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룹 상장사 102곳 이사회 2천600여개 안건 중 부결 2건…한화·한진 각 1건
기업 경영활동 감시 역할 '미흡'…"사외이사 선임 제도 개선 필요"
재벌기업 사외이사 '거수기' 불변…'부결' 극소수
지난해에도 재벌 기업 사외이사들이 이사회에서 반대표를 던진 경우가 극소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그동안 사외이사 독립성 제고를 위한 정책을 펼쳐왔지만 이른바 '거수기'라는 오명을 씻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올해부터는 상법 시행령 개정으로 사외이사 임기도 최장 6년으로 제한되지만, 사외이사 선임구조를 개선하지 않고는 사외이사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제고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그룹 산하 상장사 102곳이 연 총 971차례 이사회에 2천600여개 안건이 상정됐고 이 중 부결된 안건은 2건에 그쳤다.

이는 투자자들이 사외이사들의 활동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이다.

부결 안건이 있는 상장사는 한화와 한진으로 각 1건이다.

한화는 지난해 12월 이사회에 상정된 '계열금융사와의 거래한도 승인의 건'으로 사외이사 5명과 사내이사 1명의 반대로 부결됐다.

사내이사 2명은 찬성표를 던졌다.

한화는 사업보고서 주석에 "거래 한도금액이 과다하다는 다수 이사의 의견을 근거로 부결됐고 계열금융사와의 거래한도 수정안 승인의 건으로 재부의돼 승인됐다"고 설명했다.

한진은 지난해 3월 초 열린 이사회에 상정된 '주주제안 안건 상정 여부의 건'으로 사내이사 2명과 사외이사 2명 모두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다.

부결 처리되지는 않았지만 롯데쇼핑의 경우 지난해 12월 이사회에서 5개 안건이 '보류' 처리됐다.

마트 주엽점 현물출자의 건, 마트 주엽점 폐점의 건, 마트 주엽점 문화센터 폐쇄의 건, 신규법인(FMH) 설립의 건, FLK홀딩스(US) 투자계약 체결의 건 등이다.

그 외 나머지는 모두 '가결' 처리됐다.

사실상 전체 안건의 99.7% 수준이다.

다른 재벌 기업도 사정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재벌기업 사외이사 '거수기' 불변…'부결' 극소수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전자를 비롯한 산하 16개 상장사의 사외이사가 57명에 달했는데 그 누구도 이사회에서 '반대표'를 던진 경우는 없었고 현대차그룹 산하 12개 상장사 사외이사 50명도 마찬가지다.

SK그룹(59명), LG그룹(42명), GS그룹(22명), 신세계그룹(23명), 현대중공업그룹(19명) 등도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한 사례가 없다.

한화그룹(31명)과 한진그룹(18명)도 부결 안건 1건씩 외에는 반대표가 없었고 롯데그룹(41명)도 롯데쇼핑에서 보류 안건이 5건 있던 것 외에 롯데지주 등 다른 9개 상장사에서 사외이사 반대 의사는 전무했다.

이처럼 사외이사의 반대 의견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안건 상정 전에 사전조율을 거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주요 현안에 대한 총수나 경영진의 결정에 쉽게 반대하지 못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사외이사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그 이듬해 도입한 제도로서 회사 경영을 직접 담당하는 사내이사 외에 외부 전문가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막자는 게 취지다.

특히 재벌 기업의 경우 총수나 경영진이 횡령과 회계 조작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 만큼 그 역할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컸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사외이사들이 오히려 대주주와 경영진 편에 서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고 그동안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사외이사 자리를 총수 일가나 경영진과 같은 고교·대학 출신이 차지하거나 계열사 임원 출신, 그룹 자문계약이나 지분거래 관계에 있는 기업 출신 등이 채우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또 경영 자문 역할을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인물을 뽑기보다는 검찰, 법원,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주요 권력기관 출신을 '방패막이'용으로 영입한다는 지적도 있다.
재벌기업 사외이사 '거수기' 불변…'부결' 극소수
정부가 기관투자자 역할을 강화하는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 원칙)'를 도입한 것도 사외이사 역할이 미흡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아울러 '노동이사제'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외이사가 그만큼 제 역할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상법 시행령을 개정해 올해부터 사외이사 임기를 최장 6년으로 제한했다.

장기간 연임하면서 경영진과 유착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외이사 선임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할 때 총수 일가나 측근인 사내이사가 참여할 경우 제대로 된 사외이사를 선발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지난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5명으로 구성됐는데 정몽구 회장과 이원희 사장이 포함돼 있고 3명은 사외이사다.

올해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정몽구 회장 자리를 대신했다.

SK 사외이사후보추천위는 사내이사 1명과 사외이사 2명으로 구성됐는데 장동현 사장이 포함돼 있고 LG전자 사외이사후보추천위도 3명 중 1명이 조성진 부회장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를 사외이사 3명으로만 구성했다.

삼성전자는 2017년 사외이사후보추천위를 4명으로 구성했고 그 중 한명이 권오현 회장이었는데 2018년부터는 사외이사 3명으로만 구성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사외이사 독립성을 담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선임 제도인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며 "감사위원회 분리 선임 제도나 직접투표제, 특수관계인 의결권 제한 등이 없는 상황에서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뽑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상법 시행령 개정으로 사외이사 임기가 6년으로 제한되더라도 전직 관료나 검사, 판사 출신 등에 대한 수요가 계속 있으니 6년씩 돌아가며 다른 회사에 가서 사외이사를 할 수 있는 만큼 근본적인 해법이 되진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