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혜자 이름·주민번호·연락처·주소…이혼 등 민감정보까지
정부가 모든 가구에 지급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의 신청 정보를 공무원이 아닌 단기 공공일자리 인력이 들여다보고 유출도 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불과 얼마 전 'n번방' 사건에서 사회복무요원이 개인정보를 빼돌려 범죄에 악용한 일과 유사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서울시와 시내 자치구들에 따르면 긴급재난지원금 업무를 총괄하는 행정안전부는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업무를 수행할 때 단기 공공일자리 인력을 뽑아 쓸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행정 최일선에 있는 서울 각 자치구의 동 주민센터에는 근무 기간이 수개월인 다양한 형태의 인력이 배치돼 공무원들의 행정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는 세대주는 물론 세대 구성원들의 개인정보까지 이들 단기 인력이 자유롭게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 마음만 먹으면 외부로 유출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서울 한 자치구의 동 주민센터에서 재난지원금 업무를 맡은 단기인력 A씨는 "저는 말하자면 '일용직 알바'에 불과한 사람인데, 일개 동이 아니고 구 전체 주민의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가 아무런 제한 없이 제게 그대로 개방돼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다른 동 주민센터의 이의신청 서류까지 열람, 저장은 물론 USB로 유출도 할 수 있다"며 "n번방 사건이 얼마 전인데 벌써 잊은 것 같다.

악용 여지가 너무 많은 현장"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서울의 주민센터에서는 단기 인력이 세대주와 세대 구성원을 포함한 수혜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주소 등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내용은 정보를 보려는 사람이 일일이 검색해서 찾아봐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의 엑셀 파일 형태로 존재해 더 문제였다.

이는 신청자의 신원을 조회할 수 있게끔 행안부가 일선 지자체에 송부한 파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파일은 USB에 저장해 통째로 유출할 수도 있을 정도로 보안 상태가 열악했다.

그뿐만 아니라 세대주가 누군지 따져보는 절차인 '이의신청'에서 드러나는 더 민감한 정보도 활짝 열려 있었다.

이혼이나 성 관련 사건 정보 등이 해당한다.

이런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은 자치단체마다 설정 범위가 다를 수 있어서 전국 어디서나 광범위하게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직접 관리해야 할 부분을 공무원이 아닌 사람에게 맡겼다가 초래된 일이 n번방 사건임을 고려하면 자치단체의 개인정보 보호 인식이 여전히 낮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서울 자치구의 관계자는 "업무 투입에 앞서서 보안 서약서를 받고 있다.

유출이 발생하면 당연히 형사고발을 할 것"이라며 "처음 하는 사업이고 일부 일손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 같다.

공무원들이 책임 있게 하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