎의 향과 달리 달큰하면서 부드러운 향을 느낄 수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