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친구 한 명 갖는 게 소원이라던 전태일의 절규를 잊지 못한 청년은 은행원이라는 직업을 버리고 노동운동의 길에 들어섰다.
공단에 위장 취업하고 야학 강사로 치열한 청년기를 보내며 1980년 5월 항쟁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최후의 항전지인 전남도청에서 까까머리 중고생을 집으로 돌려보내며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한 윤상원 열사의 삶이 화폭에 되살아났다.
광주 광산구는 지역 출신인 윤 열사를 기리고 5·18 정신을 이어가고자 그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제작하는 사업을 추진해 15일 용역 최종 보고회를 개최했다.
그림 제작에는 광주에서 활동하는 하성흡 화가와 심우재 소속 동료 등 4명이 참여했다.
작가들은 유년기부터 들불야학과 5·18 항쟁을 거쳐 '님을 위한 행진곡' 주인공으로 부활한 열사의 삶을 수묵채색 방식 전통 기록화 10점에 담았다.
작품은 5·18 41주년 추모 기간인 내년 5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광산구 관계자는 " 윤 열사는 5·18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며 "열사의 일대기를 작품으로 남겨 유품과 함께 전시해 민주, 인권, 평화라는 가치를 계승하고 보존하겠다"고 말했다.
윤 열사 추모 사업을 하는 광산구는 구청 7층 대회의실을 '윤상원홀'로 조성하고, 생가가 자리한 천동마을에서 '윤상원 민주커뮤니티센터'를 건립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