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는 그간 전주의 그늘에 가려진 곳이었다.

그러나 웬걸 이번에 발견한 다양한 여행지들은 전주를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완전 소중한'이란 뜻을 가진 신조어 '완소'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고을이다.

[여기 어때] 완소(完所) 완주(完州)
◇ BTS 다녀간 아원, 그리고 오성한옥마을
요즘 완주에서 뜨고 있다는 완주군 소양면의 오성한옥마을을 찾았다.

20채가량의 한옥이 위봉산 자락 남서쪽에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처음 둘러본 곳은 아원이라는 이름의 고택이었는데 1층은 현대적인 갤러리다.

갤러리를 둘러보고 있는데 우르릉 소리를 내며 갤러리 천장이 열렸다.

천장 위로는 우뚝 솟은 한옥 지붕이 보인다.

구조가 궁금해 좁은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니 새 세상이 펼쳐졌다.

갤러리 천장은 이 한옥 앞에 펼쳐진 연못이었다.

한옥의 연못이 둘로 갈라지면서 아래층에 있는 갤러리 천장이 펼쳐진 것이었다.

위쪽에서 다시 한번 연못이 열리는 장면을 보여달라고 했다.

파문을 일으키며 열리는 연못 아래로 로보트 태권V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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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이 '2019 써머 패키지 in 한국'을 촬영한 곳이 이 아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방탄소년단 팬 모임인 아미(ARMY)라면 모르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한옥마을이다.

이곳의 랜드마크는 경남 진주에 있던 250년 고택을 옮겨와 건축한 아원이다.

경남 진주 땅에서 굴러들어온 돌이 전북 완주 땅에 박힌 돌이 된 것이다.

고택이 옮겨진 뒤 자리를 잡는 데는 6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화장을 했으니 미모가 소문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완주군도 이 지역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이곳에 한옥을 짓는 사람들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많은 정성을 쏟았다.

지금 이곳에 들어선 한옥들은 대부분 모던한 스타일의 한옥이다.

한옥에 머무를 수도 있으며, 한옥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전주 사람들이라고 한다.

물론 아원 고택에서의 숙박도 가능하지만, 가격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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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오성한옥마을이지만, 저수지가 있는 쪽에 자리 잡은 한옥 카페 겸 민박인 오성다원은 합리적인 가격에 머무를 수 있다.

오성다원이 접하고 있는 오성저수지 둑 위에는 BTS가 화보 촬영을 했다는 소나무 한그루가 멋스러운 자태로 서 있다.

오성다원에서는 다도체험 등 다양한 체험활동이 이뤄진다.

이곳에서 숙박한 뒤 아침에 본 안개는 신비로웠다.

저수지 위로 하얗게 깔린 안개는 마치 일본 규슈 유후인 지역의 유명한 호수인 긴린코(金鱗湖) 같다는 느낌을 줬다.

◇ 삼례문화예술촌과 비비정예술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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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선 삼례역이 있는 삼례면에는 일본인 지주가 세운 미곡 창고를 개조한 삼례문화예술촌이 있다.

1926년 세워진 미곡 창고는 일제강점기 양곡 수탈을 위한 것이었다.

6개 동의 미곡 창고는 지금 디자인박물관과 책 박물관, 책 공방, 미술관과 목공소, 카페 등으로 개조돼 사용하고 있다.

내부에는 쌀가마가 벽과 닿지 않도록 덧댄 목재가 빗금무늬를 만들고 있다.

바로 옆에는 게스트하우스도 들어서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젊은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걸어서 3분 거리에는 역시 옛 미곡 창고를 개조한 삼례책마을이 있다.

삼례책마을 입구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동상이 걸터앉아 있다.

내부로 들어서니 중고서적들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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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를 가면 빠지지 않고 봐야 할 곳이 비비정(飛飛亭)이다.

조선 중기에 지어졌던 정자를 최근 복원한 비비정에 오르니 저 아래쪽 만경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때마침 저녁나절이어서 철교 위 열차 카페가 눈에 띈다.

비비정예술열차다.

이 기차 카페는 마치 기차가 다리 위에 정차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 기차를 개조한 카페라고 한다.

카페 내부로 들어갔더니 마치 열차에 탄 채 만경강을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들었는데 날이 궂었던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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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늙은 절 한 채' 화암사
시인 안도현은 완주 경천면 불명산 자락에 있는 작은 절 화암사(花巖寺)를 사랑했다.

그래서 '화암사, 내 사랑'이라는 시까지 썼다.

그가 쓴 시 일부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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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라고 마무리한다.

시인이 가는 길을 알려주지 않겠다니… 몹시도 찾아가고 싶게 한다.

이보다 더 강력한 추천사가 있을까.

그래서 찾아 나섰다.

주차장에서 화암사까지는 어른 걸음걸이로 대략 20여 분가량 걸린다.

길이라고 해봤자 냇가 옆으로 난 작은 오솔길이 전부다.

고불고불한 냇가 옆 오솔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니 삭은 철계단이 보인다.

긴 세월의 흔적이다.

철계단이 끝난 뒤 왼편으로 난 개울길을 다시 걸어 올라가니 그야말로 잘 늙은 절 한 채가 눈에 띈다.

어떻게 저렇게 잘 늙었을까.

이렇게 깊은 산골에 있었던 덕에 환란도 피했을 것이다.

절은 단청도 없이 늙은 민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데 밉지가 않다.

화장도 안 한 늙은 절이 이렇게 곱다니.
1605년에 증축한 보물 663호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맞배지붕 형태이며, 국내에서 유일한 하앙식(下昻式) 목조 건축물이다.

하앙(下昻)이란 지붕을 더 내기 위해 처마 아래를 떠받치는 장치로, 중국과 일본에서는 흔하다.

동행한 강종임 완주군 문화관광해설사는 화암사의 하앙이 중국에서 곧바로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일본의 주장을 뒤엎고 우리나라를 통해 일본으로 전수된 증거가 됐다고 말한다.

마루에 걸터앉아 풍경소리를 들었다.

왼편 산허리에서 송골매 한 마리가 바람을 타고 활강한다.

슬슬 내려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산문을 나섰다.

카메라를 맨 사람이 보여서 다가갔더니 노란 복수초 사진을 찍고 있다.

4월에 피는 복수초를 화암사 자락에서 벌써 만났다.

나도 화암사 가는 길은 굳이 알려주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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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속 등대
산속에 등대가 있다고? 잘 지어진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무릎을 '탁' 쳤다.

산속 등대는 수십 년간 방치돼 있던 완주군 소양면의 종이 재생 공장을 꾸며 개관한 전시공간 겸 카페다.

모두 2만6천㎡ 규모의 공간에는 버려져 있던 공장 건물과 미술관 문화놀이터인 어뮤즈월드, 공연장 등이 어우러져 있다.

연기를 뿜던 굴뚝은 빨간색 등대 모양으로 변했다.

연인들이 찾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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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주의 먹거리
전주역에 내려 완주로 들어가서 처음 만난 것이 1957년부터 영업해 온 소양면의 '화심두부'다.

60년 전통을 가진 곳답게 순두부 맛이 깔끔하다.

새로운 메뉴라는 매운고추만두를 시켜봤는데 속이 알차다.

한입 베어 물어보니 횡재한 기분이 든다.

60년 전통의 식당이지만 이렇게 감동을 주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특이한 것은 두부 한모를 시켜 먹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완주의 먹거리로 또 한가지 유명한 것은 완주 한우다.

전북에서는 전통적으로 장수 한우가 유명하지만, 완주 한우도 그에 못지않은 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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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한우는 고산면의 완주 한우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고산味소'를 찾아갈 것을 권한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바로 이어주는 직영매장이기 때문이다.

고기를 골라 2층으로 올라와 식사하는 방식이다.

고산미소 바로 앞에는 완주군이 건물을 지어 사회적기업에 운영을 위탁한 작은 카페 '다락'이 있다.

여느 카페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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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