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28t' 신라 말갑옷 덩이는 어떻게 통째로 보존됐나(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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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보고서 발간…재현품 제작 과정도 소개
"당시 말은 조랑말과 크기 비슷…말갑옷에 남은 식물은 소나무" 그 옛날 신라 무사가 탄 말은 몸에 어떤 갑옷을 둘렀을까.
이 물음에 답할 유물이 지난 2009년 신라 왕족과 귀족 고분이 밀집한 경북 경주 쪽샘유적 동편 C10호 목곽묘(木槨墓·덧널무덤)에서 발견됐다.
출토 당시 말이 착용한 갑옷인 마갑(馬甲)은 바닥에 깔렸으며, 그 위에서 말을 탄 장수가 입은 것으로 짐작되는 찰갑(札甲·비늘식 갑옷)이 발견됐다.
740매로 구성된 마갑은 길이가 약 290㎝, 너비는 약 90㎝, 무게는 약 36㎏이었다.
1천500년 넘게 무덤에서 잠들었다가 빛을 본 신라 마갑은 습기와 자외선으로 인해 훼손될 가능성이 컸다.
이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마갑을 연구실로 옮겼고, 약 10년간 보존처리를 한 뒤 지난해 10월 유물을 언론에 공개했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마갑 연구 성과를 정리해 최근 발간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Ⅹ - C10호 목곽묘 출토 마주·마갑 조사연구 보고서'에서 한때 무게가 28t에 달한 마갑 유구(遺構·건물의 자취) 이동 작업을 상세히 설명했다.
7일 연구소에 따르면 마갑은 목곽 서쪽에서 동쪽으로 목·가슴, 몸통, 엉덩이 순으로 남았다.
주곽에 딸린 매장시설인 부곽(副郭)에서는 말 얼굴 가리개인 마주(馬胄)와 안장, 재갈, 발 받침 등 다양한 마구가 나왔다.
도굴되지 않아 완전한 형태를 갖춘 마갑을 보존하기 위해 연구소는 먼저 가건물을 세웠다.
건물에는 바깥과 온도 차를 줄이기 위한 냉방시설과 습기를 제거하는 제습시설을 설치했다.
문제는 길이 4.4m, 너비 2.2m에 이르는 거대한 마갑 유구를 국내에서 수습한 경험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C10호 목곽묘 토층은 점토질이 있는 흙이 거의 없었고, 10∼30㎝ 크기 냇돌이 포함돼 이동 시 중량을 견디고 무게중심을 잡는 것이 관건이었다.
연구소는 단번에 유구를 옮기지 않고 모의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의 표면을 강화하기 위해 셀룰로스계와 아크릴계 물질을 바르고, 유물에는 용해하기 쉬운 물질로 강화 처리를 했다.
강화제 농도는 5∼20%로 다르게 하고, 한지를 부착했다.
이어 위쪽에 석고붕대를 감싸고 발포 우레탄으로 20㎝ 정도 덮었다.
그다음에는 유구를 들어 올리는 연습을 하기 위해 40㎝ 너비로 흙을 파내고 비닐을 넣어 우레탄을 발포했다.
연습을 마친 연구소는 들뜨거나 분리되는 갑옷 조각을 먼저 빼낸 뒤 2010년 5월 표면 강화 작업을 시작했다.
유구 주변은 연습보다 더 깊은 1.5m 깊이로 파냈다.
보고서는 "가건물을 해체한 뒤 1차 크레인 작업을 했을 때 유구 중량은 28t에 달했다.
보존처리실 문을 통과하려면 높이 조절이 필요했기 때문에 유구를 뒤집어 우레탄과 흙을 걷어냈다"며 "2차 크레인 작업 시 중량은 18t으로 줄어 손상 없이 마갑과 토양을 떼어냈다"고 전했다.
연구소는 보존처리 과정에서 동물 털 흔적을 찾지는 못했으나, 직물이 평견(平絹·평직으로 된 비단)과 마직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평견과 마직물은 몇 가지 종류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아울러 마갑에 남은 나무 흔적을 조사해 소나무임을 밝혔다.
보고서는 "신라시대 목곽 중 수종(樹種) 분석이 된 예는 천마총 밤나무, 황남대총 느티나무가 전부"라며 "소나무가 어떻게 사용됐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갑을 착용한 말 품종에 대해서는 신라 왕성인 경주 월성(月城) 출토 말뼈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월성에서 나온 5세기 말뼈를 보면 당시 말은 높이가 120∼136㎝이며, 평균 128㎝로 판단된다.
보고서는 "마갑을 실제로 입은 말은 현재 조랑말과 유사하거나 조금 큰 말이었을 것"이라며 "당시에는 이러한 말이 우량한 품종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는 다양한 도면과 사진, 엑스레이 촬영 결과를 담았고, 마갑 복원을 위한 연결 방법과 착용 방식 분석에 관한 내용도 수록했다.
연구소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재현품 제작을 완료해 제주 한라마에 입히기도 했다.
심명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현대인이 생각하기에 조랑말이 조금 작기는 하다"며 "말 모형은 관람객이 갑옷 재현품에 집중하도록 일부러 뼈대 형태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갑옷에 칠을 한 흔적이 없어 일부러 불에 달궈 산화층을 만들었다"며 "안장은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유물이 없어 특히 고민해 완성했다"고 덧붙였다.
쪽샘지구 출토 마갑을 얹고 중무장한 기사가 올라타면 말은 대략 120㎏을 지탱해야 한다.
마갑 쓰임새는 의례용이라는 견해와 실전용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심 연구사는 "갑옷을 사용하거나 보수한 흔적이 없으나, 아직은 용도가 무엇인지 결론 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르면 6월께 국립경주박물관과 함께 쪽샘 목곽묘에서 나온 마갑과 재현품·찰갑·무기류를 전시하고, 향후 찰갑 보고서도 펴낼 계획이다.
/연합뉴스
"당시 말은 조랑말과 크기 비슷…말갑옷에 남은 식물은 소나무" 그 옛날 신라 무사가 탄 말은 몸에 어떤 갑옷을 둘렀을까.
이 물음에 답할 유물이 지난 2009년 신라 왕족과 귀족 고분이 밀집한 경북 경주 쪽샘유적 동편 C10호 목곽묘(木槨墓·덧널무덤)에서 발견됐다.
출토 당시 말이 착용한 갑옷인 마갑(馬甲)은 바닥에 깔렸으며, 그 위에서 말을 탄 장수가 입은 것으로 짐작되는 찰갑(札甲·비늘식 갑옷)이 발견됐다.
740매로 구성된 마갑은 길이가 약 290㎝, 너비는 약 90㎝, 무게는 약 36㎏이었다.
1천500년 넘게 무덤에서 잠들었다가 빛을 본 신라 마갑은 습기와 자외선으로 인해 훼손될 가능성이 컸다.
이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마갑을 연구실로 옮겼고, 약 10년간 보존처리를 한 뒤 지난해 10월 유물을 언론에 공개했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마갑 연구 성과를 정리해 최근 발간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Ⅹ - C10호 목곽묘 출토 마주·마갑 조사연구 보고서'에서 한때 무게가 28t에 달한 마갑 유구(遺構·건물의 자취) 이동 작업을 상세히 설명했다.
7일 연구소에 따르면 마갑은 목곽 서쪽에서 동쪽으로 목·가슴, 몸통, 엉덩이 순으로 남았다.
주곽에 딸린 매장시설인 부곽(副郭)에서는 말 얼굴 가리개인 마주(馬胄)와 안장, 재갈, 발 받침 등 다양한 마구가 나왔다.
도굴되지 않아 완전한 형태를 갖춘 마갑을 보존하기 위해 연구소는 먼저 가건물을 세웠다.
건물에는 바깥과 온도 차를 줄이기 위한 냉방시설과 습기를 제거하는 제습시설을 설치했다.
문제는 길이 4.4m, 너비 2.2m에 이르는 거대한 마갑 유구를 국내에서 수습한 경험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C10호 목곽묘 토층은 점토질이 있는 흙이 거의 없었고, 10∼30㎝ 크기 냇돌이 포함돼 이동 시 중량을 견디고 무게중심을 잡는 것이 관건이었다.
연구소는 단번에 유구를 옮기지 않고 모의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의 표면을 강화하기 위해 셀룰로스계와 아크릴계 물질을 바르고, 유물에는 용해하기 쉬운 물질로 강화 처리를 했다.
강화제 농도는 5∼20%로 다르게 하고, 한지를 부착했다.
이어 위쪽에 석고붕대를 감싸고 발포 우레탄으로 20㎝ 정도 덮었다.
그다음에는 유구를 들어 올리는 연습을 하기 위해 40㎝ 너비로 흙을 파내고 비닐을 넣어 우레탄을 발포했다.
연습을 마친 연구소는 들뜨거나 분리되는 갑옷 조각을 먼저 빼낸 뒤 2010년 5월 표면 강화 작업을 시작했다.
유구 주변은 연습보다 더 깊은 1.5m 깊이로 파냈다.
보고서는 "가건물을 해체한 뒤 1차 크레인 작업을 했을 때 유구 중량은 28t에 달했다.
보존처리실 문을 통과하려면 높이 조절이 필요했기 때문에 유구를 뒤집어 우레탄과 흙을 걷어냈다"며 "2차 크레인 작업 시 중량은 18t으로 줄어 손상 없이 마갑과 토양을 떼어냈다"고 전했다.
연구소는 보존처리 과정에서 동물 털 흔적을 찾지는 못했으나, 직물이 평견(平絹·평직으로 된 비단)과 마직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평견과 마직물은 몇 가지 종류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아울러 마갑에 남은 나무 흔적을 조사해 소나무임을 밝혔다.
보고서는 "신라시대 목곽 중 수종(樹種) 분석이 된 예는 천마총 밤나무, 황남대총 느티나무가 전부"라며 "소나무가 어떻게 사용됐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갑을 착용한 말 품종에 대해서는 신라 왕성인 경주 월성(月城) 출토 말뼈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월성에서 나온 5세기 말뼈를 보면 당시 말은 높이가 120∼136㎝이며, 평균 128㎝로 판단된다.
보고서는 "마갑을 실제로 입은 말은 현재 조랑말과 유사하거나 조금 큰 말이었을 것"이라며 "당시에는 이러한 말이 우량한 품종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는 다양한 도면과 사진, 엑스레이 촬영 결과를 담았고, 마갑 복원을 위한 연결 방법과 착용 방식 분석에 관한 내용도 수록했다.
연구소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재현품 제작을 완료해 제주 한라마에 입히기도 했다.
심명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현대인이 생각하기에 조랑말이 조금 작기는 하다"며 "말 모형은 관람객이 갑옷 재현품에 집중하도록 일부러 뼈대 형태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갑옷에 칠을 한 흔적이 없어 일부러 불에 달궈 산화층을 만들었다"며 "안장은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유물이 없어 특히 고민해 완성했다"고 덧붙였다.
쪽샘지구 출토 마갑을 얹고 중무장한 기사가 올라타면 말은 대략 120㎏을 지탱해야 한다.
마갑 쓰임새는 의례용이라는 견해와 실전용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심 연구사는 "갑옷을 사용하거나 보수한 흔적이 없으나, 아직은 용도가 무엇인지 결론 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르면 6월께 국립경주박물관과 함께 쪽샘 목곽묘에서 나온 마갑과 재현품·찰갑·무기류를 전시하고, 향후 찰갑 보고서도 펴낼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