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처리 통해 마모된 글자 확인
좌우 물 받는 항아리에 새긴 용, 얼굴·수염 모양 달라
484년전 자격루에 이름 새긴 미지의 제작자 4명 찾았다
조선 중종 31년(1536) 완성된 물시계 '자격루'(自擊漏) 항아리에 새긴 제작자 12명 이름 중 그동안 온전히 확인되지 않은 4명의 정체가 보존처리를 통해 드러났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1년 7개월에 걸친 국보 '자격루' 보존처리로 새롭게 확인한 사실을 22일 공개했다.

자격루는 물이 증가하고 감소하는 양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 조선시대 국가 표준 시계 역할을 했다.

지금은 조선 과학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과학 문화재로 평가된다.

세종 16년(1434) 임금 지시로 장영실이 정해진 시간에 종·징·북이 저절로 울리는 물시계를 제작했으나 없어졌고, 중종 대에 다시 만든 시계 중 쇠구슬이 굴러 조화를 이루던 부분은 사라지고 물통들만 현존한다.

오늘날까지 전하는 자격루 부품은 물을 보내는 청동 항아리인 파수호(播水壺) 3점과 물을 받는 길쭉한 원통형 청동 항아리인 수수호(受水壺) 2점으로, 창경궁 보루각에 있다가 일제강점기에 덕수궁 광명문으로 옮겨졌다.

자격루 보존처리는 광명문 원위치 이전과 맞물려 2018년 8월 시작됐다.

484년전 자격루에 이름 새긴 미지의 제작자 4명 찾았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표면에 있는 오염물을 제거하고 재질을 강화하는 보존처리를 진행해 수수호 왼쪽 상단에 양각으로 새긴 제작자 명문(銘文·금석에 새긴 글자) 중 마모돼 읽지 못한 글자를 판독했다.

이를 통해 이공장(李公檣·?~?), 안현(安玹·1501∼1560), 김수성(金遂性·?∼1546), 채무적(蔡無敵·1500∼1554) 4명이 자격루 제작에 참여했음을 알아냈다.

기존에 이공장의 '장'(檣)은 '색'(穡), 김수성의 '성'(性)은 '주'(注)로 잘못 알려졌다.

안현의 '현'(玹)은 '진'(珍)으로 전해졌고, 채무적의 '무'와 '적' 글자는 해독하지 못했다.

센터는 자격루 제작 당시 이공장은 사복시정, 안현은 사헌부 집의, 김수성은 사헌부 장령, 채무적은 장악원 주부였다고 설명했다.

또 '조선왕조실록', '국조인물고', '문과방목' 등에는 안현, 김수성, 채무적이 천문 전문가로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강조했다.

수수호 명문으로 파악한 나머지 제작자 8명은 영의정 김근사와 좌의정 김안로를 비롯해 유보, 최세절, 박한, 신보상, 강연세, 인광필이다.

484년전 자격루에 이름 새긴 미지의 제작자 4명 찾았다
아울러 수수호 표면에 새긴 승천하는 용과 구름 문양을 분석해 제작 기법도 확인했다.

일단 항아리를 만든 뒤 정교하게 조각한 용과 구름을 차례로 덧붙였고, 밀랍 주조 기법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삼차원 스캔과 실리콘 복제 방법으로 왼쪽 수수호와 오른쪽 수수호 용 문양을 각각 평면에 펼쳐 얼굴과 수염이 다소 다르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대파수호에 제작 시기를 새긴 명문 '가정병신육월 일조'(嘉靖丙申六月 日造)는 현재 검은색이지만, 성분이 은이라는 점도 드러났다.

센터는 보존처리를 통해 부식으로 인해 검게 변한 은을 본래 빛깔로 되돌렸다.

'가정'은 명나라 가정제가 1522년부터 1566년까지 사용한 연호다.

484년전 자격루에 이름 새긴 미지의 제작자 4명 찾았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 관계자는 "자격루는 광명문으로 옮겨진 뒤 흙먼지 제거와 기름 도포 등 간단한 보존처리만 했지만, 부식과 손상을 더는 막기 힘든 상태였다"며 "자격루를 분석해 부식 범위와 종류를 파악하고, 형태를 정밀하게 기록했다"고 말했다.

보존처리를 마친 자격루는 조선 왕실 유물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 전시될 예정이다.

이 박물관에는 2007년 복원한 자격루도 있다.

484년전 자격루에 이름 새긴 미지의 제작자 4명 찾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