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출산 보장을 골자로 한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 발의
전문가 "인지청구와 친부 양육책임 강화하는 정책 필요"

'아이 입양합니다.

36주 되어있어요.

'
이불에 싸인 아이 모습이 담긴 두 장의 사진 옆 판매금액란에는 '200,000원'이라고 적혔다.

[2020 사건 그후] ⑤ '36주 아이 입양 20만원'…미혼 한부모 문제는 진행 중(끝)
지난 10월 16일 오후 6시 30분에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이 게시물은 맘카페 등 도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되면서 누리꾼의 공분을 샀고, 112에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 수사 결과 게시물 작성자는 미혼모 A(27)씨였다.

아이는 36주가 아닌 태어난 지 사흘밖에 안 된 신생아였다.

A씨는 원하지 않았던 임신 후 혼자 아이를 출산한 상태에서 육체적·정신적으로 힘에 부친 나머지 출산 사흘째가 되던 날 이 같은 글을 작성해 게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당시 "혼자서 아이를 출산한 두려움과 막막함 속에서 아기 입양 관련 상담을 받던 중 절차가 까다롭고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게시물을 올리게 됐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는 "잘못을 깨닫고 곧바로 글을 삭제했으며, 진심으로 반성한다"라고도 했다.

A씨는 아이 아빠와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데다 본인도 벌이가 없는 상태였다.

이 사건은 게시물이 올라온 지 하루도 안 돼 삽시간에 온라인을 달궜다.

처음 사건이 보도됐을 당시에는 A씨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건이 A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법과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미혼 한부모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았다.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미혼모 보호 방안과 입양 절차 등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2020 사건 그후] ⑤ '36주 아이 입양 20만원'…미혼 한부모 문제는 진행 중(끝)
현행 제도상 아이를 입양 보내려고 친권을 포기하려면 출생 신고를 하고 관련 기관과 충분히 상담한 후 7일간 숙려 기간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부모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갑작스럽게 출산한 미혼모의 경우 혼자서 이 같은 과정을 처리하기 어렵다.

사건이 이슈화하자 정부는 위기에 처한 임신·출산 미혼 한부모를 지원하는 방안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현재 청소년 산모 임신·출산 지원 대상을 만 18세 이하에서 19세 이하로 확대하고, 한부모 가족 복지시설 입소대상 소득 기준과 입소 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 역시 팔을 걷어붙였다.

먼저 병원, 미혼 한부모·아동복지 관련 시설 등과 협력해 미혼 한부모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아이돌봄 서비스를 연 100시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또 1인당 30만원씩 6개월간 지원하는 직업훈련비 지원 대상을 중위소득 60% 이하에서 80% 이하까지 확대한다.

한부모 가족 매입 임대 주거지원도 기존 15세대에서 내년에 21세대로 늘린다.

현행 입양특례법상 출생등록 의무화에 따른 영아 유기를 막기 위해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국민의힘 김미애 국회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호 출산에 관한 특별법'을 지난 1일 대표 발의했다.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은 임산부가 보건소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허가한 상담 기관에서 원가정 양육 및 보호출산 등에 관한 상담을 받으면 자신의 신원을 감추고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는 '보호출산(비밀출산 또는 익명출산)'을 보장한다.

[2020 사건 그후] ⑤ '36주 아이 입양 20만원'…미혼 한부모 문제는 진행 중(끝)
김 의원은 "태아가 낙태되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양육할 수 있도록 해 여성이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보호출산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도와 김 의원의 이 같은 노력에도 전문가들은 여전히 미혼 한부모에 대한 사회적 지원 체계가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이연화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연구위원은 "혼인외 출생자를 자기 아이라고 인정하는 절차인 인지청구와 친권자 및 양육자 지정, 양육비 청구까지 모두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앞으로 친부에 대한 양육책임을 더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아동복지법상 아동 매매 미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A씨에 대해 아동보호 사건 의견으로 지난달 검찰에 송치했다.

아동보호 사건은 형사재판과는 별도로 법원이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아동에 대한 접근 금지, 감호, 치료, 상담, 교 등 보호처분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경찰은 A씨가 깊이 반성하고 있고, 갑작스러운 출산과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던 점을 이유로 이같이 결정했다.

A씨는 출산 후 일주일째 되는 날 산후조리원을 나와 도내 한 미혼모 지원시설에 입소했지만 얼마 안 돼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A씨가 미혼모 지원시설에 입소했을 당시 A씨와 분리돼 제주지역 한 보육시설로 옮겨졌다.

아이는 A씨가 양육에 대한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도내 한 보육시설로 옮겨져 보호 조치에 들어갔으며 출생신고를 거쳐 국내 입양단체 지원을 받아 입양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A씨는 아이 양육을 포기하면서 사실상 미혼모 관련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미혼모 지원은 아이 양육을 전제로 이뤄진다.

도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진행 중인 A씨 재판과 관련해 법률적인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A씨는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