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일본] 제도 바깥에 있는 사유리 방식 '비혼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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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불법·불가능' 부각됐지만 일본도 법 규정 미비
개인 간 정자 거래로 문제도 발생 일본 출신으로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해온 사유리(본명 후지타 사유리·藤田小百合·41)가 정자를 기증받아 '비혼 출산'했다고 밝히면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아이를 낳을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사유리가 한국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정자 기증으로 아이를 낳을 합법적인 길이 없어 일본에서 정자를 제공받았다고 밝히면서 한국의 법과 제도가 너무 경직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일본 당국을 취재해보니 일본도 비혼 여성의 안전한 출산을 보장하고 있다고 판단하기에는 미흡한 상황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출산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제도적으로 권장되는 방식도 아니다.
일본은 사유리와 같은 방식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지 않으며 이런 방식으로 임신·출산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비혼 출산의 자유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관련 법 규정이 없으므로 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위험은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
기자가 일본 후생노동성 당국자에게 사유리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하고 일본에서는 비혼 여성이 정자를 제공받아 아기를 낳는 것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관리하는지 질의하자 "정자 제공에 관해 특화된 법률이 없는 것이 현 상황"이라고 답했다.
다만 현지 전문가 단체가 정자 기증과 인공 수정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바 있다.
일본 산과부인과(産科婦人科)학회가 2015년 6월 총회에서 승인한 '제공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에 관한 견해'(이하 지침)를 보면 사유리와 같은 비혼 여성은 인공 수정 시술 대상에서 애초에 제외된다.
지침은 제공받은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은 '법적으로 혼인한 부부'이며 몸과 마음이 '임신·분만·육아를 견딜 수 있는 상태'에 있는 자를 대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인공 수정 외 방법으로 임신할 가능성이 없으며 다른 방식으로 임신을 시도하는 것이 여성이나 아기에게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시술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정자 제공자는 심신이 건강해야 하며 감염증이 없고 본인이 아는 한 유전성 질환이 없으며 정액 소견이 정상이어야 한다는 기준도 있다.
동일한 인물이 제공한 정자를 이용한 출생아는 10명 이내로 하며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정자는 익명으로 제공하되 인공수정을 시술한 의사는 정자 제공자의 기록을 보존하도록 했다.
영리를 목적으로 정자를 제공해서는 안 되며 이런 행위를 알선하거나 이에 관여해서도 안 된다.
물론 현실에서는 지침과 다른 방식의 정자 제공도 이뤄진다.
일본 산과부인과학회 관계자는 학회 회원이라면 지침을 지키게 돼 있고 이를 어긴 경우 징계 규정이 있다면서도 "회원이 아닌 경우 규정이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일본은 의사면허가 있으면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전문 분야나 경력을 쌓은 기간과 상관없이 진료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해 간판을 붙일 수 있는 '자유표방제'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산과부인과학회 회원이 아니라도 산부인과 간판을 달고 불임시술 등을 할 수 있다.
업무 허용 범위에 관해 후생노동성 담당자도 산부인과 전문의만 인공수정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라면 누구든지 인공수정 시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자 제공에 관한 법 규정이 미비하기 때문에 정자나 난자를 제공받아 임신하려는 이들의 선택지는 상대적으로 넓은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에서 일본어로 '정자 제공'이라고 검색하면 자신의 정자를 제공하겠다는 게시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받을 사람의 나이, 가족 구성, 배우자 유무, 성적 정체성 등을 따지지 않고 모든 희망자에게 정자를 제공하며 성적 소수자나 싱글맘도 예외는 아니라고 설명하는 사이트도 있다.
개인이 특정되지 않는 수준에서 정자 제공자의 프로필을 홍보하는 게시물도 있다.
예를 들면 혈액형, 신장, 체중 정보와 함께 쌍꺼풀이 있고 머리가 직모라고 설명하거나 명문대를 졸업했다며 얼굴 사진과 이름 등을 가린 학생증 사진을 올린 경우도 있다.
한 게시물은 자신이 많을 때는 한 달에 30건 이상 정자 제공 의뢰를 받고 있고 일하는 시간까지 줄여서 정자를 제공하는 상황이라며 '시간이나 그 장소 대금 등의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는 설명도 붙여놨다.
개인 간 정자 거래의 부작용 사례도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트위터에서 알게 된 한 남성으로부터 정자를 받아 출산했다고 밝힌 30대 기혼 여성은 정자를 제공한 남성의 학력과 국적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게 됐다.
여성은 남성이 명문대인 교토(京都)대 졸업생이라고 생각했고 남성을 직접 만나 정자를 제공받아 작년 여름 임신했다.
남편이 도쿄 소재 국립대 출신이고 해당 남성의 혈액형이 남편과 같았기 때문에 자신의 남편과 비슷한 남성이라고 생각하고 정자 제공자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여성은 임신 후 연락을 주고받다가 임신 5개월 상태에서 해당 남성이 교토대가 아닌 타 대학 출신이고 중국 국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여성은 남성의 정보를 제대로 알았다면 정자를 제공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악질적인 제공자를 규제하는 법률이 필요하다"고 반응했다.
사유리의 출산을 계기로 비혼 여성이 인공 수정으로 아기를 낳는 것이 '일본에서는 가능하다'는 점이 부각됐지만 이면을 좀더 들여다보면 일본의 상황도 그다지 이상적이지는 않은 셈이다.
/연합뉴스
개인 간 정자 거래로 문제도 발생 일본 출신으로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해온 사유리(본명 후지타 사유리·藤田小百合·41)가 정자를 기증받아 '비혼 출산'했다고 밝히면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아이를 낳을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사유리가 한국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정자 기증으로 아이를 낳을 합법적인 길이 없어 일본에서 정자를 제공받았다고 밝히면서 한국의 법과 제도가 너무 경직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일본 당국을 취재해보니 일본도 비혼 여성의 안전한 출산을 보장하고 있다고 판단하기에는 미흡한 상황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출산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제도적으로 권장되는 방식도 아니다.
일본은 사유리와 같은 방식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지 않으며 이런 방식으로 임신·출산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비혼 출산의 자유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관련 법 규정이 없으므로 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위험은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
기자가 일본 후생노동성 당국자에게 사유리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하고 일본에서는 비혼 여성이 정자를 제공받아 아기를 낳는 것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관리하는지 질의하자 "정자 제공에 관해 특화된 법률이 없는 것이 현 상황"이라고 답했다.
다만 현지 전문가 단체가 정자 기증과 인공 수정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바 있다.
일본 산과부인과(産科婦人科)학회가 2015년 6월 총회에서 승인한 '제공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에 관한 견해'(이하 지침)를 보면 사유리와 같은 비혼 여성은 인공 수정 시술 대상에서 애초에 제외된다.
지침은 제공받은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은 '법적으로 혼인한 부부'이며 몸과 마음이 '임신·분만·육아를 견딜 수 있는 상태'에 있는 자를 대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인공 수정 외 방법으로 임신할 가능성이 없으며 다른 방식으로 임신을 시도하는 것이 여성이나 아기에게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시술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정자 제공자는 심신이 건강해야 하며 감염증이 없고 본인이 아는 한 유전성 질환이 없으며 정액 소견이 정상이어야 한다는 기준도 있다.
동일한 인물이 제공한 정자를 이용한 출생아는 10명 이내로 하며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정자는 익명으로 제공하되 인공수정을 시술한 의사는 정자 제공자의 기록을 보존하도록 했다.
영리를 목적으로 정자를 제공해서는 안 되며 이런 행위를 알선하거나 이에 관여해서도 안 된다.
물론 현실에서는 지침과 다른 방식의 정자 제공도 이뤄진다.
일본 산과부인과학회 관계자는 학회 회원이라면 지침을 지키게 돼 있고 이를 어긴 경우 징계 규정이 있다면서도 "회원이 아닌 경우 규정이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일본은 의사면허가 있으면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전문 분야나 경력을 쌓은 기간과 상관없이 진료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해 간판을 붙일 수 있는 '자유표방제'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산과부인과학회 회원이 아니라도 산부인과 간판을 달고 불임시술 등을 할 수 있다.
업무 허용 범위에 관해 후생노동성 담당자도 산부인과 전문의만 인공수정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라면 누구든지 인공수정 시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자 제공에 관한 법 규정이 미비하기 때문에 정자나 난자를 제공받아 임신하려는 이들의 선택지는 상대적으로 넓은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에서 일본어로 '정자 제공'이라고 검색하면 자신의 정자를 제공하겠다는 게시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받을 사람의 나이, 가족 구성, 배우자 유무, 성적 정체성 등을 따지지 않고 모든 희망자에게 정자를 제공하며 성적 소수자나 싱글맘도 예외는 아니라고 설명하는 사이트도 있다.
개인이 특정되지 않는 수준에서 정자 제공자의 프로필을 홍보하는 게시물도 있다.
예를 들면 혈액형, 신장, 체중 정보와 함께 쌍꺼풀이 있고 머리가 직모라고 설명하거나 명문대를 졸업했다며 얼굴 사진과 이름 등을 가린 학생증 사진을 올린 경우도 있다.
한 게시물은 자신이 많을 때는 한 달에 30건 이상 정자 제공 의뢰를 받고 있고 일하는 시간까지 줄여서 정자를 제공하는 상황이라며 '시간이나 그 장소 대금 등의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는 설명도 붙여놨다.
개인 간 정자 거래의 부작용 사례도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트위터에서 알게 된 한 남성으로부터 정자를 받아 출산했다고 밝힌 30대 기혼 여성은 정자를 제공한 남성의 학력과 국적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게 됐다.
여성은 남성이 명문대인 교토(京都)대 졸업생이라고 생각했고 남성을 직접 만나 정자를 제공받아 작년 여름 임신했다.
남편이 도쿄 소재 국립대 출신이고 해당 남성의 혈액형이 남편과 같았기 때문에 자신의 남편과 비슷한 남성이라고 생각하고 정자 제공자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여성은 임신 후 연락을 주고받다가 임신 5개월 상태에서 해당 남성이 교토대가 아닌 타 대학 출신이고 중국 국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여성은 남성의 정보를 제대로 알았다면 정자를 제공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악질적인 제공자를 규제하는 법률이 필요하다"고 반응했다.
사유리의 출산을 계기로 비혼 여성이 인공 수정으로 아기를 낳는 것이 '일본에서는 가능하다'는 점이 부각됐지만 이면을 좀더 들여다보면 일본의 상황도 그다지 이상적이지는 않은 셈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