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불법 촬영물 공유 사이트에 제 이름을 검색하면 사진이 나와요.

수많은 여성이 저처럼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보고 있는데 아직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어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A씨(30)는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물을 공유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게만 관심이 쏠리다 보니 정작 디지털 성범죄 해결을 위한 제도적 개선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A씨는 전 남자친구 B씨로부터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봤다.

B씨는 3년 전 A씨가 자는 동안 A씨 나체 사진을 찍어 신상정보와 함께 텀블러와 불법 촬영물 공유 사이트 등에 유포했다.

A씨는 지난달 31일 연합뉴스와 카카오톡을 통한 인터뷰에서 "10곳 이상 불법 촬영물 공유 사이트에서 내 얼굴을 발견했다"며 "미처 찾지 못한 사이트까지 익명으로 알려주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을 처음 발견한 곳도 없어진 줄 알았더니 도메인만 바뀐 채 버젓이 운영되고 있었다"며 n번방 사건이 불법 촬영물 소지·유포자를 처벌하고 이를 공유하는 사이트를 원천 차단할 신호탄이 될 것으로 믿었다고 했다.

해외 서버인 텀블러, 텔레그램 등에서 퍼지는 불법 촬영물을 막기 위한 국제 공조 수사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했다.

[인턴액티브] 조주빈 처벌만큼 중요한 것은…성폭력 피해자에게 물었더니
' />
그러나 A씨가 언급한 불법 촬영물 공유 사이트는 조주빈이 검거된 지 한참 지난 2일에도 운영되고 있었다.

해당 사이트 내 건의사항을 적는 게시판에는 불법 촬영물을 삭제해달라는 피해자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일부 가해자는 불법 촬영물 공유 사이트가 신고 등으로 폐쇄되더라도 기존 사이트 주소를 입력하면 글과 사진을 볼 수 있는 웹 페이지 캡처 사이트에 불법 촬영물을 올리기도 했다.

A씨는 "촘촘한 가해 방식은 나를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힘겹게 불법 촬영물을 삭제해도 2차, 3차 유포를 막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텀블러는 외국 회사라 국내에서 요청해도 쉽게 삭제되지 않는다"며 "본인이 직접 불법 촬영물에 등장하는 사람이라고 얘기를 해야 삭제를 해준다길래 '내가 성범죄 피해자'라는 피켓을 들고 사진을 촬영해 텀블러 측에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인턴액티브] 조주빈 처벌만큼 중요한 것은…성폭력 피해자에게 물었더니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해 온 활동가들도 같은 우려를 표시했다.

10대 성 착취 피해 여성을 중점 지원하는 '십대여성인권센터' 권주리 사무국장은 지난 8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중범죄자인 조주빈이 죗값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지 않으면 제2의 조주빈이 나타나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권 국장은 가해자가 아청법의 허점을 악용해 피해 아동·청소년을 협박하고 신고할 수 없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아청법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이 강제로 성매매에 동원된 경우 피해자로 인정하고 있지만 자발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분류돼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그는 "성인 가해자와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동등한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성매매가 아닌 성 착취로 봐야 한다"며 "성 착취에 유입된 동기와 상관없이 피해를 본 모든 아동·청소년은 처벌이 아닌 보호를 받고 이들을 착취한 가해자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성 산업 구조를 바꾸고 성폭력 방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국장은 "조주빈 등 성폭력 가해자를 악마화하고 그들의 삶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문화적 구조가 성 착취를 용이하게 만들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성폭력 대응센터 활동가들은 범죄 현장에 들어가 피해 촬영물을 수십 시간씩 보고 성 착취 산업에 속해있는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대리 외상 증후군도 겪는다"며 "피해 여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또 다른 여성이 촬영물을 찾아다니는 방식이 아니라 불법 촬영물을 유포하는 것이 더는 돈이 될 수 없게끔 산업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턴액티브] 조주빈 처벌만큼 중요한 것은…성폭력 피해자에게 물었더니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