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게임핵 유포자에 부분 무죄…게임계 "아쉬운 판결"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도…IT·게임 관련 국내법 개정 필요성
"게임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하여 무조건 '악성프로그램'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
대법원이 게임 핵(hack·치팅 프로그램)이 악성프로그램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려 게임계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최근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게임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30)씨에 이런 판단을 내렸다.

A씨는 2016년 FPS '오버워치'에 적용되는 에임 핵(자동 조준 핵)을 판매해 2억원 가까운 이익을 거둔 혐의로 기소됐다.

인천지법의 1·2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A씨의 게임산업법 위반 혐의에는 이견 없이 유죄를 선고했다.

게임산업법은 게임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할 목적으로 프로그램·장치를 제작·배포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사건의 쟁점은 정보통신망법 혐의에서 발생했다.

정보통신망법 제48조 제2항은 '정보통신시스템,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 등을 훼손 ·멸실·변경·위조하거나 그 운용을 방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악성프로그램)을 전달 또는 유포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게임산업법보다 형량이 훨씬 높다.

각급 법원의 판단은 이 지점에서 엇갈렸다.

먼저 1심은 A씨가 배포한 에임 핵이 "게임 자체의 승패를 뒤집기 불가능한 정도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정보통신망법을 넓게 해석해야 한다며 A씨가 정보통신망법도 위반했다고 봤다.

2심은 "이용자가 자기 동체 시력에 의존해 조준 발사하는 것이 게임의 기본 요소"라며 "이를 (핵으로) 대체한 것은 게임을 현저히 해치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엇갈린 1·2심을 받아든 대법원은 원심을 정보통신망법 무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 프로그램(에임 핵)은 이용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 해당 이용자의 컴퓨터 내에서만 실행되고, 정보통신시스템이나 게임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 자체를 변경시키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에임 핵이 서버를 점거해 다른 이용자들 접속을 지연시키거나 시스템 기능 자체에 장애를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계에서는 대법원이 정보통신망법에 명시된 악성프로그램의 범위를 너무 협소하게 해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은 사실상 악성프로그램을 해킹 공격이나 악성코드·바이러스 정도로 본 것인데, 게임사 입장에서 보면 게임 핵은 해킹·바이러스 이상으로 '프로그램을 훼손하거나 운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국내 게임사(史)를 돌아봐도 해킹이나 바이러스 때문에 망한 게임은 찾기 어렵지만, 핵을 박멸하지 못해 이용자들이 등을 돌린 게임은 여럿 찾을 수 있다.

드래곤플라이에서 개발한 FPS '스페셜 포스'가 대표적이다.

스페셜 포스는 2005년께 PC방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한동안 '대세 FPS'로 군림했으나, 에임 핵 등 각종 핵이 판치면서 명성을 잃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 '배틀그라운드' 같은 현재 최고 인기를 누리는 게임들도 핵 탓에 게임 순위가 출렁이는 사태를 겪은 적 있다.

핵의 위험 정도는 과거보다 더 커졌다.

최신 게임들은 e스포츠 시장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핵 위협이 잠재한다면 게임은 공정성이 핵심인 스포츠로 인정받기 어렵다.

게임계의 숙원인 아시안게임·올림픽 등 종합 스포츠 대회 진출도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게임계에서는 게임 핵을 악성프로그램으로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단이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피고인 A씨는 1·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한 국산 FPS 개발사 관계자는 "대법원이 게임 핵을 엄벌하는 판례를 남겼으면 했는데, 부분 무죄가 나와 납득이 잘 안 갔다"며 "핵 제작자들이 '걸려도 벌금이나 집행유예'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미국의 경우 2017년 '오버워치' 핵 프로그램 개발사 보스랜드가 856만3천600달러(약 96억원)를 블리자드에 지급해야 한다는 징벌적 손해 배상 명령을 받은 바 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게임산업법이 최신 IT·게임계의 산업 동향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너무 낡은 조항은 없는지 전반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대법원이 A씨에게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정보통신망법 제48조 제2항은 2001년 제정돼 올해로 20년째 그대로인 조항이다.

[※ 편집자 주 = 게임인은 게임과 사람(人), 게임 속(in)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입니다.

게임이 현실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두루 다루겠습니다.

모바일·PC뿐 아니라 콘솔·인디 게임도 살피겠습니다.

게이머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립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