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재화를 유통시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이기에, 천하에 계절이 돌고 돌아 만물이 생육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해도 좋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부(富)를 산(山)과 같이 이뤘다 하여도 그 행위를 탐욕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

18세기 일본 에도시대의 사상가 이시다 바이간(초상화)의 《도비문답(都鄙問答)》에 나오는 대목이다. 사농공상 체계에서 가장 아래로 여겨지던 상인이 세상에서 얼마나 크고 이로운 도(道)를 실천하고 있는지 설파한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교토의 어떤 이가 비천한 이와 나눈 문답’이란 뜻이다. 도(都)는 에도시대 일본의 중심지이던 교토다. 비(鄙)는 ‘시골에 사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란 의미이자 이시다 자신을 가리킨다. 이시다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 파나소닉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 등 일본 유명 경영인이 존경하는 사상가다. 《도비문답》 역시 일본 기업인의 필독서로 꼽힌다.

이시다는 일본에서 상인계급의 직분을 재평가하고, 당시 천대받던 상인의 이익 추구 행위를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이끈 학자다. 1685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부이자 상인으로 살아가다가 37세부터 학문에 정진하기 시작했다. 1729년 45세에 자신의 집을 강의실로 삼아 무료로 수업을 하며 제자들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의 강의엔 남녀, 계급 구별이 없었다. 당시 최상층이던 사무라이부터 농부, 장인(匠人), 상인 등 거의 모든 계급 사람들이 이시다를 찾아왔다. 《도비문답》과 《검약제가론》 등의 저서를 남기고 60세에 세상을 떠났다.

17~18세기 일본에선 조닌(町人), 즉 도시의 상인과 장인 계급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부를 축적하고 사회, 경제적 주도권을 장악했다. 사무라이들도 조닌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농공상 신분제에서 조닌은 최하층이었다. 그들은 심한 자괴감에 빠져 명예, 책임, 의무와 같은 윤리적 잣대를 경시하고 재물 축적에만 집착했다. 이시다는 “사무라이에게도 무사의 도가 있듯이 상인에게도 상인의 도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시다의 가르침은 간결했다. 우선 그 자신이 독학으로 공부했다. 특정 학파에 얽매이지 않았다. 생활에서 터득한 깨달음을 서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렸다. 근면, 배려, 정직, 검약 등 인생의 핵심 진리를 문답을 통해 쉬운 단어로 설명했다.

상인도 학문을 익혀야 하고, 상인만의 학문이 있다고 주창했다. 책 속의 문답 중 ‘상인이 왜 공부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이렇게 질문한다. “대체로 상인은 욕구가 강한 자가 많고 평소 이익을 게걸스럽게 탐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인간들에게 무욕의 마음가짐을 설파하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도 같은 것. 상인에게 학문을 장려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시다는 이 물음에 “그대는 사농공은 제외하고 오직 상인이 녹을 받는 것을 ‘욕심’이라고 말하며 ‘상인이 도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일방적으로 단정하고 있다. 그것이 무슨 이치란 말인가”라고 반문한다. “상인의 매매는 천하공인의 틀림없는 녹봉”이라며 주군으로부터 봉록을 받는 사무라이와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또 “상인이 소비자의 부름에 응하는 것은 임무에 응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탐욕을 좇고 있음이 아니다”고 덧붙인다.

정당한 이윤을 얻으며 바르게 살아가는 상인은 학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이시다는 “우리 주인이 왜 손해를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을 돕는지 모르겠다”고 묻는 제자에게 “돈은 돌고 도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도와야 할 필요가 있다고 그대의 주인은 생각하고 있다”고 운을 뗀다. 이어 “잘 모으고 또한 잘 베푸는 지금의 주인이 학문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설령 책 한 권 글자 한 자 배운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학자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시다가 추구한 ‘진정한 상인’의 모습은 “상대도 잘되고 자신도 잘되는 것을 바라는 이”다. 그는 “세상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겉으로는 상인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는 도둑과 같은 자가 있다”며 “그런 자들과 진정한 상인을 같은 선상에 놓고 논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약 300년 전의 말이지만 21세기인 지금 들어도 울림을 준다. 귀천을 가리지 않고 일상 속 철학을 가르친 이시다의 사상은 일본을 선진국 반열에 올린 동력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