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결과 토대로 수사, 현장검증 강압 없어"…법정 사과한 형사들과 대조
실종 화성 초등생 '사체은닉' 혐의도 "금시초문…경찰이 짜맞추기 수사"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당시 형사계장 A씨는 26일 "강압 수사는 없었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또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 때 피해자의 사체를 은닉한 혐의에 대해서도 "금시초문"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A씨는 이춘재 8차 사건과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의 실무수사 총괄 책임자였다.

이춘재는 경찰의 8차 사건 재수사 과정에서 장기 미제로 분류돼 있던 초등생 실종사건도 자신이 저지른 것이라고 자백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A씨 등 8차 사건 당시 경찰관들이 강압 수사로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고, 초등생 실종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유골이 나왔는데도 이를 은닉했다고 밝힌 바 있다.

A씨는 두 사건에서 직권남용과 사체은닉 등 혐의로 입건됐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받지 않았다.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 심리로 이날 열린 이 8차사건 재심 공판에서 A씨는 "현장검증 과정에서 강압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춘재 8차사건 당시 형사계장 "난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어"
그는 "현장에 언론인이 수없이 많았고, 엄청난 수의 주민이 바라보고 있었다.

피해자 가족들도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재심 피고인에게) 강제로 무언가 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재심을 청구한 윤성여(53)씨의 변호인 박준영 변호사는 "증인으로 나온 다른 경찰관은 '윤씨가 피해자의 집 담을 넘는 시늉만 했다'고 증언했고, 당시 현장검증을 본 윤씨의 숙부는 '가진 것이 없어 불이익을 받는구나'라고 억울해했다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A씨는 그러나 "국과수 감정서가 있어 그걸 토대로 수사했다"며 "나는 경찰관으로서 열심히 근무한 죄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A씨의 이날 증언은 당시 윤씨를 경찰서로 임의동행해 잠을 재우지 않고 조사했다는 의혹을 받은 전직 경찰관들의 증언과는 대조를 이룬다.

지금까지 증언대에 선 경찰관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창피하다", "법정에 나오기까지 힘들었다"며 윤씨를 향해 사과의 뜻을 내비친 바 있다.

박 변호사는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과 관련해서도 "경찰 재수사 결과를 보면, 증인은 당시 실종된 화성 초등생의 유골을 야산에서 발견했다.

당시 피해자의 양손이 줄넘기로 결박돼 있었던 것이 맞느냐"며 사체 은닉 혐의에 대해 캐물었다.

A씨는 "금시초문이다.

경찰이 짜 맞추기 수사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1989년 7월 7일 초등학교 2학년이던 김모(8)양이 화성군 태안읍에서 하굣길에 실종된 사건으로 당시 경찰은 단순 실종으로 사건을 분류했다.

결국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지 않아 장기 미제로 남아 있었다.

경찰은 재수사 결과 A씨가 당시 김양의 유골에 손을 댔다고 보고, 그를 정식으로 입건했다.

이춘재 8차사건 당시 형사계장 "난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어"
A씨의 증인 출석에 앞서 오전 공판에는 윤씨의 20여년 수감생활 중 16년을 봐 온 청주교도소 교도관이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윤씨가 2000년께 무기수에서 20년 형으로 감형받은 뒤부터는 내내 '억울하다'며 재심을 알아봤다"고 증언했다.

또 전직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이 출석해 국과수 감정과 관련한 여러 질문에 대해 답했다.

다음 공판은 내달 2일 열린다.

이 재판에는 이춘재가 증인으로 출석한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모씨 집에서 13세 딸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지칭한다.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하면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2심과 3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기각했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