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사비나미술관 기획전 '나 자신의 노래'
철제 구조물에 대형 마스크가 걸렸다.

분명히 여러 색깔 빛을 내던 마스크에 가까이 다가가니 표면이 돌연 거울로 바뀐다.

마스크는 본 모습을 숨기고, 관람객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LED와 센서를 활용한 한승구의 설치 작품 '미러 마스크'는 타인 시선에 따라 자신을 은폐하고 사회적 가면을 쓰는 인간의 모습을 비유한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서 29일 개막하는 기획전 '나 자신의 노래'는 이처럼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서 출발한 작업을 모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자아 정체성과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지는 시기 열리는 전시는 사진, 회화, 설치, 영상 등으로 정체성의 문제를 풀어낸다.

고상우의 'Black Pearl'(2020)에는 흑진주색 눈동자를 가진 두 마리 푸른빛 사슴이 각각 우주와 자연을 배경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인간 우월주의가 생태계 파괴의 근본 원인임을 지적하면서 생명체에 대한 경외심과 윤리의식을 강조한다.

고상우는 코로나19에 따른 고립을 온몸으로 겪었다.

유럽에서 미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면서 총 10주간 격리 생활을 했다.

28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자아성찰의 계기도 됐다"라며 "스스로 위로하면서 현실에서 벗어나 우주로 자연으로 가는 판타지를 작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나는 누구인가…사비나미술관 기획전 '나 자신의 노래'
김나리는 상상과 무의식의 세계에서 얻은 이미지로 40여점의 두상을 만들었다.

상처 나거나 눈물 흘리는 형상들은 작가의 자아일 수도 타자의 모습일 수도 있다.

김나리는 "항상 나는 어떤 존재이며 세상에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작업에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 고민했다"라며 "고통을 회피하기보다는 더 깊이 들어가 인생의 의미를 마주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활동 중인 사진작가 배찬효는 서양에서 동양 남자로서 느낀 소외와 편견의 문제를 다룬다.

'자화상' 연작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 속 고전 복장과 분장을 한 작가가 보인다.

서양 사회에서 타자인 그는 전통적인 서양 군주초상화 형식을 차용해 남자와 여자, 절대권력자와 사회적 약자라는 이분법적 통념을 뒤집는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유일한 해외 작가인 캐나다 출신 사진가 프랑수아 브뤼넬의 작업도 눈길을 끈다.

그는 1999년부터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쌍둥이처럼 닮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 사진 찍는 프로젝트 'I'm not a look-alike!'를 해왔다.

흑백사진에 '도플갱어'처럼 등장하는 두 사람은 프로젝트 이전까지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다.

작가는 외형적인 모습이 같다고 같은 사람이 아니며, 자신의 진짜 모습은 겉모습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밖에 지요상, 원성원, 박은하, 이샛별, 김시하, 김현주, 이이남, 조세민 등 총 13명의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

9월 19일까지.
나는 누구인가…사비나미술관 기획전 '나 자신의 노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