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금만 더 살아봐요.
저는 누군가가 저한테 죽지 말고 살아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말해볼게요.
죽지 말고 조금만이라도 더 살아보세요.
"
지난달 말 한 페이스북 비공개그룹의 토론 게시판에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글이 올라오자 극단적 선택을 만류하기 위한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이 그룹은 우울감을 호소하거나 자해, 자살을 시도하려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난 2월 개설됐으며 8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2007년생', '15살', '중2병' 등 10대 청소년으로 추정되는 글을 게시한 회원이 많아 청소년 자살 문제의 현주소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 "털어놓고 힘내자" 위로·공감 다수…'자해 인증 샷'은 눈살
그룹에서는 한 회원이 어려운 집안 사정이나 부진한 성적, 가정불화 등 우울감 원인이 되는 일을 토론 게시판에 털어놓으면 다른 회원들이 댓글로 다독이며 극단적 선택을 만류한다.
한 이용자가 지난 1일 "엄마랑 언니가 싸우다 (집안의) 물건들을 다 던진다.
언니는 나를 때리고, 엄마는 나보고 물건을 치우라고 한다.
죽고 싶다"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리자 "힘내라. 스트레스받지 말라"와 같은 격려 댓글이 12개가량 달렸다.
이에 게시글 작성자는 "힘내겠다.
공감해 줘서 고맙다"고 답변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2일 자정 무렵 "기분 좋아지는 법 없냐"는 글을 남겼다.
한 줄이 채 안 된 짧은 내용이었지만 "쇼핑하세요.
마스크팩도 사고, 바디워시도 사고, 매니큐어도 사고. (그러고 나서) 불고기버거도 먹고 쵸코라떼도 사 먹고요.
이 정도면 보람 있죠? 누구보다 소중한 건 자기 자신이에요"와 같이 격려하는 답글이 달렸다.
페이스북에서 '자해'를 검색하면 비슷한 그룹이 7개가량 나온다.
대부분 코로나가 확산하기 시작한 2월 이후 개설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난 데에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또래와의 관계 단절, 성적에 대한 강박, 가정불화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 따르면 지난 3~9월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의 자해 및 자살 문제 상담건수는 5천468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3천222건보다 69.7% 늘었다.
이중 자살 문제 상담은 3천292건으로 작년 동기(1천660건)의 2배로 급증했다.
◇ "자해 관련 글 모방은 위험…학교·부모 1차적 보호막 돼야"
전문가들은 자해, 자살을 막기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청소년들이 집에서 편하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창구가 됐다고 평가했다.
청소년들의 주된 생활 공간인 학교, 가정 등이 일차적으로 보호막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페이스북 그룹에서는 학교 내 상담시스템을 이용했다가 자해 사실이 또래 친구들에 알려져 생활이 더 힘들어졌다는 글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센터장인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 장기화로 친구들과 직접 만나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관계 형성을 중요시하는 청소년들이 쉽게 우울함에 빠질 수 있는 환경"이라며 "부모나 교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보다 온라인에서 불특정 다수 또래와 소통하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에 이런 커뮤니티가 자꾸 개설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자해나 자살 내용을 담은 게시글이 재확산되면 모방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회원이 자해 사진을 공유하거나 자해 방법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글을 게시해 다른 회원의 자해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이용자가 9월 초 "자해 사진 좀 주실 수 있나요.
지금 코로나 때문에 못 나가서 대신 만족 좀 하게"라는 글을 올리자 자해 사진과 영상이 포함된 댓글이 60여개나 달리기도 했다.
'자해 안 아프게 하는 법', '잠깐 기절하는 법',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들키지 않고 자해하는 법' 등 부적절한 글과 자해 관련 사진, 영상이 별다른 모자이크 없이 공개돼 커뮤니티 회원 누구나 볼 수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신체를 해치려는 시도를 인증샷으로 남겨 공유하면 불특정 다수로부터 공감받는 시스템이 형성된 일부 커뮤니티에서 일종의 '심리적 지원'을 받는 효과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해당 사이트를 운영하는 담당자들이 일정한 수위를 넘는 자살 및 자해 관련 게시글을 쓴 작성자에게 경고하거나 임의로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자체 정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