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호칭으로 익숙한 브래들리 쿠퍼는 세 편의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레이디 가가와의 호흡이 빛을 발한 <스타 이즈 본>(2018)으로 성공적인 연출 데뷔를 알린 후 유명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레너드 번스타인과 아내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 콘 번스타인과의 평생의 관계를 다룬 <마에스트로 번스타인>(2023)도 만들었다.두 영화는 음악으로 명성을 쌓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까닭에 음악 배경의 비중이 크지만, 삶을 구원한다는 환상성을 탈피해 연인 또는 부부 관계를 풀어가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에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한 <웃음 뒤에 우리>는 음악 대신 스탠드업 코미디가 배경의 무대로 깔리되 역시나 ‘부부’에 초점을 맞춘 사연을 중심에 놓는다.근데 부부라고 해도 될까? 알렉스(윌 아넷)와 테스(로라 던)는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서로 떨어져 살며 두 아이를 돌보기로 합의했다. 새로 집을 마련한 알렉스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삶이 어찌나 외롭고 상실감이 크던지 술 한잔 걸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것 같아 발 길 닿는 대로 술집에 들어가려다 입장을 제지당한다.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이 있는 술집이라 입장료가 있어야 했던 것. "돈을 내지 않고 들어갈 방법은 없소?" "공연을 한다면 공짜요." 그렇게 처음 올라간 무대에서 자기의 별거 사실을 소재로 5분 정도 떠벌렸을 뿐인데 반응이 좋았다. 관심받으니 제2의 인생을 사는 것 같았고, 자신감도 얻어 어떻게 하면 가족과 결합할 수 있을까 궁리했다.인생은 대개 거기서 거기다. 테스만 해도 한때 잘 나갔던 미국의 국가대표 배구 선수였다. 그런데 지금은? 남편 알렉스와 불화는 없는 것 같아
“‘No. 29’가 빌보드 싱글차트 100위 안에 오를 수 있을까요? 그럼 대박인데…!”며칠 전, 한 기자가 건넨 이야기에 소름이 돋았다. ‘No. 29’는 곡 제목이다. 방탄소년단(BTS)이 20일 발표한 새 앨범 ‘ARIRANG’에 들어있다. ‘대앵~’ 하는 범종(성덕대왕신종) 소리만이 1분 38초 동안 지속되는 파격적 트랙. 이런 짧은 음향이 빌보드 핫100에 오른다면 분명 ‘해외 토픽’ 감이다.그런데 올라도 문제다. 세계 음악 팬들이 이 트랙에 왜 ‘No. 29’라는 제목이 붙었는지 궁금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은 이 ‘29’라는 숫자는 알려지지 않는 게 낫다. 성덕대왕신종은 더 이상 ‘국보 29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지정번호 제도는 5년 전인 2021년 폐지됐다. 이제 ‘국보 1호 숭례문’이 아니라 ‘국보 숭례문’,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이 아니라 ‘국보 성덕대왕신종’이 맞다. 이건 권고 사항 정도가 아니다. 2021년 11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고시에 의해 지정번호는 삭제, 폐지됐다.폐지된 이유도 물론 있다. 가치 순위가 아닌 행정 편의로 붙인 숫자가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제 잔재라는 견해도 작용했다. 그렇게 겨우 지웠던 번호가 이번에 방탄소년단 때문에 ‘강제 부활’될 판이다. ‘대한민국 국보 제29호로 지정된 성덕대왕신종’이라는 표현은 음원 사이트의 공식 해설은 물론 애플뮤직의 ‘방탄소년단의 트랙 소개‘에서 리더 RM의 음성으로도 명확히 반복된다.전후 사정이 어떠하든 국보의 음향이 K팝 앨범에 들어간 것은 의미가 있다. 앨범 제목부터 ‘ARIRANG’이니
멕시코의 문제적 작가 미셸 프랑코의 신작 <드림스>는 기이하게도 독일계 미국 사회심리학자,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사상에 대한 지적 오마주 같은 느낌을 준다. <드림스>는 샌프란시스코와 멕시코시티가 배경이다. 프롬의 저서 『사랑의 기술』이나 『소유냐 존재냐』는 모두 멕시코시티에 살면서 저술한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페르난도(아이작 에르난데스)는 부유한 미국인이자 연상인 여성 제니퍼(제시카 채스테인)에게 소유되고 길러진다. 그는 거기서 벗어나려 애쓴다. 『소유냐 존재냐』의 핵심 사상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제니퍼와 페르난도는 처음엔 격렬한 섹스로 뜨겁게 이어지지만 결국 서로에게 끔찍한 일을 자행하는 폭력적인 관계로 전환된다. 이는 비교적 정확하게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가리키고 지향하는 대목과 연결된다.프롬은 첫 번째 부인이자 10살 연상으로 자신의 정신분석가였던 프리다 라이히만과 1926년에 결혼했으나 몇 년 후 이혼하며 정신적 지배관계에서 벗어난다. 그건 마치 페르난도가 제니퍼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실현된 모습 같은 것이다.프롬은 1934년에 사진작가 헤니 구를란트와 재혼하지만 사별하고 뉴욕의 사업가인 애니스 프리먼과 편지로 일상의 위로와 사랑을 나누다가 1953년에 세 번째로 결혼한다. 『사랑의 기술』은 그 직후에 나온 것이다.페르난도와 제니퍼가 프롬의 저서를 읽었다면 두 사람의 사랑은 어쩌면, 파국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영화 내내 생각하게 한다. 감독 미셸 프랑코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실제로 프롬의 사상을 생각했을까. 영화를 본 사람들의 주관적 해석의 영역이겠으나 &ls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