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뒷모습만 보던 우리에게
브래들리 쿠퍼 감독이 건넨 답
'정면으로 부딪쳐 관계를 회복하라'
배우 호칭으로 익숙한 브래들리 쿠퍼는 세 편의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레이디 가가와의 호흡이 빛을 발한 <스타 이즈 본>(2018)으로 성공적인 연출 데뷔를 알린 후 유명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레너드 번스타인과 아내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 콘 번스타인과의 평생의 관계를 다룬 <마에스트로 번스타인>(2023)도 만들었다.
두 영화는 음악으로 명성을 쌓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까닭에 음악 배경의 비중이 크지만, 삶을 구원한다는 환상성을 탈피해 연인 또는 부부 관계를 풀어가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에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한 <웃음 뒤에 우리>는 음악 대신 스탠드업 코미디가 배경의 무대로 깔리되 역시나 ‘부부’에 초점을 맞춘 사연을 중심에 놓는다.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이 있는 술집이라 입장료가 있어야 했던 것. "돈을 내지 않고 들어갈 방법은 없소?" "공연을 한다면 공짜요." 그렇게 처음 올라간 무대에서 자기의 별거 사실을 소재로 5분 정도 떠벌렸을 뿐인데 반응이 좋았다. 관심받으니 제2의 인생을 사는 것 같았고, 자신감도 얻어 어떻게 하면 가족과 결합할 수 있을까 궁리했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보잘것없는 삶에 다른 가치를 더해줬다. 쓸쓸함과 덧없음으로 귀결된 결혼 생활의 경위를 가감 없이 전하되 유쾌한 음성으로 코믹하게 변주하니 브라보! 무대 주변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쓰다 만 편지처럼 흐지부지되어버린 삶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되니 공백으로 남은 칸을 다시 채울 자신감을 얻었다.
처음 무대에 오를 때 카메라는 얼굴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으로 잡아 알렉스가 느낄 부담감을 관객에게도 전가했다. 가족과 떨어져 집에 돌아와 어색한 고요 속에서 자기 삶이 망가진 걸 슬퍼할 때도 그랬다. 그의 감정을 강요하는 것 같아 불편했던 카메라는 공연의 반응이 좋아지자 핸드헬드로 새가 날듯 자유롭게 그의 감정을 풀어줬다.
그러니까, 스탠드업 코미디와 같은 예술은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지 구원의 결과는 아니다. 예술에 인생을 담보하여 생기는 후폭풍은 종종 개인을 망가뜨리는 걸 넘어 가족 전체를 파괴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딜레마를 알렉스도 겪게 되는데 우연히 그들 부부 관계를 소재로 한 공연을 테스가 보게 된 게 원인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불특정 다수에게는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아이러니. 영화는 극 중 알렉스와 테스의 부부 관계의 장력을 두고 서로의 등만 바라보는 사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알렉스가 관계를 회복하겠다며 배구 선수 시절 스파이크하는 순간을 뒤에서 찍은 사진을 테스에게 보여주자 화를 낸 이유다.
볼스 또한 연극을 하는 예술가이자 아내와의 관계가 위태로워 혼자 된 알렉스를 보며 나름의 해결책을 찾으려 두문불출하는 중이다. 워낙 괴짜 스타일이라 제 한 몸 간수도 못 할 거 같은 볼스가 테스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더니 알렉스에게 한다는 소리가, 왜 뒷모습이야? 앞모습이 보이게 걸어야지.
뒤를 본다는 건 상대가 겪는 불행을 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면에서 대면해야 무슨 고민인지 파악할 수 있는 건데 늘 뒤에서 상대의 등만 바라봤으니, 관계의 거리가 줄어들 리 없었다. 볼스 왈, 부부 관계는 개인이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둘이 함께 불행해지는 거다. 알렉스의 스탠드업 코미디는 결국, 혼자만 편해지는 방식이었다.
브래들리 쿠퍼는 예술이 삶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세 편의 연출작을 거치면서도 브래들리 쿠퍼의 주제 의식은 한결같다. 망가진 삶과 관계의 개선을 예술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 <웃음 뒤에 우리>에서는 그에 더해 당사자들이 정면으로 부딪쳐 관계를 회복하고, 멀어진 감정을 좁히려 더욱 노력하라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