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 개인전 '원스 어폰 어 타임'
최민화가 캔버스에 불러낸 한국 고대사 주역들
그리스와 로마 등 서양 신화 주인공들을 상상하면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만, 한국 고대사 주역들의 이미지는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최민화(66)는 1980년대 중반부터 태국과 인도 등지를 여행하면서 한국의 옛이야기를 담아낼 상징적 이미지의 부재를 절감했다.

그가 1990년대 말 시작한 새로운 연작 '원스 어폰 어 타임(Once Upon a Time)'은 그런 고민 속에 한반도 고대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되살린 작업이다.

작가는 '삼국유사'를 뼈대로 삼아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건국 신화부터 영웅의 탄생과 성장, 고대 풍속과 생활문화 등을 캔버스 위에 불러냈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다음 달 2일 개막하는 개인전은 그가 20년 동안 준비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연작을 선보이는 자리다.

그동안 일부를 공개한 적은 있지만, 이 작업만을 모은 전시는 처음이다.

60여점의 회화와 40여점의 드로잉 및 에스키스(esquisse·초벌그림)를 소개한다.

최민화가 캔버스에 불러낸 한국 고대사 주역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여러 신화적 인물을 만날 수 있다.

마늘과 쑥을 먹으며 인간이 되길 바랐던 단군 신화의 웅녀와 호녀, 주몽과 동이, '서동요'와 '공무도하가'의 주인공 등을 그린 다양한 인물화가 1층에 전시됐다.

2층에는 이들의 시대를 배경으로 다양한 서사가 펼쳐진다.

천제 환웅이 신시에 내려온 장면, 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나는 순간, 해모수 전투와 엄체수를 건너는 주몽 등의 모습 등이 전시장을 채운다.

작가는 동서양의 신화적, 종교적 도상의 형체와 상징성을 수년간 연구했지만,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력으로 베일에 싸인 한국 고대사의 주인공을 그려냈다.

작품은 한국 고대사에 대한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뒤엎고 동서고금의 경계를 해체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한국 고대사를 다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사실적으로 구현한 르네상스 회화나 힌두, 무슬림 종교 미술을 떠올리게 하는 등 동서양의 정서와 기법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특히 한국의 오방색과 힌두 문화의 색감을 섞은 파스텔톤 색감이 더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개막에 앞서 28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신들을 현대화하는 것이 작가로서 첫 번째 고민이었는데 르네상스 회화에서 그러한 도상을 발견했다"라며 "처음 작업할 때는 느닷없이 르네상스에 심취했다고 주변 시선이 우호적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르네상스 대가들이 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을 응용하고 변형해 지역적, 종교적 특성을 빼고 삼국유사의 인물들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에 참여한 최민화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당시 이한열 노제에 사용된 걸개그림을 그렸고, 1990년대에도 핏빛을 연상시키는 분홍색으로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단면을 캔버스에 담았다.

1982년부터 그는 철환이라는 본명 대신 '민중은 꽃이다'라는 뜻의 민화(民花)라는 예명을 썼다.

전시는 10월 11일까지.
최민화가 캔버스에 불러낸 한국 고대사 주역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