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별세한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이건희 삼성 회장이 별세한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이건희 삼성 회장의 별세로 ‘이재용 삼성’ 시대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2014년 이 회장의 갑작스러운 와병으로 인한 ‘회장 부재’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뉴 삼성’이라는 새로운 리더십을 앞세워 ‘준비된 후계자’의 면모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 앞에 놓인 도전 과제도 만만치 않다. 미·중 무역 분쟁, 글로벌 불확실성 증대, 반도체 합종연횡 등 대외 변수에 더해 국내에선 사법 리스크까지 떠안고 있다. ‘삼성이 미증유의 복합위기에 처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 재편’ 가속화 전망

삼성 고위관계자는 25일 “이 회장의 별세로 그룹 향후 경영 체제에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현행 경영시스템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2014년부터 ‘회장 부재’란 위기를 맞아 경영일선에 전면 등장한 뒤 굵직한 경영 성과를 내면서 삼성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는 이유에서다.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그룹 총수(동일인)를 이 회장에서 이 부회장으로 변경하면서 명실상부한 ‘이재용 시대’가 공인됐다는 설명이다.

이 부회장은 방위산업·화학 계열사 매각(2014년 11월), 미국 하만 인수(2016년 11월) 등 사업구조 재편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18년 8월엔 5G(5세대) 이동통신, AI(인공지능) 등 ‘4대 미래 성장사업’을 공개했고 2019년 4월엔 ‘시스템반도체 133조원 투자’ 등 삼성의 미래 비전도 제시했다.

지난해 한·일 갈등으로 일본의 수출 규제가 본격화한 이후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일본 출장 직후 사장단회의에서 낸 ‘긴장하되 두려워 말자’ 같은 메시지는 임직원을 하나로 묶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복합위기 극복 과제

하지만 최근 삼성의 위기는 ‘실질적인 삼성 총수’ 역할을 한 이 부회장에게도 난관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형 악재가 동시에 덮친 ‘복합위기’ 상황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외부 요인으론 미·중 무역분쟁이 대표적이다. 미국이 지난 5월 중국 화웨이 제재를 본격화하면서 삼성전자는 미·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5개월 넘게 이어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영환경 변화도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면서 “한국 기업으로서 삼성전자의 어려움이 만만치 않을 것”(김현석 삼성전자 CE부문 사장)이란 걱정이 많다.

국내에선 ‘사법 리스크’가 만만치 않다. 삼성은 2016년 말 시작된 특검 수사와 이어지는 재판으로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 부회장 본인도 2017년 1월 특검의 첫 소환조사 이후 지금까지 총 열 차례 이상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법원에 발이 묶인 탓에 삼성의 인수합병(M&A) 시계는 경쟁사보다 천천히 돌고 있다. 특히 미국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경쟁 업체들이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빅딜에 나서면서 ‘삼성이 도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작지 않다.

‘뉴 삼성’ 리더십으로 위기 돌파

산업계에선 이 부회장이 사장단회의, 현장경영 등에서 언급한 ‘뉴 삼성’ 리더십을 앞세워 복합위기를 이겨낼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 부회장은 올 들어 “힘들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임직원들을 독려하며 총 20조원이 넘는 반도체·바이오 투자 결단을 내렸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이 미래 핵심 사업으로 꼽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선 퀄컴, 엔비디아로부터 대형 계약을 따냈다. 삼성 관계자는 “위기에 더욱 공격적으로 경영하는 삼성의 ‘성공 방정식’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재경영’도 이 부회장의 경영 키워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훌륭한 인재가 나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하는 게 내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성 계열사 대표이사(CEO) 출신 황영기 한미협회장(전 금융투자협회장)은 “이재용 부회장만큼 삼성에 대해서 잘 알고 치열하게 경영 수업을 받은 경영인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