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차 중 택시기사 폭행 엄벌' 입법취지 감안하면 "특가법 적용했어야"
시민안전침해소지 미미하면 재판부가 특가법 未적용한 사례들도 있어 하차 과정에서 택시기사를 폭행한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폭행죄'(운전자 폭행죄)를 적용하지 않은 경찰 처분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 차관은 취임 전인 지난달 6일 밤 서울 서초구 자신의 아파트 자택 앞에서 술에 취해 택시 안에서 잠들어 있던 자신을 깨우는 택시기사의 멱살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폭행은 택시 안에서 이뤄졌던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형법상 폭행죄를 적용해 내사를 진행했고, 이후 피해자인 택시기사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자 같은 달 12일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찰이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를 적용하지 않고 형법상 폭행죄만 적용해 서둘러 사건을 종결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인 형법상 폭행죄를 적용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형사처벌이 가능한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를 적용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이 차관 사건은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를 적용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는 입장이다.
이 사건처럼 일반 도로가 아닌 아파트 단지 내에서 취객을 깨우기 위해 완전히 정차한 택시기사를 폭행한 경우에도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를 적용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 '하차 중 택시기사 폭행 엄벌'이 입법취지…"특가법 적용했어야"
일단 해당 법 조문과 입법취지를 고려하면 이 차관 사건은 원칙적으로 형법상 폭행죄가 아닌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를 적용하는 것이 맞는다.
2015년 6월 22일 개정된 특가법 5조의10은 여객의 승하차를 위해 일시 정차한 상황을 포함해 운행중인 자동차의 운전자를 폭행·협박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문이 적용되는 '운행중인 자동차'의 개념에는 시내·외버스와 통학·통근용 버스뿐만 아니라 택시 등 대중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모두 포함된다.
목적지에 도착한 택시기사가 잠들어 있던 승객을 하차시키기 위해 깨우는 과정에서 폭행이 발생했다는 점에서도 이번 사안은 특가법 5조의10이 규정한 범죄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
이 같은 법 해석은 2015년 특가법 5조10 개정 당시 입법취지에도 부합한다.
개정 전 특가법 5조10은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를 폭행·협박한 경우'만을 처벌대상으로 삼았는데, 승하차 과정에서 버스기사나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빈발하자 현행처럼 개정됐다.
당시 개정안에는 "'운행 중'의 법리적 의미를 명확히 규정해 승하차 중 발생하는 운전자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고, 이로 인해 승객에게 가해지는 2차적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개정이유가 소개돼 있다.
이처럼 법 개정의 목적 중 하나가 버스나 택시 승하자 과정에서의 운전자 폭행 예방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차관 사건에는 형법상 폭행죄가 아닌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를 적용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출신인 김한규 변호사는 22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승하차 중 택시기사 폭행을 예방한다는 입법취지를 고려한다면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로 기소해 법원의 판단을 받았어야 하는 사안이었다"고 지적했다.
◇ 법원, 시민안전 침해소지 판단해서 특가법 적용여부 판단
다만 '특가법을 적용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는 경찰의 해명도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은 아니다.
2015년 개정된 법은 버스나 택시가 승객의 승하차를 위해 잠시 멈춘 상황에서 운전자를 폭행한 경우 '운행중 폭행'으로 간주하도록 하지만 정차한 차안에서 이뤄진 폭행을 '운행 중 폭행'으로 간주하지 않은 복수의 법원 판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17년 6월 시비 중 파출소 앞에 정차한 택시안에서 승객이 운전자를 폭행한 사건에서 "운행 중이던 택시기사를 폭행한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또 서울동부지법도 2017년 12월 하차 과정에서 요금지불을 요구하는 택시기사를 승객이 폭행한 사건에서 "공중의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계속적인 운행 의사 없이 주·정차한 택시기사를 폭행한 경우에는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두 사건 모두 특가법 5조의10이 현행처럼 개정된 2015년 6월 이후에 발생했다.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가 보호하려는 법익(형벌규정이 보호하려는 법적 이익 내지 가치)은 '운전자나 승객, 보행자 등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엄중하게 처벌해 교통질서를 확립하고 시민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인데, 이러한 보호법익 침해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재판부가 특가법을 적용하지 않은 사례들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버스나 택시가 일시 정차한 상태에서 기사를 폭행한 경우 법조문은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를 적용해 처벌토록 하고 있으나 재판부는 그 조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사건의 구체적 정황을 따져가며 적용했던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비슷한 상황에서) 택시가 운행 중이 아니라고 보고 단순 폭행죄를 적용한 판례도 있고, 다시 운행이 예상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보고 특가법을 적용한 판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의 실제 적용에 대한 고민은 2015년 개정 과정에서도 심도있게 논의된 바 있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남궁석 수석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를 통해 "공중의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계속적인 운행의 의사 없이 정차한 경우도 '승하차를 위하여 정차한 경우'에 포함될 수 있어 가중처벌 대상이 지나치게 확장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또 법사위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법안심의에 참여한 법원행정처와 법무부 관계자도 "계속적 운행의사가 없는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면 구성요건이 확장되는 문제점이 있다"며 같은 취지의 우려를 표명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법 조문'과 '법 적용' 사이에 괴리…경찰의 '자체판단 종결' 적절했는지 의문
결론적으로 법조문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이 차관을 특가법 위반으로 처리했어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복수의 유사 사건에서 법원은 시민들의 안전 등에 얼마나 위협이 되는 상황이었는지를 감안해서 재량껏 판단했던 것이다.
그 점 때문에 경찰도 특가법 적용이 애매하다는 설명을 했다.
다만 '법 조문'과 '현실'(재판부의 법 적용)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법을 탄력적으로 적용한 복수의 법원 판단이 있다고 해서 경찰이 그것을 근거로 사건을 자체 종결한 것이 적절했느냐는 물음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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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