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믿지 않는 나이 지긋한 여성이 있다.

첫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유학 시절 만난 남편과도 이혼한 독문과 교수 미호가 주인공이다.

안식년을 맞은 그는 '헤밍웨이 문학 기행' 대열에 합류해 미국 마이애미와 키웨스트를 찾던 길에 첫사랑과 우연히 재회할 기회가 생긴다.

40년 전 헤어진 요셉을 뉴욕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마침 뉴욕에는 그에게 상처를 줬던 어머니가 동생 집에 머물고 있다.

공지영이 2년 만에 내놓는 열세번째 장편소설 '먼 바다'(해냄 펴냄)는 이처럼 묘한 구조를 통해 인생에서 반복되는 사랑, 아픔, 극복과 화해를 이야기한다.

두 사람이 헤어지던 1980년은 격동의 시기였다.

대학교수이던 미호의 부친은 반정부 인사로 낙인찍혀 해직당한 끝에 피폐한 삶을 살게 된다.

신학생이었던 요셉은 당시 여고생이던 미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갑작스레 험난해진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미호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상처받은 요셉은 일찌감치 결혼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소설은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두 사람 사이에 불규칙하게 쌓인 기억의 퍼즐을 풀어나간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많이 변해 있었고, 마지막 순간에 대한 기억도 서로 다르다.

그녀는 믿었고 그는 사랑했었다…공지영 '먼 바다'
미호는 많이 달라진 요셉을 만나며 과거 그 시절 상처를 떠올리고 아파하지만, 결국 아픔을 준 모든 이들을 용서하고 화해한다.

요셉도, 어머니도 모두 따뜻하게 끌어안는다.

도망치지 않고 직면하면서 '먼 바다'를 향해 다시 나아간다.

미호는 새삼 깨닫는다.

두 사람이 서해 바닷가에서 마지막을 보낼 때 그는 요셉을 믿었고 요셉은 그를 사랑하고 걱정했다.

소설에는 '원조 마초' 헤밍웨이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 나오는 저자와 일본 여인 아사코의 로맨스도 등장한다.

첫사랑의 아련한 느낌과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쉬움을 상징하는 문학적 장치로 읽힌다.

공간적 배경에 헤밍웨이가 가장 사랑했고 생을 마감했던 장소인 미국 최남단 키웨스트가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 듯하다.

586세대 작가인 공지영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1980년 광주, 전두환, 박정희, 독재, 고문, 최루탄 등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키워드나 배경으로 등장하는 점도 여전하다.

만남과 헤어짐 속에 아파하는 주인공 때문에 자전적 소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공지영은 작가의 말에서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처지가 슬프지만 이 소설은 당연히 허구"라고 했다.

1988년 등단한 공지영은 1993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로 국내에 페미니즘 문학 선풍을 일으켰다.

'고등어', '인간에 대한 예의', '봉순이 언니', '도가니' 등 만은 베스트셀러를 남겼다.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받았다.

그녀는 믿었고 그는 사랑했었다…공지영 '먼 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