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사법부 독립은 재판 독립이지 사무·예산 독립 아냐"
대법원 뒤늦게 TF 구성…윤리감사기구 대법원장 직속으로 개편

법원이 수년간 가구 등 물품을 구매하면서 예산을 낭비하고 관련 법을 쉽게 위반하게 된 원인으로는 법원 내 자체 감사 기능의 부재가 첫손에 꼽힌다.

법원이 감사원 등 외부의 지적에도 그동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데 대해서는 다른 기관에 비해 독립성이 중시되는 특성을 악용한 행태라는 지적이다.

대법원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전국 법원의 물품 구매 절차를 점검하고, 독립적인 감사 기구를 설치하는 등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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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불법 수의계약 점검…윤리감사기능 개편
대법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법원 가구 구매 과정의 불법 사항이 다수 드러나자 뒤늦게 TF를 구성해 실태 파악을 위한 점검에 나섰다.

점검은 지난해 신청사로 옮긴 수원고·지법(수원법원종합청사)과 전주지법을 중심으로 지난달 23일부터 28일까지 엿새간의 자체 감사, 전국 법원의 물품구매 단가기준·집행 절차에 대한 검사 등으로 이뤄졌다.

대법원은 앞으로 불법 쪼개기 수의계약을 방지하기 위해 수의계약 운용지침을 제정할 방침이다.

우선 이달부터 수의계약 정보를 각 법원 홈페이지에 즉시 공개하기로 했다.

문제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 자체 감사 기능 부재와 관련, 대법원은 내년 2월 시행되는 법원조직법 일부 개정안에 따라 대법원장 직속으로 차관급의 윤리감사관(정무직)을 두기로 했다.

대법원은 자체적인 회계 검사 기능을 두고 있지 않다가 2018년 감사원 지적에 따라 법원행정처 예산담당관실에 회계 검사 기능을 신설했다.

그러나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예산담당관실에서 회계 검사 기능을 맡도록 한 것에 대한 부적절성이 지적되자 대법원은 실질적·독립적으로 법관과 법원 행정에 대해 감사할 수 있도록 윤리감사 기능을 개편하기로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감사원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 독립적인 감사 기구를 운용키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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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감히 우릴 건드려" 법원 선민의식이 문제
법원의 불법 수의계약 및 판로지원법 위반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법원이 가진 일종의 선민의식 또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박 의원은 "법원, 즉 사법부 독립의 핵심은 재판의 독립을 말하는 것이지, 행정 사무나 예산 사용에 대한 자유를 이르는 것이 아님에도 법원은 감사원 등 외부 지적에 장기간 꿈쩍도 하지 않았다"며 "법원 내에 '누가 우리를 건드리랴'는 생각이 만연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은 연간 2조 원 이상의 예산을 쓰고, 2만 명 가까운 인력을 운용하는 기관인데도 지금까지 독립적인 감사기구가 없었다"며 "정부 부처 어디도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곳은 없다.

법원조직법 개정 이후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불법 쪼개기 수의계약이 이뤄진 이번 사례의 경우 마땅히 처벌 규정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국회 차원에서는 이와 관련한 벌칙 조항을 신설하는 입법 조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대법원에 전국 법원의 5년간 물품·공사·용역 등 전체 계약 내용과 관련한 자료를 요청했다.

이를 분석한 뒤 부적절한 부분이 추가로 발견될 경우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 방안을 요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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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구연한 지나면 무조건 불용처리?…"새 기준 마련해야"
국감 이후 대법원이 여러 사항을 점검하고 있지만, 불용품 처리 기준에 대해서는 아직 별다른 개선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대로라면 사용 가능 햇수가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사용 가능한 가구 등 비품의 폐기 처분을 막을 수 없고 불용품을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마땅한 규정이 없어 각종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관련 법인 물품관리법은 관리 전환이나 매각의 가능성이 없는 불용품을 비영리단체에 무상 양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외에 구체적인 양여 방식이나 기준은 없다.

지난해 12월 전주지법이 신청사로 이전하면서 내구연한이 지난 가구 등 3천253개(취득가 기준 13억 원 상당)의 물품을 불용처리한 뒤 특정 장애인 단체 1곳에 무상으로 양여하고도 "법적 절차에 따라 불용품을 처분했다"는 입장을 낼 수 있었던 배경이다.

최호택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내구연한이 지났다고 해도 충분히 사용 가능한 물품을 손쉽게 불용처리해선 안 된다"며 "또 불용 처리키로 했다고 해도, 매각을 통해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물품까지 무상 양여했다면 문제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불용품을 특정 단체에 지속해서 양여한 정황은 법원과 이들 간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며 "다양한 단체에 양여 혜택을 제공해 공정성을 제고하고 양여 단체의 선정 기준과 물품의 사용처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 처분 과정이 공익적이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