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대교 건설로 '국민 관광지' 떠오른 신안
[그 섬에 가고 싶다] 천사 섬의 봄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천사의 섬'으로 불리는 신안군. 보석같이 아름다운 섬이 많아 섬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이곳에 봄이 왔다.

한국에서 4번째로 긴 천사대교가 지난해 건설돼 신안군 중심부의 섬들이 육지와 연결됐다.

신안은 이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국민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경제·관광 측면에서도 신안에 바야흐로 봄이 오고 있다.

신안군은 한반도 최서남단에 있다.

지금은 적지 않은 섬들이 다리로 연결됐지만, 원래는 모두 섬으로 이루어진 고을이다.

1만4천190㎢의 넓은 바다에 1천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섬들의 고향으로 일컬어진다.

신안군 섬은 70여개가 유인도, 900여개가 무인도다.

신안군의 육지 면적은 655㎢로 서울시 면적(605㎢)보다 크다.

바다를 포함한 면적은 전라남도 육지부 면적과 비슷하고 서울시의 20배가 넘는다.

2008년 한국관광공사와 문화관광체육부가 선정한 '휴양하기 좋은 섬, 가고 싶은 섬 30'에 증도, 우이도, 임자도, 비금도, 흑산도, 홍도, 가거도 등 7개가 포함될 만큼 '로망의 섬'들이 무리 지어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섬들이 모여있는 신안군에 지난해 4월 천사대교가 건설됐다.

천사대교는 신안군 압해읍 송공리와 암태면 신석리를 잇는 바다 위 다리로, 길이 7.22㎞, 폭 11.5m의 자동차 전용도로다.

이로써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등 신안군 중부권 섬들이 한꺼번에 육지와 연결됐다.

천사대교는 2010년 7월 착공해 2019년 4월 4일 개통됐다.

공사하는 데 약 9년이 걸렸고 비용도 5천814억원이나 들었다.

인천대교, 광안대교, 서해대교에 이어 4번째로 길다.

다리 위 도로는 국도 2호선에 속한다.

천사대교라는 이름은 주민 공모를 통해 결정됐다.

사업 초기에 잠정적으로 '새천년 다리'라고 불리기도 했으나 공모 결과 주민들은 천사대교라는 명칭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안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이름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천사 섬의 봄
신안군관광협의회는 천사대교 건설로 아끼게 된 물류비를 한해 600억원 정도로 추정했다.

그렇다면 10년 정도면 물류비 절감으로 건설비가 빠지는 셈이다.

협회는 개통 후 1년도 안 된 지금까지 500만 명 이상이 천사대교를 다녀간 것으로 어림잡고 있다.

또 연간 방문객 1천만 명 시대가 머지않다고 보고 있다.

천사대교 건설로 신안군 섬 면적의 약 40%가 육지화됐다.

천사대교 덕택에 다도해에서 제일 큰 축에 속하는 섬들이 육지와 연결된 것이다.

자은도는 한국에서 12번째로 큰 섬이다.

천사대교 건설 전 자은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는 은암대교, 중앙대교, 신안 제1교로 차례차례 연결돼 있었다.

지도를 보면 섬들이 마치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듯하다.

천사대교 건설로 암태도가 압해도와 연결되면서 나머지 섬들도 모두 육지와 연결됐다.

군청 소재지인 압해도는 압해대교로 목포와 연결돼 있다.

천사대교는 사장교 형식과 현수교 형식이 혼합돼 건설된 다리다.

암태도 쪽에 건설된 사장교에는 각각 높이 95m, 135m의 주탑 2개가 세워져 있다.

주경간 길이가 1천4m다.

1004개의 신안군 섬을 상징한다.

135m짜리 주탑 꼭대기는 마름모 모양인데 역시 '신안 다이아몬드 제도'를 형상화한 것이다.

천사대교의 압해도 기점 가까운 곳에는 아름다운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는 천사섬 분재공원이 사색과 휴식의 세계로 이끈다.

매화 분재들은 꽃망울을 터뜨려 봄의 전령을 자처하고 있었다.

압해도에서 천사대교를 건너 처음 도착하는 섬은 암태도다.

암태도는 큰 바위가 많고 바위산이 병풍처럼 섬을 둘러싸고 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섬에 들어서면 분홍 꽃 만발한 애기동백 가로수가 앳된 손짓을 보낸다.

매화인 듯 흰색 꽃을 피운 나무들이 들판 중간중간에 서 있었다.

암태도 기동삼거리에는 살아있는 동백나무를 머리 삼아 이고 있는 노부부 벽화가 행인들을 웃음 짓게 만든다.

군청 직원의 아이디어로 그리게 됐다는데 그림에서 위트와 넉넉함이 배여 난다.

따사로운 봄 햇살 속에 관광객들이 벽화를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는데, 멀찍이 떨어진 평상에서 벽화 주인공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와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림의 주인공이 아니냐고 묻자 한사코 아니라고 하시는데 옆에 앉은 할머니가 맞는다고 확인해준다.

자동차를 타고 신안 섬을 다니다 보면 이곳이 섬이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적지 않다.

섬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섬 사이사이에 간척지가 많아 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농토로 바뀐 간척지에는 봄을 맞아 농작물들이 파릇파릇한 싹을 틔웠다.

신안 섬에 살았던 선조들은 한뼘이라도 농토를 더 확보하기 위해 간척에 온 힘을 쏟았다.

간척은 신안의 문화라고 할 만큼 생활과 역사 깊숙이 자리 잡았다.

땅에 대한 애착은 이곳 농민들의 남다른 쟁의 의식으로 이어졌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3년 8월부터 1년가량 치열하게 전개됐던 소작쟁의는 그런 의식이 표출했던 대표적 사건이다.

암태도 장고마을에는 이를 기리는 '소작인 항쟁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암태도가 바위섬인 데 비해 자은도는 모래섬이다.

자은도 해변 모래는 비단결같이 곱고 부드럽다.

두 섬만 자연이 대비되는 게 아니다.

1천 개 넘는 신안의 섬들은 그 숫자만큼이나 섬마다 자연과 삶의 모습이 다양하다.

자은도 남서쪽 백길해수욕장은 3㎞가 넘는 해안선을 따라 은빛 모래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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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분계해수욕장은 깨끗한 모래사장 옆에 울창한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있다.

조선 시대에 방풍림으로 조성한 소나무들인데 수령이 500년 이상 족히 될 것 같았다.

굵고 우람한 소나무들 사이에 물구나무선 여인의 형상을 한 '여인송'이 단아하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애끓는 사랑에 관한 전설이 얽힌 나무다.

아기자기한 풍광 때문인지 봄맞이 나온 연인들이 더 다정하게 보였다.

둔장어촌체험마을에는 갯벌과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보행교인 '무한다리'가 있다.

신안을 상징하기 위해 길이가 1천4m다.

나무 데크 길이 쾌적하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과 신안의 꿈이 무한히 펼쳐지기를 바라는 기원의 다리다.

자은도에는 억대 부농이 많다고 한다.

땅이 비옥해 땅콩, 마늘, 대파, 양파가 잘 된다.

어린아이 팔뚝만 한 굵은 대파 밭이 푸른 들판을 이루며 끝없이 펼쳐져 있다.

봄을 맞아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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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금도는 새처럼 생긴 여덟 개의 섬을 거느리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안군에서 제일 처음 지어진 신안제1교가 팔금도와 안좌도를 잇고 있다.

조성 시기가 고려 초로 추정되는 팔금삼층석탑이 있어 1천여년 전에 이 외진 섬에 불교가 전파됐음을 알게 한다.

선학산채일봉전망대, 서근등대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일품이다.

안좌도에는 신안이 낳은 세계적 화가 김환기 고택이 있다.

신안군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주민들은 고향을 설명할 때 김환기를 절대 빼놓지 않았다.

그에 대한 큰 애정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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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좌면에서는 섬과 섬을 연결하는 긴 목교가 관광객을 사로잡는다.

두리∼박지도∼반월도를 잇는 '퍼플교'다.

길이가 1.5㎞에 이른다.

배를 타지 않고 걸어서 육지에 가보고 싶다던 할머니들의 소망을 담아 만들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우려도 봄에 대한 갈망을 막지 못하는가 보다.

보라색 퍼플교에는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퍼플교에서 바라보는 갯벌이 광활하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낙지, 꽃게들이 숨어들었는지 작은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다.

바다는 물밑 갯벌에도 놀랍도록 맑은 비췻빛이었다.

바람이 불면 진흙이 일어나 바닷물은 흙빛으로 변하는데 바람 잠잠한 봄날 신안의 바다는 참으로 투명했다.

지난해 개관한 '세계 화석·광물 박물관'은 새 명소다.

신안군이 폐교를 매입해 박물관을 조성했다.

화석류 1천196점, 광물류 648점 등 4천301점을 소장하고 있다.

무심코 들어왔다가 전시 규모와 내용에 놀라고 감탄하게 된다.

전시관 옆에는 주민들이 창작활동을 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방이 마련돼 있다.

학교가 지역의 공공 자산이라는 가치를 소중히 여겨 폐교 부지를 민간에 팔지 않고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유지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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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은 국내 최대 규모의 갯벌이 펼쳐져 있고, 전국 천일염의 70%를 생산하는 드넓은 염전을 보유하는 등 자원이 풍부하고, 사시사철 볼거리가 많다.

때 묻지 않은 원시적 자연풍광이 보존돼 있다.

접근이 쉽지 않은 섬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상업적 개발 광풍을 피할 수 있었다.

관광 자원의 측면에서 보자면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이다.

이곳에 천사대교 건설을 계기로 관광의 문이 활짝 열렸다.

'신안 관광의 봄'이 온 것이다.

바다에 떠 있는 매화보다 아름다운 홍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중심지 흑산도, 중국에서 우는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국토 최서남단 가거도, 해변을 따라 형성된 산들이 웅장한 비금도, 12㎞의 은빛 백사장과 민어가 유명한 임자도, 360년 토지탈환역사와 항쟁 정신이 살아있는 하의도, 중국 송·원대 해저유물이 발견돼 세계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증도….
신안 섬들의 다채로움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저마다 문화와 역사가 매력적인 신안의 섬들이 관광 전성기를 맞더라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독창성을 잃지 않기 바란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