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스크 등서 야권 8일째 시위, '루카셴코 퇴진' 요구…"사상 최대 규모"
대통령 지지자 수만 명은 별도 집회…루카셴코, 재선거·자진사퇴 거부

옛 소련에서 독립한 동유럽 소국 벨라루스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대선 승리와 6기 집권에 항의하는 야권 지지자들의 시위가 16일(현지시간)에도 8일째 이어졌다.

이날 수도 민스크에서 열린 야권 집회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수십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 시위에 앞서 루카셴코 대통령 지지자 수만명도 민스크 시내에 모여 맞불 집회를 열었다.

현지 포털 사이트 '툿바이'(Tut.by)는 야권 지지자 20만명 이상이 이날 오후 민스크 시내 북쪽 승리자 대로에 있는 '영웅도시' 오벨리스크 앞에 운집했다고 전했다.

벨라루스 수십만명 대선 불복시위…루카셴코 지지자는 맞불집회(종합)
오벨리스크 앞 광장과 부근 인도는 시위대의 상징이 된 '흰색-붉은색-흰색'의 깃발과 풍선, 꽃 등을 들고나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채워졌다.

참가자들은 '루카셴코는 퇴진하라', '루카셴코를 호송차로'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인테르팍스 통신은 목격자들을 인용해 민스크에서 이처럼 대규모 시위가 열린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경찰과 폭동진압 특수부대 '오몬' 요원들은 시위에 개입하지 않고 시내를 벗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 지지자들은 대선 당일인 지난 9일 루카셴코 대통령이 80% 이상의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다는 잠정 개표 결과가 알려진 뒤부터 부정선거와 루카셴코의 집권 연장에 항의해 날마다 대규모 저항 시위를 벌여오고 있다.

시위대는 지난 1994년부터 벨라루스를 철권 통치해온 루카셴코 대통령의 퇴진과 부정으로 얼룩진 대선 재실시, 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민스크 외에 서부 도시 그로드노와 동남부 도시 고멜, 동서부 도시 브레스트 등의 주요 도시들에서도 대규모 저항 시위가 이어졌다.

이에 앞서 이날 낮에는 민스크 시내에서 루카셴코 대통령 지지자들의 집회가 열렸다.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의 요청으로 친정부 단체 '벨라야 루시'가 조직한 것으로 알려진 이날 집회는 오후 1시께부터 정부 청사가 있는 민스크 시내 독립광장에서 열렸다.

벨라루스 수십만명 대선 불복시위…루카셴코 지지자는 맞불집회(종합)
약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집회에는 루카셴코 대통령 지지자 3만여명이 참가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내무부는 참가자가 6만5천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직접 집회에 나와 지지자들을 상대로 연설했다.

그는 "오늘 여러분들을 부른 것은 나를 보호해달라고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조국과 독립을 지키고 (자신의) 가족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이어 "나토군이 우리 문 앞에서 탱크 바퀴 소리를 내고 있고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폴란드와 우리 형제국인 우크라이나도 우리에게 새로운 선거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그들에게 끌려가면 우리 민족은 멸망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재선거를 요구하는 야권 시위의 배후에 외국 세력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우리나라를 (외국에) 넘겨주려 한다면 내가 죽은 뒤에라도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루카셴코는 "선거는 유효하게 치러졌고 80% 이상의 득표율 조작이란 있을 수 없다"면서 자신이 80.1%의 지지율로 당선된 선거 결과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는 "그들(외국 세력)은 우리에게 새 선거를 치르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가 선거를 다시 치르면 망하고 말 것이다.

외국에서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야권의 퇴진 요구에 대해 "물러나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그러면 시위대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죽이고 가죽을 벗길 것"이라며 자진 사퇴 불가 입장을 확인했다.

그는 30분에 걸친 연설을 마치면서 지지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지지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벨라루스 수십만명 대선 불복시위…루카셴코 지지자는 맞불집회(종합)
루카셴코 대통령은 앞서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벨라루스 시위 사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벨타 통신은 루카셴코와 푸틴 대통령이 전날에 이어 이날 다시 통화하고 외부 간섭으로 벨라루스 상황이 악화하면 양국이 집단안보조약에 따라 공동 대응할 것임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루카셴코는 전날에도 푸틴과 통화하고 옛 소련권 국가들의 안보협력기구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틀내에서 벨라루스의 요청 시 러시아가 즉각 안보 보장을 위한 지원을 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전날 동북부 도시 비텝스크에 주둔 중인 공수부대를 폴란드와 접경한 서부 도시 그로드노로 이동 배치하도록 명령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