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첫 국제사법기구 수장이 걸어온 길…송상현 회고록 출간
1941년 서울 창동의 한옥에서 독립운동가 송진우 선생의 손자로 태어나 한국인 최초 국제형사 사법기구 수장이 된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의 회고록이 나왔다.

송상현 명예교수가 쓴 '고독한 도전, 정의의 길을 열다'(나남출판)는 창동 생가에서 보낸 유년 시절부터 2003년 3월 국제형사재판소(ICC) 초대 재판관 선임 이후 12년 간 재판관과 소장으로 일한 경험까지 되돌아본 기록이다.

비망록과 일기 등을 토대로 완성한 원고지 5천 장 분량의 회고록은 새로운 정의의 길을 열고자 노력한 여정을 객관적으로 풀어낸다.

그는 1945년 12월 할아버지 댁 아래채에서 잠자던 다섯 살 때 저격범의 총탄에 할아버지가 암살되는 비극으로 생사의 갈림길을 처음 겪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6·25 전쟁이 일어나자 미처 피란을 가지 못하고 명륜동 집 지하실에 몸을 숨긴 가족들을 위해 3개월 동안 연고지인 창동까지 가서 식량을 구해오기도 했다.

당시 길가에 부패해가는 시신들을 보면 '인간은 왜 전쟁을 해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유년 시절의 경험은 세계평화를 지키는 전 인류적 사명의 무거운 짐을 왜 기꺼이 짊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창이 된다.

그는 1962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최연소로 합격했으며 이듬해 고등고시 사법과도 합격하며 젊은 법률가로 성장한다.

미국 코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는 해상법계 세계 최대 로펌에서 실무 경험도 쌓았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무거운 운명을 진 그는 1972년부터 35년간 서울대 법대 교수로 후학 양성에 몰두하면서 법학계의 뿌리 깊은 일본 의존도를 극복하는 데 힘썼다.

회고록의 백미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2년 동안 ICC 재판관, 소장으로서의 활약을 전하는 내용이다.

신설 국제기구였던 ICC의 수장으로서 국제사회의 지지를 끌어내고 회원국을 확대하기 위해 100명이 넘는 국가원수들과 회담을 했으며 유엔과 유럽연합 등 여러 국제기구와 협정을 체결했다.

무엇보다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음에도 콩고민주공화국 밀림 속 마을, 우간다의 분쟁지역 등을 방문해 수많은 전쟁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ICC 직원 4명이 한 달 동안 인질로 붙잡혔던 리비아에서는 단기필마로 교섭해 구출하기도 했다.

저자는 회고록이 자기합리화나 업적 과시가 앞서는 경우가 많아 주저했지만, 국제사회에 진출하려는 후학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책을 냈다고 말한다.

그는 "국제사회의 진출이 화려하고 대접받고 돈과 명예와 특혜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라는 허황된 생각을 깨우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그리하여 내 나라에서 내 마음대로 편히 살 수 있음에도 이를 마다하고 국제사회로 진출하는 것은 나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히면서 인류의 공통된 소망인 정의, 평화, 인권, 법의 지배, 민주주의, 개발협력, 기후변화 대응 등의 확립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의 실현에 기여하고자 힘든 길을 택하는 뜻임을 알리고 싶었다"고 강조한다.

한국인 첫 국제사법기구 수장이 걸어온 길…송상현 회고록 출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