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침 있으면 머해…지하차도 통제 미이행 지자체 과실치사 검토

행안부 '기상특보 때 사전 통제' 지침…해당 지하차도 위험 3등급 도로
부산 동구 매뉴얼 만들고도 통제 안 해…경찰, 자료 확보해 수사 중

'기상 특보가 발표되면 지하차도를 사전에 통제하라는 정부 지침만 따랐더라도….'
23일 호우경보가 발효된 부산에서 시간당 80㎜ 폭우로 침수된 지하차도에 갇혔던 3명이 숨진 참사는 공무원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생긴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높다.

경찰은 해당 지자체 공무원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폭우 시 지하차도 침수로 인명피해가 잇따르자 지난해 2월 침수 우려가 있는 전국 145개 지하차도를 위험도에 따라 통제하는 지침을 시행한다는 공문을 일선 지자체에 하달했다.

기상 특보에 따라 침수 위험이 있는 지하차도를 사전에 통제해 인명 피해를 예방하려는 목적이었다.

사고가 난 동구 초량 제1지하차도는 호우경보가 발표되면 지자체가 통제하는 위험 3등급 도로에 해당했다.

부산에는 호우주의보만 발표돼도 통제하는 2등급 지하차도 3곳(삼락생태공원 지하차도)과 3등급 지하차도 29곳이 있다.

행안부는 공문 발송 5개월 뒤인 지난해 7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

하지만 부산시와 16개 구·군은 지난해 행안부가 관련 지침을 담은 공문을 하달했는데도 모르거나 따르지 않았다.

지하차도를 관리하는 동구는 행안부 지침에 따라 침수 우려 지하차도 매뉴얼까지 만들었으나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오후 8시 호우경보 발효 이후 부산의 침수 우려 2·3등급 지하차도 중 한 곳도 사전에 통제되지 않았다.

부산시가 발표한 23일 오후 11시 기준 호우특보 대처상황 보고서를 보면 첫 도로 통제는 호우특보 1시간 뒤인 오후 9시 5분 북구 덕천배수장∼화명생태공원 입구의 지하차도와 인근 도로를 통제한 것이 처음이었다.

이마저도 경찰이 자체 판단으로 통제한 것이었다.

침수 시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길이 100ｍ 이상인 초량 제1·초량 제2·우장춘로·대남·구서·당감·문현·내성 지하차도 등도 전혀 통제되지 않았다.

지자체가 행안부 지침에 따라 지하차도만 통제했어도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폭우에 해운대구 좌동 지하차도에서도 차량 1대가 빗물에 갇혔다가 운전자가 차량을 버리고 대피하는 아찔한 일도 있었다.

부산에서는 2014년 침수된 차 안에 갇혀 2명이 숨진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 사고 이후 부산시와 해당 지자체는 배수펌프 용량을 늘리고 전기시설을 밖으로 빼내는 등 사후 조치를 세웠다.

하지만 사고가 난 초량 제1지하차도에 설치된 분당 20t 용량의 배수펌프 3대는 쏟아지는 빗물을 제대로 빼내지 못했다.

6년이 지나도록 지하차도 침수 예·경보시스템도 완전히 설치되지 못한 상태다.

배수펌프 정상 작동 여부 등 3명이 숨진 지하차도 침수 원인 등을 내사하는 경찰은 해당 지자체의 침수 우려 지하차도 매뉴얼 등 관련 자료를 확보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담당 공무원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