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더랜드 =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고 역사와 신화, 문학, 지리, 물리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 발밑에 늘 존재해왔지만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언더랜드(지하세계)를 탐구한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영국의 자연 작가인 저자는 '마음의 산'과 '와일드 플레이스'를 비롯해 산악과 자연의 의미를 파고드는 책들로 주목을 받은 데 이어 집필에만 6년을 들여 이 책을 완성했다.
그린란드 빙하의 깊고 푸른 빙하에서 나무가 소통하는 지하 네트워크까지, 청동기시대의 매장지에서 도시의 카타콤과 외딴 북극해 바다 동굴의 바위 예술까지, 우주가 탄생한 순간에 형성된 암흑물질에서 인류세에 닥칠 핵 미래까지 부제가 말하는 대로 '심원의 시간 여행'을 담았다.
언더랜드는 필연적으로 어둠이나 죽음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지만, 빛이나 희망과도 관련돼 있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는 두렵기에 버리고 싶었던 것과 사랑해서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그곳에 두었다.
저자가 보기에 언더랜드에 무언가를 두는 행위는 대개 그것을 쉽게 들키지 않고 지키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대로 무언가를 언더랜드에서 되찾아오려면 쉽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접근하기 힘들기 때문에 오랫동안 언더랜드는 쉽게 입 밖에 낼 수 없는 것, 상실, 슬픔, 모호한 속내, 공포와 혐오 등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북극의 영구 동토층과 알프스, 히말라야의 빙하가 녹아 잠겨 있던 메탄과 고대 생물 사체가 드러난 데서 보듯 인류세의 시대를 맞아 지구 곳곳에서 '잠자는 거인'의 어두운 힘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언더랜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소소의책. 520쪽. 2만8천원.
▲ 남극이 부른다 = 박승현 지음. 과학자라기보다는 '항해자' 또는 '탐험가'로 불리기를 더 좋아하는 저자가 남극을 오가며 펼쳤던 탐사 작업과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자신의 과학 인생을 풀어놓는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인 그는 한국의 아라온호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연구선을 타고 매해 대양으로 나가 주로 지구의 내부 물질과 에너지가 나오는 통로인 해저 중앙 해령을 연구한다.
이를 통해 지구 내부 맨틀의 순환과 진화의 문제를 밝히는 것이 그가 수행하는 연구의 주된 목적이다.
2019년 '질란디아-남극 맨틀'로 명명된 새로운 유형의 맨틀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고 남극권 중앙 해령 최초의 열수 분출구, 열수 생태계를 구성하는 신종 열수 생물, 빙하기-간빙기 순환 증거 등에 관한 연구 업적으로 전 세계 지구과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책에서는 암석학에서 지질해양학으로, 고해양학으로, 또 중앙 해령으로 마치 바다의 조류가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관심사를 옮겨온 학문의 여정을 술회한다.
또 해양 탐사의 특수성 때문에 이리저리 배를 옮겨 타며 떠돌아다니는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과의 다양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우주보다 먼' 남극에서 또다시 빛조차 닿지 않는 심해로 탐사 장비를 내려 시료를 채취하고 분석하는 연구 작업과 이를 통한 발견들이 의미하는 바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쉽게 설명한다.
바닷물이 움직이는 형태와 원리, 바닷물이 짠 이유, 망망대해에서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 남극과 북극의 이모저모 등 바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도 담았다.
동아시아. 372쪽. 1만7천500원.
▲ 가이아, 숨어 있는 생명의 근원 = 엘리자베스 토마스 지음, 정진관 옮김. 미국의 저명한 동물행동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가 미생물에서부터 공룡과 조류, 포유류, 유인원, 네안데르탈인과 '개척되지 않은' 곳에 거주하는 산족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생명체의 기원과 진화 과정, 그들의 생물학적 특성과 생리 작용, 생활 습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책에서 모든 생명체를 의인화해 '그(he)' 또는 '그녀(she)라고 부르며 자연계나 진화 과정을 '가이아(Gaia·어머니로서의 땅 또는 지구라는 뜻의 그리스어)'라고 칭한다.
또 동물은 물론 식물도 뭔가를 '기억'한다거나 무엇과 '소통'한다고 말한다.
식물은 기억하고 소통하는 방식이 우리와는 다르지만, 그 결과와 이유는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생물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그들을 열등한 생물체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들은 광합성을 발명했고 온천, 빙하, 소금 호수, 산(酸), 바위, 해저 분출구 등 인간이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에서 살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간과는 진화적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멍게도 유생 때 지니는 척삭(脊索)을 포유류에 물려주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조상이라고 할 만하다.
저자는 이런 사실들로부터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공통의 조상 아래 서로 밀접히 연결돼 있으며 각 생명체가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어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