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교육을 덜 받았다는 이유로 나를 무식한 인간이라고 무시하고 비판하는 인간들이 있다. 어리석은 무리다. 확실히 나는 그들처럼 저자들의 글을 인용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또 다른 스승인 ‘경험’에 훨씬 더 뛰어난 가치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아닌 타인이 애써 얻은 지식을 이용할 뿐이다. 그런데도 실제로 경험을 통해 창작하는 나를 경멸한다면 그들이야말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친필 노트 중 하나인 ‘코덱스 아틀란티쿠스’에 나오는 말이다. 다빈치는 지금이야 수식어가 필요 없는 불세출의 천재 예술가로 추앙되지만, 당시엔 엘리트 대접을 받지 못했다. 사생아로 태어났고, 지식인에겐 필수 코스였던 라틴어 교육도 받지 못했다. 동성애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빈치는 학식이 없다고 비난받는 상황에 위축되지 않고, 열등감을 자신감의 에너지로 승화시켰다.

일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전문 연구자인 사쿠라가와 다빈치가 쓴 초역 다빈치 노트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다빈치는 23세부터 죽기 전까지 40여 년 동안 8000여 쪽의 노트를 썼다. 이 노트엔 회화, 음악, 천문학, 해부학, 건축 등 다방면에서 그가 추구했던 가치관과 생활 속 감정, 아이디어들이 담겨 있다. 방대한 노트들은 세월이 흘러 각 지역으로 흩어졌다. 빌 게이츠가 1994년 경매로 350억원에 샀던 ‘코덱스 레스터’, 다빈치 노트 중 최대 분량인 ‘코덱스 아틀란티쿠스’, 나폴레옹이 유럽 정복 전쟁 당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프랑스 파리로 가져간 ‘파리 매뉴스크립트’ 등 수십 권이 있다.

저자는 다빈치의 노트를 분석해 그가 끊임없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다빈치식 7가지 생각 도구’로 정리했다. 메모광이었던 다빈치가 남긴 수만 개의 문장 중 71개를 골라 삶의 지혜도 전한다.

[책마을] 8000쪽 메모 남긴 다빈치…'노력형 천재'였다
저자가 설명하는 7가지 생각 도구는 존중, 몰입, 통찰, 창조, 인간관계, 실천, 행복이다. 다빈치는 자신의 결점보다는 장점에 집중하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였다. 세상의 모든 현상에 호기심을 갖고 답을 찾아낼 때까지 파고들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사물과 사람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일상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비틀어 새로운 창작의 모티브를 찾아냈다. 인종과 국적, 연령을 뛰어넘어 다양한 사람과 교류했다. 자신이 떠올린 아이디어를 기억하고 구체화하기 위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메모하며 실제 성과로 이어지도록 노력했다.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세상을 위해 일하겠다는 이타심도 가졌다. 다빈치는 “권태감보다는 죽음을 원한다”며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기 전에 움직일 수 없게 되길 바란다”고 역설했다.

다빈치가 가장 경계한 건 자만심이었다. 언제나 배움과 발전을 추구했다. 해부학을 배우기 위해 50대 나이에 자신보다 30세 어린 해부학자 마르칸토니오 델라 토레의 제자가 됐을 정도였다. 그는 자만 때문에 무너지는 인간상을 삼나무에 비유했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자만한 삼나무는 주위의 초목을 무자비하게 대하며 앞에서부터 다 쳐버렸다. 원하던 대로 주변에 가로거치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강풍이 불자 삼나무는 뿌리째 뽑혀 쓰러지고 말았다.”

눈앞의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긴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다빈치는 “부디 결말을 생각하라. 끝나기 전에 신경을 쓰라”고 말했다. 말년까지도 “나는 계속할 것이다”라고 중얼거리며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꾸준히 연구했다.

저자는 “마음속 행복을 늘 간직하며 실천가로서 살아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과 메모를 보며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길 원한다”고 말한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