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조업한계선 단속 제대로 안 해…군의 뒤늦은 '남하 호출' 무용지물
'영해침범 주장' 북한, 이번엔 경고방송 안해…NLL 월선 몰랐나
월북에 놀란 군·경, 항로착오 어선에 '화들짝'…北 이번엔 조용(종합)
탈북민 헤엄 월북과 서해상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뭇매를 맞은 군과 해경이 항로착오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었던 민간어선이 무사히 귀환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도 해경과 군은 공조 엇박자와 늑장대응으로 또 한 번 해상경계에서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 '어선 진입금지' 조업한계선 넘었는데…해경, 단속·통보 안 해
19일 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7일 군 당국의 감시 장비에 어물운반선 '광성 3호'가 처음 포착된 지점은 조업(어로)한계선 북쪽 약 4노티컬마일(약 7.4㎞) 지점이다.

서해 조업한계선은 NLL에서 남쪽으로 10노티컬마일(약 18.5km) 떨어진 지점에 설정된 법적 기준선이다.

현행법에 따라 민간어선들은 이 기준선을 넘으면 안 된다.

특히 연평어장을 비롯한 이 일대 수역은 평상시에도 중국 어선 등의 불법 조업이 기승을 부리는 곳이어서 해경은 해양수산부 등 관계기관과 공조를 통해 조업한계선 일대의 단속을 담당하고 있다.

또 어선들의 평균적인 항행 속도를 고려하면 조업한계선에서 NLL까지 약 15분 안팎이면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업한계선에서 해경의 1차 단속은 물론이고 군에 즉각적인 공조 요청이 이뤄져야 혹시 모를 '사고'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광성 3호는 당시 어떠한 단속이나 제지를 받지 않은 채 20노트(약 시속 37km) 이상의 속도로 조업한계선을 '무사통과'했다.

정황상 해경이 조업한계선 진입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해경은 또 광성 3호가 조업한계선을 넘은 뒤에도 군에 어떠한 통보나 공조 요청도 하지 않았다.

서해상 실종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사건이 발생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해경이 단순 실수를 넘어 무능함을 다시 노출했다는 지적이다.

◇ 군은 포착하고도 우왕좌왕…11분 뒤에야 어선에 첫 호출
군은 해경과 달리 광성 3호를 레이더를 통해 포착하긴 했지만, 한 발 느린 대응으로 초동 조치에서 또 허점을 드러냈다.

군은 당일 낮 12시 45분께 연평부대 우도에 있는 감시 레이더를 통해 북상 중인 광성 3호를 최초 포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엔 '미상 선박'으로만 인지하고, 북상을 중단하라는 호출을 보내거나 제지하는 등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어 12시 54분께 다른 레이더를 통해 같은 어선이 재포착되자 그제야 어선위치발신장치(V-PASS)를 통해 광성 3호라는 사실을 확인, 12시 56분께 광성 3호를 향해 무선망과 어선공통망으로 50여차례 호출을 보냈다.

포착 11분 만에 이뤄진 군의 첫 대응이다.

최초 포착 후 "실제 표적인지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군은 인근에 계류 중이던 고속정 1척과 대잠고속정(RIB) 2척도 출동시켰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광성 3호는 오후 1시께 NLL을 넘었다.

군에 최초 포착된 지 불과 15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더욱이 과거 NLL을 넘었다가 북측에 나포되거나 2005년 동해상에서 '황만호 월북 사건' 등이 발생한 사례가 있는 데다,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NLL 일대가 긴장이 고조될 대로 고조된 상황이었다.

이에 군이 포착 직후 선박 확인 절차를 거치기 전에 일단 북상을 저지하거나 호출하는 등 우선 조치부터 해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한국어 못하고 GPS 못보는 외국인만…한국인 선장 조사받을 듯
NLL 북방 약 3.7㎞(2해리) 내외까지 북상해 10분가량 북측 해역에 머물다 복귀한 광성 3호에는 베트남인 2명, 중국인 1명 등 외국인 선원 3명만 승선 중이었다.

당초 김포 대명항에서 출항할 당시엔 한국인 선장이 타고 있었지만, 선장 A씨는 외국인 선원들만 놔둔 채 새우를 강화도 후포항까지 옮기라고 지시한 뒤 중간에 다른 선박으로 갈아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외국인 선원들은 군의 50여차례 호출에 전혀 반응하지 않다가 중간에 내렸던 A씨의 연락을 받고 NLL 이남으로 복귀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호출을 50여차례 이상 했는데 못 알아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선원 3명 중 일부만 한국어를 조금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선원들은 GPS도 볼 줄 모른다고 진술했으며 "(목적지인) 강화도로 가기로 했는데 올라가다 보니 이상한 걸 느껴서 내려왔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광성 3호는 또 당시 통신기가 꺼져 있던 점이 추후 확인됨에 따라 선박 항행 규정 준수 여부에 대한 해경 조사가 추가로 이뤄질 전망이다.

◇ 영해침범 말라던 北, 경고방송 안 해…해경은 사후 통보
항로착오로 인한 NLL 월선이었다고는 하지만 북한의 '무반응'도 눈길을 끈다.

군 관계자는 당시 어선이 NLL을 넘었다가 복귀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부당통신'으로 부르는 북측의 경고방송은 한 차례도 없었다고 밝혔다.

부당통신은 군 당국이 인정하지 않는 '부당'한 통신 내용을 국제상선통신망을 통해 일방적으로 발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측은 평상시 NLL 일대에서 수시로 부당통신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양수산부 공무원 실종 당일인 지난달 21일은 물론, 이후에도 NLL 이남에서 정상적인 수색 활동을 하는 남측 함정을 향해 수차례 경고방송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이번엔 실제로 북측 해역에 진입했는데도 조용했던 셈이어서 북한군이 NLL 월선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해경은 광성 3호가 복귀한 이후인 당일 오후 2시 이후 국제상선통신망을 통해 '우리 어선이 항로착오로 NLL을 넘었다가 바로 남하했다'는 내용을 통보했지만, 북측은 여기에 대해서도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북측의 '과민 대응'이 없었던 건 천만다행이지만,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해경의 '사후 통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