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도지사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원희룡 제주도지사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원희룡 제주도지사(사진)는 8일 국회에서 쏟아지고 있는 '정인이 사건'과 관련한 법안 발의안들을 두고 "아동학대 피해자들을 더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원희룡 지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들의 공분이 국회를 움직이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그 움직임은 사건 보도 후 며칠 만에 법안이 졸속으로 만들어지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언뜻 보면 엄벌주의 법안들이 효과적일 것 같지만 현장에서 오랫동안 수고해온 전문가의 의견은 다르다"며 "아동학대에 대한 형량만 강화시키면 오히려 불기소되거나 무죄를 받는 경우도 늘어난다"고 덧붙였다.

원희룡 지사는 "강화된 형량에 걸맞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수사와 재판이 혹독해지면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받는 고통도 늘어난다"며 "2회 신고를 받을 경우 피해 아동을 가정에서 즉시 분리시키는 법안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난 6일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장된 정인 양의 묘지에 사진이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6일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장된 정인 양의 묘지에 사진이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음은 원희룡 지사 페이스북 전문.

<정인이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정인이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공분이 큽니다. 사건이 보도된 이후 발의된 법안이 여러 건입니다. 아동학대 신고가 반복될 경우 빠르게 아동과 보호자를 분리시켜 아동을 보호하고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입니다. 언뜻 보면 이런 엄벌주의 법안들이 효과적일 것 같지만 현장에서 오랫동안 수고해온 전문가의 의견은 다릅니다. 아래 링크는 공익변호사로 아동학대 문제와 싸워온 김예분 변호사의 인터뷰입니다.

아동학대에 대한 형량만 강화시키면 오히려 불기소되거나 무죄를 받는 경우도 늘어납니다. 강화된 형량에 걸맞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수사와 재판이 혹독해지면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받는 고통도 늘어납니다. 2회 신고를 받을 경우 피해 아동을 가정에서 즉시 분리시키는 법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리 후 갈 수 있는 쉼터 시설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말 보호를 받아야 하는 위급 상황에 있는 아동을 보호받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공분이 국회를 움직이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그 움직임은 사건 보도 후 며칠 만에 법안이 졸속으로 만들어지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오히려 아동학대 피해자들을 더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동학대가 다른 범죄와는 다른 미묘하고 특수한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법안이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법안을 만들기 전에 현장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충분한 토론 과정을 거쳐 정교한 법안의 구조를 만드는 진정으로 피해 아동을 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press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