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 형성 과정은 상당히 독특합니다. 개항도 동아시아에서 가장 늦었고, 일제강점기 기간도 36년이나 됩니다. 그런데도 백성에서 국민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분명 존재해요. 사회학자로서 그 흐름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국민의 탄생》(민음사)의 저자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64·사진)은 지난 26일 서울 삼성동 포스코타워에서 인터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인민의 탄생》《시민의 탄생》에 이어 ‘탄생 3부작’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인민의 탄생’은 조선시대부터 동학운동이 일어난 1894년, ‘시민의 탄생’은 1894년부터 1910년 경술국치, ‘국민의 탄생’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부터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까지 다뤘다.

송 교수는 “1919년은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정신적 국민’이 출현한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그 해 1월 고종이 서거했고, 3·1 운동이 일어났고, 4월에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고 말했다. “3·1 운동은 고종의 서거 후 ‘고아가 된 백성’이 ‘주체 의식을 가진 정신적 국민’이 된 대사건이었습니다. 군주와 국가가 분리됐죠.”

‘탄생 3부작’에선 한국의 근대국가와 근대 국민의 탄생을 논하기 위해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틀로 삼았다. “암울한 식민지 시대에도 공론장은 있었다”는 게 송 교수의 설명이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도 숨을 다 못 쉬었을까요. 그 엄혹한 일제강점기에도 존재론적 자각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걸 종교와 문예, 사회 운동이라는 공론장을 통해 살펴봤습니다.”

다음은 송 교수와 1문 1답이다.

▷인민과 시민, 국민은 지금도 혼용되고 있는 용어입니다. 어떤 의미로 이 세 가지 용어를 쓰셨습니까.
▶“아무래도 사회학의 주요 이론들이 유럽에서 온 것이라 번역 과정에서 뒤섞여 쓰일 때가 많은 건 사실입니다. 저는 이번 시리즈를 쓰면서 한글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문해(文解) 인민, 평민 공론장에서 자아를 자각하기 시작하는 시민, 정신적 국가의 국민이란 뜻으로 썼습니다.”

▷일제강점기에서 국민이란 개념이 어떻게 등장할 수 있었나요.
▶“3·1 운동 전까지만 해도 국민, 한국 등의 용어는 지식인 계층에서만 쓰였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어지고 일제 치하 식민지가 됐기 때문에 국가 개념에 대한 명확한 단어를 쓸 수 없었죠. 하지만 3·1 운동은 일반 ‘백성’들에게 ‘정신적인 국민 의식’을 폭발시킨 계기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독특한 면을 발견할 수 있어요.”

▷어떤 점입니까.
▶“눈에 보이는 특정 주도 세력이 없다는 겁니다. 매우 산발적으로 나타나요. 분명 국민이란 개념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신호는 보이는데 이걸 엮고, 조망할 방도를 찾기 힘들어요. 자료는 많은데 실체를 딱 정의하기가 애매하죠. 이 부분은 앞으로 연구가 더 많이 필요해요. 사학과 사회학, 국문학, 정치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가 협력해야 합니다.”

▷한반도의 역사만큼 역동적이고 복잡한 사례는 보기 힘들 겁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국내 사회학계에선 이 시기 연구가 별로 없다고 보십니까.
▶“서양의 사회학 이론 연구에 너무 기울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한국을 만들게 한 뿌리를 단순히 시간의 흐름으로만 치부하긴 어렵지 않겠습니까. ‘한국의 사회학’이 없단 게 현실이죠. 저도 이 책을 쓰기 위해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끌고 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다면 일제강점기 공론화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910년대의 공론장은 한마디로 암흑입니다. 총독부의 식민 통치는 역사상 유례 없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예와 종교, 사회 운동은 살아있었어요. 예를 들어 이광수의 소설 ‘무정’에선 당시 지식층의 의식을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죠. 천도교나 기독교는 교리와 조직, 신자를 갖춘 유형의 존재였고요. 해외 독립운동 조직이 사회 운동 역할을 합니다. 저는 이 조직을 ‘환상형(環狀形) 공화 네트워크’라고 부릅니다.”

▷환상형 공화 네트워크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도산 안창호를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해외에 망명해 있으면서 한반도 내 인사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합니다. 3·1 운동 이후 이 조직은 세계 각국에 각종 선언서, 통고문, 호소문을 보내면서 일제 치하의 현실을 알리고자 하죠. 이들이 국민의 탄생에 큰 영향을 미쳤고,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가 됩니다.”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의 헌법이 ‘정신적인 국민국가’를 선언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건국 시점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임시정부가 현실의 국가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무형의 의식 속 정신적 국민국가였어요. 현실 국가는 1948년 건국됐죠. 이런 의미에서 1919년을 건국절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이번 책은 사회학자로서 내셨습니다. 칼럼니스트, 작가로서의 송호근은 어떤 인물입니까.
▶“어느 시대든 지식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제목처럼 ‘오만과 편견’으로 나타나요. 저는 좌우를 좀 왔다갔다 하는 편입니다. 칼럼을 쓸 때 ‘정권과 반대로 간다’는 게 제 원칙입니다. 거리를 항상 유지하기 위해서요. 책과 칼럼을 쓰기 위해선 저만의 입장을 고수하기 어려우니까요. 항상 공부하고, 항상 경계하고, 항상 저의 위치를 파악해야죠. 제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열린 마음도 있어야 하고요.”

▷이 시리즈의 후속작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이고, 혼자서는 더 이상 못해요. 너무 힘들어요. 한국의 근대란 주제는 쓰면 쓸수록 물음표만 커져요. 결국 어떤 실마리나 해답은 내놓지 못했잖아요.”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