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쌀 기부…짬짬이 고철·폐지 주워 판 돈까지 이웃에게
"30년째 환경미화원 하며 농사짓지만 많지 않은 기부에 행복"

"올해는 비도 많이 오고 해서 농사가 잘 안됐어요.

쌀이 많지 않아 미안합니다.

"
지난달 13일 경기 시흥시 정왕본동 행정복지센터에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해 달라"며 10㎏짜리 쌀 24포를 들고 찾아온 60대 부부가 한 말이다.

[#나눔동행] "가난의 아픔을 아니까요"…기부천사 된 임차농 부부
매년 이맘때면 쌀을 싣고 찾아오는 이 부부의 이같은 발길은 올해로 벌써 9년째 이어지고 있다.

주인공은 시흥시 죽율동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이광동(64)·서외순(64) 씨 부부.
죽율동 집에서 만난 이 씨는 "다른 사람한테 논 80마지기(약 1만6천 평)를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며 "농지 임차료를 마지기당 쌀 40㎏씩 내고 남는 쌀을 이웃들에게 조금 나눠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없이 사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한 이 씨는 "쌀 조금 나눠 먹는다는 것이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다"라고 겸연쩍어했다.

옆에 있던 아내 서씨도 "대단한 일도 아닌데…"라며 말꼬리를 흐린 뒤 오히려 "기부를 많이 못 해 미안하다"고 했다.

이곳에 정착한 지 30년이 넘었다는 이 씨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1주일을 굶어 보기도 했다며 가난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들려줬다.

가난이 뼈에 사무치다 보니 '나중에 먹고살 만하면 없는 사람들을 꼭 도우며 살겠다'는 생각을 늘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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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부터 오후 3시까지 안산시에서 30년 넘게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이씨는 그동안 미화원 근무가 끝나면 논으로 나가 악착같이 농사일을 했다.

"내가 지금 잘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 딸도 이제 다 크고 돈 들어갈 곳이 없다"며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매년 탈곡하고 나면 아내가 기부할 쌀부터 먼저 챙긴다.

이렇게 적은 쌀이지만 기부를 하고 나면 아내가 더 좋아한다"며 웃기도 했다.

이씨의 집 한쪽에는 고철과 폐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씨는 1년 동안 틈이 날 때마다 모은 것들이라며, 수년째 매년 설쯤 한꺼번에 판다고 귀띔했다.

판매한 돈은 얼마 안 되지만, 이 씨는 이 돈으로 라면 20박스 정도씩을 사 역시 동사무소에 기부하거나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준다고 한다.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도심 속 농촌으로, 고령의 노인이 많은 이 동네에서 이 씨는 '젊은 일꾼'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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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넓은 논을 경작하다 보니 이 씨는 웬만한 농기계는 거의 가지고 있다.

이 씨가 짬이 날 때면 이 농기계들을 이용해 일손이 필요한 이웃 노인들의 농사일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옆집에서 만난 팔순의 주민은 이 씨에 대해 "나도 농사를 지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며 "정말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이 씨는 "땅을 빌려서 하는 농사라 얼마나 더 할지는 모르겠다"며 "하지만 농사를 짓는 한 계속 수확한 쌀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눠 먹을 생각이다"라고 했다.

고철이나 폐지를 줍는 일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