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의 베토벤을 구출한 드로잉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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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콘서트 오페라 '피델리오' 리뷰
베토벤 탄생 250년을 맞이해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박형식)이 준비한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는 코로나19에 가로막혀 하마터면 관객을 만나지 못 할 뻔했다.
비대면 온라인 중계로 예정됐다가 2주 전 '사회적 거리두기'의 완화 덕분에 갑작스럽게 대면 공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23일 열린 첫 공연은 타이틀롤을 맡은 소프라노 서선영과 플로레스탄 역을 노래한 테너 국윤종 등의 열연으로 극장 관객과 온라인 시청자 모두에게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24일 대면 공연을 포함해 단 2회 공연이 이뤄졌고, 국립오페라단은 방역수칙을 적용해 오페라극장 1층과 2층의 497석을 오픈했다.
이틀간 유료 관객 점유율만 해도 약 80%에 이르렀고, 거리를 두고 연 객석은 거의 만석이었다.
오페라 '피델리오'는 스페인 세비야의 지하 감옥에 억울하게 불법 투옥된 남편 플로레스탄을 구하려고 피델리오라는 이름의 간수로 위장취업한 아내 레오노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4일 공연에서는 소프라노 고현아, 테너 한윤석이 주역을 맡았고 그 외의 출연진은 전날과 같았다.
피델리오 서곡이 끝난 뒤 등장한 마르첼리네 역의 소프라노 김샤론과 자퀴노 역의 테너 민현기가 귀에 꽂히는 청량한 미성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고현아의 레오노레는 명징한 고음으로 고난도의 아리아와 중창 등을 탁월하게 소화했고, 한윤석의 플로레스탄은 약간의 난조는 있었지만 인물에 어울리는 음색과 연기로 돋보였다.
로코 역의 베이스 전승현은 따뜻한 아버지와 소신 있는 간수장의 역할을 적절한 음색 변화로 설득력 있게 표현했고, 악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교도소장 피차로 역의 바리톤 오동규는 가창과 연기를 통해 배역 특유의 야비한 면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마지막에 구원자로 등장하는 법무장관 돈 페르난도 역의 바리톤 이혁은 따뜻하면서도 위엄 있는 인물의 특성을 유연하게 구현했다.
드로잉 아티스트 케보크 무라드와의 협업은 획기적인 선택이었다.
시리아 출신으로 '정치적 억압과 자유'라는 주제에 각별한 감각을 지닌 그는 무대와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스크린에 투사되는 흑백 드로잉 작업을 통해 세비야라는 배경을 보여줄 뿐 아니라, 화려한 지상의 건축물과 지하감옥의 절망적인 깊이감을 대비시키는 데 성공했다.
회화와 애니메이션을 접목한 그의 작업 속에서 오페라 주인공들의 상상은 한순간에 현실이 됐다가 환영처럼 사라진다.
마르첼리네가 피델리오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상상할 때는 텅 비어 있던 어두운 거실에 순식간에 가족용 식탁이 놓이고 환하게 불이 켜진다.
간수장 로코가 딸 마르첼리네의 풍족한 삶을 바라는 노래를 부르면 벽면에 금박을 입힌 액자들이 줄줄이 박힌다.
깊은 감옥의 어둠 속에서 플로레스탄이 아내 레오노레를 천사로 상상할 때는 천사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려지기도 한다.
화면에 가끔 등장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화가의 거대한 손은 마치 지상에 정의를 구현하려는 섭리의 손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미스테이지 형식이긴 했지만 연출가 김동일의 세심한 연출은 드로잉 작업과 조화를 이뤄 더욱더 자연스러운 무대를 만들어냈다.
드라마투르그 이단비의 매끄러운 번역 대본도 관객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줬다.
독일 지휘자 제바스티안 랑 레싱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2막 초반과 몇몇 부분에서 사소한 실수는 있었지만, 랑 레싱은 음악에 넘치는 에너지와 활력을 불어 넣으며 완급조절에 완벽하게 성공했을 뿐 아니라 꼭 필요한 부분에서 개별 악기군이 음악의 뉘앙스를 최적으로 살릴 수 있게 이끄는 노련함을 보였다.
특히 레오노레가 남편을 구출한 뒤 피날레가 시작되기 전에 특별히 어려운 레오노레 서곡 3번을 간주곡으로 연주해 관객들의 폭풍 같은 갈채를 받았다.
국립합창단의 원숙한 하모니는 죄수들의 합창뿐 아니라 어려운 리듬이 이어지는 피날레의 합창에서도 빛을 발했다.
국립오페라단은 이번 공연에 '콘서트 오페라'라는 명칭을 달았지만, 무대장치가 아쉽지 않은 뛰어난 드로잉 아트와 성악가들의 실감 나는 연기가 함께해 정식 오페라 공연으로 손색이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오페라 공연 형식의 가능성을 보여준 성공적인 예가 됐다.
무대장치가 있는 일반적인 공연 못지않게 장면 몰입도가 높았고 음악에도 효율적으로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시도가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젊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본다.
어떤 공연 장르보다도 대면 공연이 절실한 오페라 공연이 이대로 이어질 수 있기를 또한 간절히 바란다.
rosina@chol.com
/연합뉴스
비대면 온라인 중계로 예정됐다가 2주 전 '사회적 거리두기'의 완화 덕분에 갑작스럽게 대면 공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23일 열린 첫 공연은 타이틀롤을 맡은 소프라노 서선영과 플로레스탄 역을 노래한 테너 국윤종 등의 열연으로 극장 관객과 온라인 시청자 모두에게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24일 대면 공연을 포함해 단 2회 공연이 이뤄졌고, 국립오페라단은 방역수칙을 적용해 오페라극장 1층과 2층의 497석을 오픈했다.
이틀간 유료 관객 점유율만 해도 약 80%에 이르렀고, 거리를 두고 연 객석은 거의 만석이었다.
오페라 '피델리오'는 스페인 세비야의 지하 감옥에 억울하게 불법 투옥된 남편 플로레스탄을 구하려고 피델리오라는 이름의 간수로 위장취업한 아내 레오노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4일 공연에서는 소프라노 고현아, 테너 한윤석이 주역을 맡았고 그 외의 출연진은 전날과 같았다.
피델리오 서곡이 끝난 뒤 등장한 마르첼리네 역의 소프라노 김샤론과 자퀴노 역의 테너 민현기가 귀에 꽂히는 청량한 미성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고현아의 레오노레는 명징한 고음으로 고난도의 아리아와 중창 등을 탁월하게 소화했고, 한윤석의 플로레스탄은 약간의 난조는 있었지만 인물에 어울리는 음색과 연기로 돋보였다.
로코 역의 베이스 전승현은 따뜻한 아버지와 소신 있는 간수장의 역할을 적절한 음색 변화로 설득력 있게 표현했고, 악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교도소장 피차로 역의 바리톤 오동규는 가창과 연기를 통해 배역 특유의 야비한 면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마지막에 구원자로 등장하는 법무장관 돈 페르난도 역의 바리톤 이혁은 따뜻하면서도 위엄 있는 인물의 특성을 유연하게 구현했다.
드로잉 아티스트 케보크 무라드와의 협업은 획기적인 선택이었다.
시리아 출신으로 '정치적 억압과 자유'라는 주제에 각별한 감각을 지닌 그는 무대와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스크린에 투사되는 흑백 드로잉 작업을 통해 세비야라는 배경을 보여줄 뿐 아니라, 화려한 지상의 건축물과 지하감옥의 절망적인 깊이감을 대비시키는 데 성공했다.
회화와 애니메이션을 접목한 그의 작업 속에서 오페라 주인공들의 상상은 한순간에 현실이 됐다가 환영처럼 사라진다.
마르첼리네가 피델리오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상상할 때는 텅 비어 있던 어두운 거실에 순식간에 가족용 식탁이 놓이고 환하게 불이 켜진다.
간수장 로코가 딸 마르첼리네의 풍족한 삶을 바라는 노래를 부르면 벽면에 금박을 입힌 액자들이 줄줄이 박힌다.
깊은 감옥의 어둠 속에서 플로레스탄이 아내 레오노레를 천사로 상상할 때는 천사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려지기도 한다.
화면에 가끔 등장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화가의 거대한 손은 마치 지상에 정의를 구현하려는 섭리의 손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미스테이지 형식이긴 했지만 연출가 김동일의 세심한 연출은 드로잉 작업과 조화를 이뤄 더욱더 자연스러운 무대를 만들어냈다.
드라마투르그 이단비의 매끄러운 번역 대본도 관객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줬다.
독일 지휘자 제바스티안 랑 레싱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2막 초반과 몇몇 부분에서 사소한 실수는 있었지만, 랑 레싱은 음악에 넘치는 에너지와 활력을 불어 넣으며 완급조절에 완벽하게 성공했을 뿐 아니라 꼭 필요한 부분에서 개별 악기군이 음악의 뉘앙스를 최적으로 살릴 수 있게 이끄는 노련함을 보였다.
특히 레오노레가 남편을 구출한 뒤 피날레가 시작되기 전에 특별히 어려운 레오노레 서곡 3번을 간주곡으로 연주해 관객들의 폭풍 같은 갈채를 받았다.
국립합창단의 원숙한 하모니는 죄수들의 합창뿐 아니라 어려운 리듬이 이어지는 피날레의 합창에서도 빛을 발했다.
국립오페라단은 이번 공연에 '콘서트 오페라'라는 명칭을 달았지만, 무대장치가 아쉽지 않은 뛰어난 드로잉 아트와 성악가들의 실감 나는 연기가 함께해 정식 오페라 공연으로 손색이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오페라 공연 형식의 가능성을 보여준 성공적인 예가 됐다.
무대장치가 있는 일반적인 공연 못지않게 장면 몰입도가 높았고 음악에도 효율적으로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시도가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젊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본다.
어떤 공연 장르보다도 대면 공연이 절실한 오페라 공연이 이대로 이어질 수 있기를 또한 간절히 바란다.
rosina@chol.com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