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아이오와주 코커스(경선)가 혼란으로 얼룩지면서 미국의 대통령 선거 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당장 미국 50개 주와 미국령 중 약 10곳이 채택하고 있는 코커스의 신뢰성에 금이 갔다. 아이오와 코커스가 누려온 ‘대선 풍향계’로서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전체 득표수에서 앞서고도 선거에선 패할 수 있는 미국의 독특한 선거 제도도 논란이 되고 있다.


코커스 신뢰성 흔들

아이오와 코커스는 지난 3일(현지시간) 투표 종료 후 최종 개표가 완료되기까지 만 3일이 걸렸다. 특히 투표 종료 당일부터 다음날 오후 5시까지 개표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개표 불발’ 사태도 벌어졌다.

아이오와 민주당은 개표 지연 이유에 대해 투표 결과를 집계하는 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단지 이 문제뿐만이 아니다. 코커스라는 복잡한 선거제도, 지역당과 자원봉사자 중심의 ‘아마추어적’ 선거 관리도 혼란을 증폭한 요인으로 꼽힌다.

'개표참사' 코커스 신뢰 흔들…득표 많아도 지는 '이상한 선거'
아이오와 코커스는 각 후보에게 할당할 대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두 차례 투표를 한다. 1차 투표는 유권자(당원)가 가장 선호하는 후보에게 투표한다. 이어 2차 투표는 1차 투표에서 15% 미만을 득표한 후보자를 빼고 이뤄진다. 보통 학교 강당이나 타운홀에서 유권자들이 각 후보 이름이 적힌 손팻말 뒤에 모이고 진행요원이 숫자를 세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보니 1, 2차 투표 결과를 집계한 기록지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NBC는 1700여 개 선거구 중 최소 77곳에서 1, 2차 투표의 수치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100곳 이상에서 수치 간 불일치, 자료 누락 등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주정부가 선거를 관리하고 일반적인 선거 투표와 비슷한 프라이머리 방식의 경선에선 나오기 힘든 오류다.

문제가 커지자 중앙당 격인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의 톰 페레스 위원장이 아이오와 민주당에 “즉시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을 정도다. 아이오와주 민주당은 이를 거부하고 최종 개표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1위인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26.2%)과 2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26.1%)의 격차가 0.1%포인트에 불과한 데다 이미 개표 과정의 신뢰성에 금이 갈 대로 간 뒤였다. 이런 이유로 공식 개표 언론 역할을 하는 AP통신은 아이오와 민주당이 최종 결과를 발표한 뒤에도 누가 아이오와 경선의 승자인지에 대해 확정 보도를 보류했다.

아이오와 경선이 대혼란에 빠지면서 코커스 방식으로 경선을 치르는 다른 주도 비상이 걸렸다. 22일 코커스를 여는 네바다주는 당초 아이오와주와 같은 앱을 사용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개표참사' 코커스 신뢰 흔들…득표 많아도 지는 '이상한 선거'
‘아이오와, 대표성 과도’ 지적

아이오와 경선 참사를 계기로 과연 아이오와가 첫 경선지로 적합하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이오와는 인구가 315만 명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1%가 안 된다. 게다가 인구 90%가 백인이고 주요 산업은 농업이다. 미국 사회의 인종적 다양성과 산업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두 번째로 경선을 치르는 뉴햄프셔주도 비슷한 지적을 받는다. 뉴햄프셔주는 인구가 135만 명으로 아이오와주보다도 적고 백인 비율 역시 90%대에 달한다.

특히 민주당의 주요 지지층은 흑인과 히스패닉 등 유색인종이다. 지지 지역은 미 동부와 서부 해안이다. 주로 대도시가 지지 기반이고 산업적으로 보면 정보기술(IT), 금융 등 부가가치가 큰 산업 비중이 높다. 그럼에도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주가 미국 50개 주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로 경선을 치르면서 대선 판도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4위로 밀려나고 뉴햄프셔주에서도 고전하면서 대세론에 상처를 입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이런 비판에 가세했다. 그는 8일 뉴햄프셔주 유세 후 기자들에게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선이 치러지는 아이오와주, 뉴햄프셔주에 대해 “전체 결과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다”며 “(나에 대한) 사망 보도는 너무 성급하다”고 했다. 자신이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선 여전히 민주당 경선주자 중 선두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오와가 ‘대선 풍향계’로서 역할을 해왔다는 시각도 여전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8년 경선 때 거물 힐러리 클린턴을 꺾으며 파란을 일으켰고 결국 백악관에 입성했다. 부티지지는 아이오와주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백인 오바마’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득표수 많아도 지는 선거 제도도 논란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샌더스는 득표수에서 부티지지를 앞섰다. 1차 투표에선 약 6000표, 2차 투표에선 약 2600표를 더 받았다. 하지만 전체 선거구에 할당된 총 2152명의 주 대의원 기준으로는 부티지지가 564명, 샌더스가 562명을 확보해 부티지지가 앞섰다. 주 대의원 확보수를 기준으로 한 득표율에서 부티지지가 26.2%, 샌더스가 26.1%를 기록한 이유다.

샌더스는 아이오와주 민주당이 100% 집계를 완료했을 때 득표율 격차가 0.1%포인트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자 자신이 1차 투표에서 6000표 이상 앞섰다는 점을 내세워 ‘선거 승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아이오와 민주당의 개표 결과가 그대로 확정되면 미국 선거 제도상 아이오와주 승리 후보는 부티지지로 기록된다. 미국은 총득표수보다 선거구별 승리를 중요하게 따지는 간선제이기 때문이다.

주 경선뿐 아니라 미 대선도 마찬가지다. 2016년 대선 때 힐러리는 전국적으로 6585만 표를 얻어 6298만 표에 그친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 하지만 카운티(선거구 단위) 기준으론 힐러리가 503곳, 트럼프가 2649곳을 이겼고 그 결과 트럼프는 전국에 배정된 538명의 선거인단 중 306명을 얻어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대통령 선거제도를 득표수가 가장 많은 후보가 당선되는 직선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대세는 아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