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중국을 강타하고 전 세계로 확산 중이다.
세계 각국이 나름의 방역시스템을 꾸리고 새 감염병에 맞서고 있지만, 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에 '희망'으로 거론되는 게 날씨다.
지금이 무슨 전염병이 창궐하던 중세시대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지만, 아직 인류는 변이를 거듭하는 미지의 바이러스에 대항할 힘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게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바이러스를 날씨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건 바이러스가 온도와 습도가 낮을수록 더 오래 살아남고, 온도와 습도가 높을수록 취약해지는 특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독감(인플루엔자)으로 대표되는 유행성 열성 호흡기질환이 매년 날씨가 춥고 건조한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유행하는 게 이를 잘 대변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차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주지사들과의 비즈니스 세션 행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4월에는 사라질 것"이라며 "열기가 이러한 종류의 바이러스를 죽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과연 사실일까.
이를 확인하려면 먼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와 염기서열이 80% 가까이 유사한 것으로 분석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응용과 환경 미생물학'(Applied and environmental microbiology)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사스 코로나바이러스는 섭씨 4도의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최장 28일간 생존했다.
낮은 기온이 최적의 생존 환경을 제공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는 기온이 20도, 40도로 점차 올라가자 빠르게 불활성화되는 특징을 보였다.
습도는 20% 수준으로 아주 낮거나 80% 이상으로 아주 높을 때 바이러스의 활성도가 낮았다.
홍콩대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바이러스학 발달'(Advances in virology)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도 사스 코로나바이러스의 비슷한 특징이 관찰된다.
연구팀의 실험 결과, 사스 코로나바이러스는 섭씨 22∼25도의 온도와 40∼50%의 습도에서 숙주 없이도 5일 이상 생존했다.
하지만 온도를 38도로 높이고, 상대 습도도 95% 수준으로 올리자 이 바이러스는 생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연구팀은 이 연구 결과에 대해 온도가 높고 상대습도가 높은 일부 아시아 열대지역(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 왜 사스가 발생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2002년 겨울(12월 말)에 처음 등장한 사스는 이듬해 여름(7월)에 소멸해 이런 계절적 특성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사스에 이어 2015년 중동과 우리나라에서 큰 유행을 일으킨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는 양상이 달랐다.
날이 더워지는 2015년 5월에 시작해 그해 겨울인 12월이 돼서야 종식된 것이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감염과 공중보건 저널'(Journal of infection and public health)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는 계절적인 양상이 사스 코로나바이러스와 확연히 대비된다.
연구팀은 이 논문에서 고온과 높은 자외선지수가 메르스 발병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봤다.
그 위험도는 각각 1.1배, 1.4배였다.
반면 낮은 상대습도와 느린 바람은 메르스 발생률을 낮추는 요인이었다.
국내 전문가들은 사스와 메르스의 이런 차이점을 들어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행에 계절적인 영향을 예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또한 싱가포르, 마카오, 홍콩 등의 더운 지역에서도 신종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점으로 볼 때 바이러스 자체가 고온과 다습에 약하다는 것도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이번 신종코로나가 메르스보다 사스와 더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볼 때 향후 사스와 비슷한 추이를 보일 수 있다는 전망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이종구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최근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처방안 긴급토론회에서 "사스를 예로 들자면, 이번에도 겨울에 시작해 여름에 끝나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