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자 심각한 골칫거리" vs "방역 최전선의 일등 공신"
"공공의료 강화하지 않으면 제2의 코로나19 사태 못 막아"
[코로나 6개월] 공공의료, 방역 최전선에…위기속 실상·한계도 노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반년 가까이 지속하는 가운데 그동안 '찬밥' 취급을 받던 공공병원이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며 진가를 발휘했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지난 2∼3월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하루 수백명씩 나올 때 공공병원이 없었다면 자칫 심각한 상황에 부닥쳤을 수 있었다는 게 의료계와 방역당국의 설명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 속에 우리 방역시스템이 'K-방역'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널리 알려진 데 반해 공공의료 체계는 열악한 실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인력과 자원 등의 확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공공병원 고작 5% 불과한데…"코로나19 환자 76%, 공공병원서 치료"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이후 공중보건 위기에 대한 인식이 커졌지만 우리나라는 국민 보건과 건강 문제의 상당 부분을 민간 의료기관에 의존해 온 게 사실이다.

특히 공공보건의료 인프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와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12월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공 보건의료기관이 전체 보건의료기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7%로, 캐나다(99.3%), 호주(51.4%), 프랑스(44.8%) 등과 큰 차이를 보이는 실정이다.

의료 영리화의 대표 국가 미국조차 공공 의료기관 비중이 24.8%에 달한다.

병상 수 역시 마찬가지다.

공공병상은 전체 의료병상의 10.2%로, 일본(27.2%)과 미국(22.1%)의 절반에 불과했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서도 공공병원이 보여준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코로나 6개월] 공공의료, 방역 최전선에…위기속 실상·한계도 노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5월 중순 기준으로 코로나19 환자의 76.1%가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 국립대병원, 보훈병원 등 공공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감염병 전담병원 70곳 가운데 공공병원은 57곳(81.4%)으로, 코로나19 진단·치료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대구·경북에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었을 당시 공공병원이 앞장서 병상을 비우고 환자를 치료했다.

위기 상황에 직면하니 공공병원이 얼마나 중요한 자원인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공공병원내 의료 인력과 시설 등이 열악한 탓에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김 윤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코로나19 환자가 큰 폭으로 증가할 당시 공공병원이 공공의 가치를 보여주며 훌륭한 역할을 했지만, 대다수는 규모가 작고 급성기 환자를 진료하는 기능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환자는 중증도와 치료 장소에 따라 사망률이 달라지는데, 3∼4월 환자를 진료한 병원 가운데 48.3%는 공공병원 중에서도 300병상 이하 종합병원 또는 일반 병원이었다.

인공 심폐 장치인 에크모(ECMO)를 쓸 정도로 위중한 환자가 많았다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조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선임간사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확진자가 급격히 늘었을 때 공공 의료기관이 많은 역할을 했지만, 워낙 숫자가 적다 보니 환자 진료나 치료에 있어 실질적인 한계가 많았다"고 비판했다.

◇ '만성 적자' 프레임 갇힌 공공병원…"코로나19 대응, 공공의료 강화 없인 불가능"
정부는 지난해 11월 '지역 의료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양질의 공공·민간병원이 없는 거창권, 영월권, 진주권 등 의료 취약지 9곳에 지방의료원·적십자병원 등 공공병원 신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방의료원 예산을 2018년 530억원에서 올해 1천26억원을 늘려 응급·중증환자 진료 기능을 확대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공공병원 확충은 아직 계획만큼 진척되지는 못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병원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만성 적자가 심각하다' 등 경제적 논리에 입각한 시각이 공공병원 확충을 가로막고 있다.

[코로나 6개월] 공공의료, 방역 최전선에…위기속 실상·한계도 노출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한국 보건의료 체계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의료가 '공공재'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공공병원이 필요한데도 '비용' 문제로만 바라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공공병원 설립을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할 때 '시간이나 비용이 얼마나 줄어드나' 등 경제적 논리로만 평가받는다.

감염병 확산 차단, 사망률 완화 등 의료의 공공성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정부가 방역대응에 중점을 두면서 '공공의료 강화'는 뒤로 밀려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6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공의료체계 강화 방안' 토론회에서 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은 "감염병 사태를 맞아 쏟아져 나오는 정부 대책에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 확대 강화에 관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공공의료 체계를 강화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코로나19 사태를 막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조은 선임간사는 "울산, 대전, 광주 등은 광역 지자체임에도 불구하고 지방의료원이 없다.

공공의료원이 없는 단위는 새로 만들고, 취약 지역으로 분류되는 인천, 대구 등은 더 늘리는 식으로 공공병원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현재 국립중앙의료원은 복지부에서, 국립대 병원은 교육부에서, 지방의료원은 각 지자체가 담당하는 등 공공의료를 총괄하는 콘트롤타워가 없다"고 지적하며 공공의료 전반을 책임지고 이끌어갈 '사령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 윤 교수는 "공공병원을 확충해 제2, 제3의 코로나19가 와도 대비할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공공병원에서 중증환자 진료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 훈련, 시설 투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