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만 민주화에 성공하고 다른 국가들은 내전 등 혼란
독재정권에 맞선 'SNS 혁명'…저항정신은 사라지지 않아
중동을 흔든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다.

2010년 12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발원한 아랍의 봄은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을 담은 민중들의 거대한 물결이었다.

경제난과 부정부패에 화난 아랍권 민중은 대규모로 거리로 나섰고 독재자들을 차례로 몰아냈다.

그러나 중동에서 민주화는 아직 요원하고 아랍의 봄은 중동에 정치·경제적 혼란을 초래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 수십 년 독재자들 잇따라 축출…SNS도 한몫
아랍의 봄을 촉발한 사건은 20대 튀니지인 청년의 분신이다.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에서 대학 졸업 후 과일 행상으로 가족을 부양하던 26세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튀니지 중부 시디 부지드의 지방정부 청사 앞에서 분신했고 2011년 1월 5일 숨졌다.

그의 극단적 선택은 경찰의 모욕적인 단속, 청과물과 노점 설비를 모두 빼앗겨 생계가 막막해진 데 대한 항의였다.

부아지지가 분신한 뒤 튀니지에서는 높은 실업률, 빈부 격차 등 경제 문제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정권퇴진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해 12월 초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를 통해 튀니지 대통령 일가의 불법적인 재산 축적, 정부 관리들의 부패상을 담은 외교문서가 공개되면서 튀니지 국민은 이미 불만이 가득 찬 상황이었다.

결국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이 거센 민중봉기에 2011년 1월 권좌에서 물러난 뒤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하면서 23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튀니지에서 불붙은 민주화 시위는 2011년 1월 중순 이집트를 시작으로 인근 아랍국가들로 빠르게 확산했다.

아랍권 민주화 봉기의 파장은 컸다.

이집트, 리비아, 예멘에서는 수십 년 간 군림한 독재자들이 차례로 쫓겨났다.

이집트를 30년간 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2011년 2월 국민의 퇴진 시위에 사퇴했다.

그해 8월 리비아에서는 42년 동안 집권한 무아마르 카다피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시민군의 공세에 수도 트리폴리를 내준 뒤 10월 고향인 시르테에서 저항하다 시민군의 총격에 숨졌다.

예멘에서도 2011년 11월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 속에 권력을 부통령에게 넘기면서 33년 독재를 마무리했다.

또 시리아, 바레인, 알제리, 요르단, 쿠웨이트, 오만 등 많은 국가에서 크고 작은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전례가 없는 아랍권 민주화 시위는 독재 정치와 경제적 궁핍에 대한 국민의 불만, 기득권층의 부패 등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스마트폰이 아랍권 민중들을 뭉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젊은이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활용해 거리로 모였고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면서 시위 규모를 키웠다.

이 때문에 아랍의 봄은 'SNS 혁명'으로도 불린다.

◇ 성공적 민주화 국가는 튀니지뿐…저항의식은 사라지지 않아
아랍의 봄은 유혈사태를 감수하고 독재정치에 맞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커다란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지난 10년을 돌아볼 때 중동에서 민주화 이행에 성공한 국가는 아랍의 봄 발원지인 튀니지가 유일한 것으로 평가된다.

튀니지에서는 2018년 5월 아랍의 봄 이후 처음 지방선거가 실시됐고 작년 10월에는 민주적 선거를 통해 법학 교수 출신 카이스 사이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청년 실업과 높은 물가상승률 등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민생고 시위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다른 아랍국가들은 아랍의 봄 이후 새로운 권위주의 정권이 다시 들어섰거나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이집트에서는 이슬람 운동단체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첫 민선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가 2013년 집권 1년 만에 쿠데타로 축출된 뒤 군부정권으로 회귀했다.

국방부 장관 출신인 압델 파타 엘시시 현 대통령은 무슬림형제단을 비롯한 야권을 대대적으로 탄압했고 권위주의적 통치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크게 제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집트에서는 작년 4월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완화한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하면서 엘시시 대통령의 장기집권 토대가 마련됐다.

리비아의 경우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뒤 무장 단체들이 권력을 놓고 충돌하면서 사실상 무정부 상태를 거쳤다.

현재 유엔이 인정하는 리비아통합정부(GNA)와 동부 군벌 칼리파 하프타르 리비아국민군(LNA) 최고사령관의 내전이 완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시리아와 예멘도 끔찍한 내전에 시달렸다.

아랍의 봄 당시 바사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퇴진 운동이 벌어졌던 시리아에서는 터키,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개입 속에 정부군과 반군의 충돌이 벌어졌다.

예멘에서는 2015년부터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의 예멘 정부를 지원하는 아랍동맹군과 친이란 성향 예멘 반군의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

아랍의 봄에 따른 각국 중앙정부의 약화와 혼란은 패망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가 과거 세력을 키운 배경으로 작용했다.

내전이 벌어진 시리아는 IS의 근거지였으며 이집트 시나이반도, 리비아, 예멘 등에서 IS 연계 무장세력이 활동했다.

아랍의 봄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민주화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시민사회 등 대안 세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튀니지는 시민사회조직들이 결성한 협의체인 '국민4자대화기구'가 순조로운 민주화 이행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지만 다른 국가들에서는 정국을 주도할 민간세력의 힘이 약했다.

다만, 아랍의 봄이 깨운 민중의 저항의식은 계속 중동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알제리에서는 5선을 노리던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전국적인 시위 여파로 물러났고 수단에서는 30년 통치자 오마르 알바시르가 권좌에서 축출됐다.

레바논과 이라크에서도 경제난 등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졌다.

앞으로 중동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의 목소리가 다시 분출될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중동 전문가인 아세프 바야트는 지난달 말 AFP 통신과 인터뷰에서 알제리, 수단 등에서 발생한 민중봉기를 거론하며 "아랍의 봄은 죽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