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진실성위, 책·논문 등 저작 14건 '표절' 또는 '자기표절' 결론
"연구윤리 위반 정도 중대"…배 교수 "서론·각주 문헌 포괄적 표시…표절 아냐" 주장
탐사보도팀 = 서울대가 배철현 전 종교학과 교수의 책과 논문 등 14건의 저작에 대해 표절을 공식 인정했다.

배 전 교수의 표절 의혹을 최초로 제기했던 페이스북 커뮤니티 '신학 서적 표절 반대'의 운영자인 이성하 원주 가현침례교회 목사는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로부터 표절 의혹 제보에 대한 심사 결과를 공문으로 받았다고 28일 밝혔다.

공문에 따르면 위원회는 지난해 신학 서적 표절 반대가 제기한 14건의 표절 의혹을 '연구 부정행위'로 규정했다.

대표적으로 배 전 교수의 유명 학술 저서인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한님성서연구소·2001)에 대해서는 '한 단원의 내용을 그대로 번역하거나 원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고도 문헌 표시가 없는 점'을 지적했다.

위원회는 이 책이 모두 3개의 외국 학술 저서를 베꼈다고 판단했다.

'오리엔탈리즘과 오리엔탈 르네상스' 등 13편의 논문에 대해서는 배 전 교수가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을 대부분 그대로 활용해 다른 논문을 쓰고도 출처 표기를 하지 않는 '자기 표절'을 했고, 다른 학자의 논문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도 문헌 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위원회는 설명했다.

위원회는 전체 14건 중 5건이 '자기표절', 나머지 8건이 표절에 해당하며, 나머지 1건은 자기표절과 표절 모두에 해당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이를 바탕으로 서울대 연구윤리지침 위반 여부를 판단한 결과 자기표절과 같은 부당중복사용으로 인한 '연구 부적절행위'는 6건이라고 밝혔다.

다른 사람의 글과 생각을 자신의 것처럼 표현하는 등의 가장행위로 인한 '연구 부정행위'는 6건, 출처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의 인용 부적절로 인한 '연구 부적절행위'는 3건 등으로 조사됐다.

배 전 교수는 이번 조사와 관련해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의 일부를 학계에 소개한, 정당한 학문적인 활동'이라고 주장하고, 표절 의혹에 대해 '대상 문헌들을 서론이나 각주 부분에서 포괄적으로 표시했으므로 표절 등 연구 진실성 위반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위원회는 "제보, 배 전 교수의 소명서, 예비조사 결과보고서, 본조사 결과보고서, 의혹 문헌들과 대상 문헌들의 내용 등 기록을 종합하면 이와 같은(연구 부정행위) 사실들을 인정할 수 있고 이를 뒤집을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어 배 전 교수의 연구윤리위반 정도와 관련해 "회수와 분량, 시기, 인용 표시의 방식 및 인용 부분의 비중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중대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는 지난해 1월 이 목사 측으로부터 제보를 받아 배 전 교수의 저서와 논문 등 28건의 저작 활동에 대한 표절 의혹을 집중적으로 취재했으며, 이를 [표절의 해부]와 [탐사 내시경] 시리즈로 보도한 바 있다.

취재 결과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의 경우 책 대부분이 유명한 영미권 학자의 책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책은 타르굼(예수 시대에 쓰이던 아람어로 구약성경을 번역한 것)을 최초로 우리말로 옮기고 상세한 역주 해설을 달았다는 점에서 출간 당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배 전 교수가 서울대에 임용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이 제기될 당시 배 전 교수는 TV 출연과 대중 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하는 '스타 인문학자'였으며, 민간 인문학 강의 기관인 '건명원'의 원장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배 전 교수는 표절 의혹이 불거지자 곧바로 서울대에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건명원에서도 모든 직위를 반납하고 물러났다.

한님성서연구소는 배 교수의 저서에 대해 절판을 결정했다.

서울대는 배 전 교수의 의혹이 대부분 거의 사실로 드러나는 상황에서도 자세한 조사나 징계 없이 배 전 교수의 사직을 수용해 '면죄부 주기'라는 비판이 일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