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문화결산] '코로나 격랑' 종교계…신앙생활 대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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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확산 때 종교집회 '올스톱'…비대면 전환 과정 진통
장면 주교·김병상 몬시뇰 선종…세상과 이별한 종교계 어른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온통 세상을 휩쓴 올 한해는 신앙인들의 종교 생활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면 접촉에 의한 감염이 확산하면서 휴일이면 한자리에 모여 예배와 미사, 법회를 올리던 모습이 더는 예삿일이 아니게 됐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확진자가 대거 나오자 성당과 예배당, 사찰 모두가 한동안 문을 닫는 초유의 '셧다운'을 경험하기도 했다.
감염병 사태가 장기화하며 비대면 집회가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나 일대 변화를 맞는 과정에서 진통은 만만치 않다.
코로나라는 격랑 속에 빠져있는 사이 주변에서 묵묵히 신행을 이어온 종교계 인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 '모이지 못한' 종교계…비대면 전환 갈등
올 1월 중순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대규모 감염병 확산을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악몽 같은 현실이 벌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과 한 달 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대구교회 신도가 양성 판정을 받은 뒤로 함께 예배를 본 신도들 사이에서 확진자가 속출하며 대유행의 서막을 알렸다.
코로나는 감염자들의 동선을 따라 대구·경북을 넘어 전국 단위로 퍼져나갔고, 대면 접촉에 따른 N차 감염으로 이어지며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방역 당국의 역학조사에서 신천지 교회 예배가 감염 확산의 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되자 종교 집회를 둘러싼 감염 우려는 여타 종교행사로 확산했다.
이런 탓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성가를 부르고, 법문을 듣는 전통적인 종교 집회 자체가 크게 위축됐다.
모이는 것만으로 주위의 경계 대상이 됐다.
지난 2월 말 전국 단위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자 한국 천주교회는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교구에서 미사를 중단했다.
이웃 종교인 불교도 법회와 성지순례, 템플스테이 등 모든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국내 150만 명의 신도가 있는 원불교도 개교 105년 만에 법회를 멈췄다.
개신교도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당에 모이는 대신 온라인 예배로 전환을 서둘렀다.
하지만 가톨릭이나 불교와 달리 개교회 중심의 개신교계에서는 예배 방식을 두고 일치된 의견이나 지침이 없다 보니 대처 방식이 제각각이었다.
일부 교회들은 방역 지침을 무시한 채 종전처럼 예배를 진행했다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방역 실패, 코로나 확산의 진원이라는 '오명'을 그대로 뒤집어썼다.
이는 개신교계를 향한 여론 악화로도 이어졌다.
예배가 일대 변화를 맞는 과정에서는 새로운 시도도 눈에 띄었다.
마치 자동차 극장처럼 주차장에 차를 세운 채 목사의 설교 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예배를 올리는 '승차 예배(drive-in worship)'는 기억에 또렷이 남을 만한 모습이다.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수백 명 신도의 사진을 예배당 장의자에 나란히 붙여놓고서 온라인 예배를 올리는 목사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10개월 넘게 지속하는 동안 종교 행사는 확진자 발생 양상에 따라 온·오프라인을 오가고 있다.
때에 따라 두 가지를 병행하는 곳도 늘고 있다.
하지만 재정 여건이 열악한 교회들은 아예 예배당 문을 닫은 곳도 있다.
주변 교회가 돕는다고 도왔으나 감염병 소용돌이 앞에서 더는 버티지 못한 것이다.
당국의 방역지침이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종교집회 규제로 작용하다 보니 정부를 향한 비판과 불만이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은 최근 코로나 재확산에 따라 정부가 수도권 거리두기 조치를 2.5단계로 격상하자 "비현실적인 통제 조치가 아닌가 우려한다"며 반발했다.
◇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난 종교계 어른들
모두가 코로나 사태에 관심이 쏠려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의 존경과 흠모를 받았던 종교계 인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 감염 우려 탓에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많은 이들이 함께하지 못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당시 한국어 교사 역할을 했던 장익 주교가 지난 8월 선종했다.
향년 87세에 노환으로 세상을 뜬 장 주교는 장면 전 총리의 아들이기도 하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장 주교를 두고 "신자들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양 냄새 나는 목자였다"고 회고했다.
앞서 4월에는 생전 민주화·사회운동에 헌신했던 김병상 몬시뇰(원로 사목)이 향년 88세로 선종했다.
그는 사회운동에 적극적이었으면서도 사목과 신앙교육에 소홀하지 않았던 사제였다는 평을 받는다.
올 6월에는 "하루 5분 만이라도 참선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설파해온 혜광당 종산 대종사가 원적했다.
석 달 뒤에는 금란교회를 세계 최대 감리교회로 키운 김홍도 목사가 소천했다.
그는 교계에서 반공(反共)을 앞장서 외쳤으나 실정법 위반으로 여러 번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불교계에서는 '한국사랑'으로 유명했던 일본 불교학자 이시가미 젠노(石上善應) 동국대 전 석좌교수가 입적했다.
그는 2003년 동국대 석좌교수로 있는 동안 40여 년간 불교학을 연구하며 수집한 불교 서적 5천 권을 학교에 기부한 일로 유명하다.
/연합뉴스
장면 주교·김병상 몬시뇰 선종…세상과 이별한 종교계 어른들
대면 접촉에 의한 감염이 확산하면서 휴일이면 한자리에 모여 예배와 미사, 법회를 올리던 모습이 더는 예삿일이 아니게 됐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확진자가 대거 나오자 성당과 예배당, 사찰 모두가 한동안 문을 닫는 초유의 '셧다운'을 경험하기도 했다.
감염병 사태가 장기화하며 비대면 집회가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나 일대 변화를 맞는 과정에서 진통은 만만치 않다.
코로나라는 격랑 속에 빠져있는 사이 주변에서 묵묵히 신행을 이어온 종교계 인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 '모이지 못한' 종교계…비대면 전환 갈등
올 1월 중순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대규모 감염병 확산을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악몽 같은 현실이 벌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과 한 달 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대구교회 신도가 양성 판정을 받은 뒤로 함께 예배를 본 신도들 사이에서 확진자가 속출하며 대유행의 서막을 알렸다.
코로나는 감염자들의 동선을 따라 대구·경북을 넘어 전국 단위로 퍼져나갔고, 대면 접촉에 따른 N차 감염으로 이어지며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방역 당국의 역학조사에서 신천지 교회 예배가 감염 확산의 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되자 종교 집회를 둘러싼 감염 우려는 여타 종교행사로 확산했다.
이런 탓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성가를 부르고, 법문을 듣는 전통적인 종교 집회 자체가 크게 위축됐다.
모이는 것만으로 주위의 경계 대상이 됐다.
지난 2월 말 전국 단위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자 한국 천주교회는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교구에서 미사를 중단했다.
국내 150만 명의 신도가 있는 원불교도 개교 105년 만에 법회를 멈췄다.
개신교도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당에 모이는 대신 온라인 예배로 전환을 서둘렀다.
하지만 가톨릭이나 불교와 달리 개교회 중심의 개신교계에서는 예배 방식을 두고 일치된 의견이나 지침이 없다 보니 대처 방식이 제각각이었다.
일부 교회들은 방역 지침을 무시한 채 종전처럼 예배를 진행했다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방역 실패, 코로나 확산의 진원이라는 '오명'을 그대로 뒤집어썼다.
이는 개신교계를 향한 여론 악화로도 이어졌다.
예배가 일대 변화를 맞는 과정에서는 새로운 시도도 눈에 띄었다.
마치 자동차 극장처럼 주차장에 차를 세운 채 목사의 설교 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예배를 올리는 '승차 예배(drive-in worship)'는 기억에 또렷이 남을 만한 모습이다.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수백 명 신도의 사진을 예배당 장의자에 나란히 붙여놓고서 온라인 예배를 올리는 목사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10개월 넘게 지속하는 동안 종교 행사는 확진자 발생 양상에 따라 온·오프라인을 오가고 있다.
때에 따라 두 가지를 병행하는 곳도 늘고 있다.
하지만 재정 여건이 열악한 교회들은 아예 예배당 문을 닫은 곳도 있다.
주변 교회가 돕는다고 도왔으나 감염병 소용돌이 앞에서 더는 버티지 못한 것이다.
당국의 방역지침이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종교집회 규제로 작용하다 보니 정부를 향한 비판과 불만이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은 최근 코로나 재확산에 따라 정부가 수도권 거리두기 조치를 2.5단계로 격상하자 "비현실적인 통제 조치가 아닌가 우려한다"며 반발했다.
◇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난 종교계 어른들
코로나 감염 우려 탓에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많은 이들이 함께하지 못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당시 한국어 교사 역할을 했던 장익 주교가 지난 8월 선종했다.
향년 87세에 노환으로 세상을 뜬 장 주교는 장면 전 총리의 아들이기도 하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장 주교를 두고 "신자들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양 냄새 나는 목자였다"고 회고했다.
앞서 4월에는 생전 민주화·사회운동에 헌신했던 김병상 몬시뇰(원로 사목)이 향년 88세로 선종했다.
그는 사회운동에 적극적이었으면서도 사목과 신앙교육에 소홀하지 않았던 사제였다는 평을 받는다.
올 6월에는 "하루 5분 만이라도 참선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설파해온 혜광당 종산 대종사가 원적했다.
석 달 뒤에는 금란교회를 세계 최대 감리교회로 키운 김홍도 목사가 소천했다.
그는 교계에서 반공(反共)을 앞장서 외쳤으나 실정법 위반으로 여러 번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불교계에서는 '한국사랑'으로 유명했던 일본 불교학자 이시가미 젠노(石上善應) 동국대 전 석좌교수가 입적했다.
그는 2003년 동국대 석좌교수로 있는 동안 40여 년간 불교학을 연구하며 수집한 불교 서적 5천 권을 학교에 기부한 일로 유명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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