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엔진+독일 변속기' 기형적 파워팩→완전 국산화 추진
국산 변속기 국방규격 사실상 완화…'업체 특혜' 의혹도
K2 전차에 장착된 '파워팩'은 엔진과 변속기, 냉각장치를 합쳐 부르는 용어다.

대당 100억원이 넘는 전차를 구동하고 속도, 방향을 조절하는 핵심 장치를 말한다.

50t이 넘는 쇳덩어리인 K2 전차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도 파워팩의 기능 때문이다.

그래서 파워팩은 '전차의 심장'으로 통한다.

정부는 '국산 명품' K2 전차에 국산 파워팩을 장착해 온전히 국산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다.

이런 의지로 최근 국산 변속기 내구도 시험평가를 위한 국방규격까지 개정했다.

일각에서는 국방규격을 완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이런 비판적인 시각을 이겨내고 국산 변속기가 시험 평가를 통과해 K2 전차에 장착될지 관심을 끈다.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산 파워팩…2차 양산분에 '국산엔진+독일변속기'
18일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K2 전차 국산 파워팩의 변속기 개발사업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485억원이 투입되어 S&T중공업이 맡았다.

2014년 10월 K2 전차의 국산 파워팩이 개발됐다.

K2 전차 1차 양산분은 국산 파워팩 개발 전에 추진돼 온전히 독일산 파워팩을 장착해 2014∼2015년 전력화했다.

이후 방사청과 제작사 현대로템은 2014년 말 K2 전차 2차 양산계약(106대)을 체결하면서 국산 엔진과 국산 변속기를 장착한 제품을 만들어 군에 납품하기로 했다.

그러나 2016년부터 K2전차 2차 양산을 시작했는데도 파워팩에 장착할 국산 변속기가 내구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국산 엔진은 정상적으로 개발됐다.

방사청은 "2차 양산사업에 국산 파워팩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최초 생산품 검사에서 국산 엔진은 국방규격을 충족했다"면서 "그러나 국산 변속기는 국방규격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방사청은 2018년 2월 제109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국산 엔진과 독일산 변속기를 조합한 기형적인 '혼합 파워팩'을 탑재하기로 결정했다.

국산 명품무기의 하나로 꼽힌 K2 전차에 외국산 변속기가 들어가는 이상한 조합의 심장을 갖게 된 것이다.

국산 엔진과 독일산 변속기를 조합한 혼합 파워팩을 장착한 K2 전차는 작년 3천200㎞ 주행시험과 영하 32℃의 저온시동 시험을 통과했다.

그래서 작년 6월부터 K-2 전차 2차 양산품 106대가 순차적으로 양산되어 야전에 배치되고 있다.

1·2차 양산 물량은 총 200여대에 이른다.

앞으로 계획된 3차 양산 물량은 50대 안팎이다.

1·2·3차까지 총 250여대가 생산된다.

3차 이후 사업은 확정되지 않았다.

대전 상공에서 평양을 때리는 원거리 정밀유도무기가 배치되는 시기에 250대가 넘는 전차를 지상에 배치하는 것이 전술적으로 옳은지에 대한 비판도 있으나, 군은 3차 양산사업도 정상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전차 대량 양산 및 전력화 계획은 아무리 원거리 정밀유도무기 등이 나와도 결국 전투는 지상전으로 종결될 것이란 논리에 다른 것이다.

전차를 앞세우고 그 뒤를 병력이 따라가면서 소탕한다는 것으로, 산불 진화 헬기가 공중에서 물 폭탄을 투하하고 나면 소방대원이 잔불을 정리하는 식으로 이해된다.

애초 K2 전차에 적용되는 파워팩을 시험 평가할 때 독일 제품에 비해 국산 제품이 불리한 조건에서 평가를 받았다는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독일 파워팩은 새 제품으로 운용시험평가(OT)와 개발시험평가(DT)를 받았지만, 국산 파워팩은 운용시험 평가는 3천326㎞, 개발시험 평가는 9천643㎞ 이상 운행한 시제품으로 평가를 받아서다.

독일 파워팩은 2007∼2008년에 실시된 시험평가 결과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고, 국산 파워팩은 2009년 2월부터 시작된 시험평가에서 총 124건(보완필요 42건)의 결함이 발생해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지 못했다.

당시 군은 기동분야 부품을 전면 교체해 시험평가에 투입했다고 했지만, 독일 파워팩은 새 전차로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불공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욱이 K2 전차의 내구연한이 9천600㎞인 점을 고려할 때 개발시험 평가에는 수명 주기가 도래한 전차가 투입된 셈이다.

여기에다 시험평가 기준이 국산 파워팩에 더 엄격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국산 파워팩에 적용된 '8시간·100㎞ 연속주행' 평가가 독일 파워팩에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산 파워팩은 8시간 연속주행 과정에서 엔진 고장을 일으켰다.

K2 전차를 생산하는 현대로템 창원공장은 K2전차 심장인 파워팩의 국산화가 늦어지면서 곤경에 처했다.

독일 파워팩을 장착해 생산한 1차 양산분과 달리 2차 양산분 106대에 장착하기로 한 국산 파워팩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서 양산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창원공장의 K2전차 조립라인 직원들이 다른 작업장으로 일부 분산 배치되거나 일부 공정을 건너뛴 채 작업을 하는 등 생산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산 변속기 개발 업체인 S&T중공업의 사정은 더 힘들었다.

변속기, 총포류를 생산하는 방산분야 인력이 휴직에 들어갈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다.

K2 전차 파워팩 구성품 하청 업체들도 연쇄적으로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

관련 업계가 방사청과 국회 등 전방위에 경영 악화를 호소했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2018년 국정감사에서 K2 전차 국산 변속기 내구도 시험 기준과 관련된 국방규격이 모호하기 때문에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국산 변속기 시험통과 위한 국방규격 사실상 완화…일각서 특혜 의혹도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지난 13일 제6차 방위사업협의회를 열어 K2 전차에 장착할 국산 변속기 양산계획 수립과 내구도 검사 규격 개정 방안 등을 협의했다.

회의에서는 국산 변속기의 내구도 및 최초 생산품 검사 기준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관련 국방규격을 개정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방사청은 15일 형상통제심의회를 통해 2차 양산 사업 당시 논란이 됐던 '모호한 국방규격'을 구체화했다.

기존 내구도 관련 국방규격은 "변속기는 변속기 동력계를 사용하여 부록 A에 규정된 동력계 내구도 부하주기에 따라 내구도 시험을 수행하였을 때 결함이 없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에 "결함은 변속기 기본기능(변속·조향·제동)을 상실하거나 심각한 성능 저하가 발생하여 더이상 시험을 진행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기존 국방규격에 명시된 결함이 포괄적이라면 이번에 새로 결함의 개념을 정립한 것이다.

기존 국방규격에는 내구도 결함의 정의가 없어 개발 업체와 방사청 간 이견이 있었다.

당시 내구도 시험 중 고장이 발생하자 업체는 중대한 결함이 아니며 일시적인 조치로 해결된다고 주장했지만, 군과 방사청은 결함으로 보고 국산 변속기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구도 결함은 '변속기 기본기능(변속·조향·제동)을 상실하거나 심각한 성능 저하가 발생해 더이상 시험을 진행할 수 없는 경우'로 한정했다.

이에 해당하지 않은 고장에 대해서는 시험이 중단되지 않는다.

방사청 관계자는 "국산 변속기 국방규격 개정은 K2전차 파워팩 완전 국산화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국방규격 개정이 사실상 완화된 것이라며 업체에 특혜를 주려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그러나 방사청은 변속기 국방규격 내구도 기준(320시간)을 완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방사청 관계자는 "그간 변속기 내구도 시험 때 결함에 대한 정의가 없어 중대·경미한 결함 등으로 임의 구분했다"면서 "일부 하자 발생 때 처음부터 새로 시험을 하는 재시험을 할지, 연속해서 시험해야 하는지 이견이 있어 결함의 정의를 국방규격에 추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개정된 국방규격에 따라 최초 생산품 검사를 수행할 예정"이라며 "만약 검사 결과에 대해 기관별 이견이 발생해 판정이 어려울 경우 전문위원들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검토·판단하는 등 공정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K2 전차 3차 양산계획도 검사 결과를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보고해 승인을 받으면 재차 수립할 것이라고 방사청은 설명했다.

방사청은 국산 변속기 품질 검사를 다시 진행한 뒤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통해 연내 3차 양산품의 국산 파워팩 장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