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상대가 제재 대상일 경우 문제…"유령회사면 제재 위반" 정부가 추진하는 물물교환 방식의 남북 경협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는 않는지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제재 대상 품목을 제외하는 등 제재 위반 가능성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지만, 거래 상대방이 제재 대상인 경우 등을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일부는 북한과 물물교환 방식의 '작은 교역'을 추진하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취임 전부터 북한의 금강산 물, 백두산 물, 대동강 술을 남측의 쌀, 약품과 맞바꾸는 방안을 제시해왔다.
이 장관은 지난 5일 미국과 북핵 협상을 담당하는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대북 제재 틀 안에서 가능한 남북 물물교환 방식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물물교환 방식을 채택하면 북한과 은행 간 거래나 대량 현금 이전이 발생하지 않아 제재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물물교환 대상에서 북한의 수출·수입 금지품목은 제외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인영 장관이 예시로 언급한 북한산 생수나 맥주는 현재 제재 대상 품목이 아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397호는 북한의 수출금지 품목을 식료품 및 농산품(HS코드 12, 8, 7번) 등으로 확대했지만, 생수와 맥주 등 음료수는 HS코드가 달라 해당하지 않는다.
최근 남북경총통일농사협동조합이 북한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와 계약을 체결했다는 북한의 개성고려인삼술·들쭉술은 수출이 허용되며, 술과 맞바꾸기로 한 남한의 설탕도 북한의 수입금지 품목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과거 타미플루 대북 지원 사례를 들어 물품을 북한으로 싣고가는 차량 등 운송수단이 제재에 저촉될 수 있다고 하지만, 정부는 이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고 보고 있다.
당시 미국이 타미플루를 싣고 갈 화물차량은 제재에 저촉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이후 한국 정부의 설득으로 운송수단이 오가는 것은 문제 삼지 않기로 제재 해석을 완화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방문한 선박·항공기의 미국 입항·착륙을 180일간 금지하는 문제가 있지만, 중국 중개업체를 통해 북한과 교역할 경우 이 또한 문제 될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통일부는 "대북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 품목들을 대상으로 하고, 현물 대가를 지급하며, 제3국을 통한 운송 방식으로 진행하는 등 제재에 위반되지 않도록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개념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갈 경우 주의가 필요하다.
교역 상대인 북한 기업이나 단체가 유엔이나 미국의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제재 전문가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거래 상대가) 유엔이나 미국의 대북제재 대상의 자회사나 유령회사라면 제재 위반이 되는 것"이라며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부담이 한국 정부와 기업에 있다고 주장했다.
스탠튼 변호사는 북한 술과 남한 설탕을 교환하기로 한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에 대해 과거 한국 정부가 노동당 39호실 산하 대성지도국이 운영하는 외화벌이 업체로 파악한 조선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와 같은 회사인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동당 39호실은 미국과 유엔의 제재 대상이다.
제재 틀 안에서 물물교환을 할 경우 미국이나 유엔으로부터 제재 면제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정부는 사업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면 미국과 정보 공유 차원에서라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달 8일 방한 당시 "한국 정부가 북한과 남북협력 목표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한국 정부를 완전히 지지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미국 정부도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오기 위한 남북협력에 협조하는 분위기다.
물물교환에 대한 북한의 호응 여부도 중요하다.
물물교환은 북한이 원하는 대규모 경제협력과는 차이가 있다.
석탄, 철광석, 섬유, 수산물 등 북한의 기존 주력 수출품 대부분이 촘촘한 제재망에 걸린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소수 품목만 물물교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사업자가 물물교환 교역을 규모 있게 추진하려면 금융기관 대출 등이 필요할 수 있지만, 유엔 제재는 대북 무역을 위한 공적·사적 금융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