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인 ‘엑시노스’ 등과 같은 시스템반도체의 설계와 판매를 담당한다. 2010년대 중반엔 “미국 퀄컴보다 AP 기술력이 낫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스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2019년께부터다. 엑시노스 칩이 들어간 스마트폰이 금방 뜨거워진다는 얘기가 나오더니 작년 초엔 삼성의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S20의 국내 모델에 사용하지 못하는 ‘굴욕’을 맛봤다.

시스템LSI사업부가 1년 넘게 ‘와신상담’한 끝에 신제품 ‘엑시노스 2100’ AP를 내놨다. 사업부의 ‘명운’을 걸고 개발한 제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신 5㎚ 공정에서 생산

삼성전자는 12일 ‘엑시노스 2100’을 공식 출시하고 상세한 기능을 공개했다. 제품은 경기 화성사업장의 5㎚(나노미터·10억분의 1m) 극자외선(EUV) 공정에서 생산한다. 이 공정은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수탁생산)사업부의 최신 라인이다. 5㎚ 칩은 7㎚ 칩보다 로직 면적(크기)이 25% 줄고 전력효율은 20% 이상 좋아졌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설계 최적화로 AP를 구성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성능은 각각 30%, 40% 개선됐다. 스마트폰이 데이터를 처리하는 속도가 그만큼 빨라졌고, 고화질 영상도 끊김없이 볼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엑시노스 2100에는 1초에 26조회 인공지능(AI) 연산을 할 수 있는 신경망처리장치(NPU)도 들어갔다.

1년반 동안 칼 갈아

엑시노스 2100은 삼성전자가 보유한 시스템반도체 설계·생산 역량을 집약한 제품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의 AP 사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시장 일각의 평가를 반전시킬 카드인 셈이다.

시스템LSI사업부는 고(故) 이건희 회장이 1997년 당시 삼성 최고의 반도체 인재로 꼽혔던 진대제 부사장에게 ‘사업부장’을 맡길 정도로 핵심적인 사업부다. 2000년대 초반엔 미국 애플의 자체 AP 개발을 돕기도 했다. 2015년 퀄컴의 ‘스냅드래곤 810’ AP가 발열 논란에 휩싸였을 때는 “엑시노스가 더 좋다”는 평가도 많았다.

묘하게 일이 안 풀린 것은 2019년 하반기부터다. 그해 9월 세계 최초로 5세대(5G) 이동통신 AP 엑시노스 980을 ‘공개’했는데 ‘양산’은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의 ‘기린 990 5G’보다 늦었다. 10월엔 엑시노스 AP용 자체 CPU 개발을 담당했던 미국법인의 개발팀이 해체되기도 했다.

더 큰 충격도 있었다. 2020년 초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갤럭시 국내 모델에서 엑시노스를 제외한 것이다. 내부에선 “엑시노스의 역할이 퀄컴과의 가격 협상용 지렛대로 전락했다”는 푸념까지 나왔다.

삼성전자 AP ‘중흥’ 이끈다

시스템LSI사업부가 지난해 ‘갤럭시 쇼크’ 이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세계 5위권 스마트폰 업체 중국 비보를 고객사로 확보하고 ‘엑시노스 980’ ‘엑시노스 1080’ 같은 5G AP를 납품했다. 외부 고객사 확보를 통해 시스템LSI사업부의 존재 가치와 수익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었다.

엑시노스 2100은 14일 공개 예정인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S21 국내 모델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발판으로 작년 3분기 기준 12% 수준으로 하락한 세계 시장 점유율이 다시 반등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강인엽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사진)은 이날 온라인으로 열린 출시 설명회에서 “GPU 성능 향상을 위해 미국 AMD와 협업하고 있다”며 “차기 엑시노스 AP엔 더 뛰어난 성능의 GPU를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