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룬다티 장편 '지복의 성자' 국내 출간

매일 빈곤에 허덕이고 억압과 멸시를 받는다고 해도 "내일도 이렇게 살아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있다.

자유, 인권, 복지 같은 단어는 이들에게 사치일 뿐이다.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상을 받았던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오랜 침묵을 깨고 지난 2017년 신작으로 내놓은 장편소설 '지복의 성자'(문학동네 펴냄)는 이런 참혹한 현실을 형상화하며 비루한 이들을 어루만진다.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인도 델리와 카슈미르 지역을 배경으로 장대한 인간사가 펼쳐진다.

무려 10년간 집필한 작품이라고 한다.

계급, 종교, 파벌 등 인간이 만들어놓은 족쇄에 의해 일상이 갈등과 억압에 놓인 인도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자유가 없는 노예와 같은 삶을 대다수 민초가 살아야만 하는 비극의 땅 인도. 게다가 여러 부당한 권력에 의해 이뤄지는 학살과 가혹행위는 억압 속 현실에서 적어도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고마운 일로 느껴지게 한다.

작가는 이런 혹독한 인도인의 삶을 타자를 바라보는 외부인의 시선이 아닌, 철저히 내부자의 시각으로 형상화하며 공감하고 어루만진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이후 카슈미르에서 끊임없이 계속된 분쟁과 내전, 2002년 구자라트에서 이슬람교도를 상대로 벌어진 대량 학살 등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썼기에 더욱 현실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도 수호 성자는 있다
특히 작가는 인간의 무지, 이념, 교조적 사고, 확증편향 등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작품 곳곳에서 드러낸다.

다만 단순히 문제의식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오류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길을 모색한다.

작가가 말한 '지복의 성자'는 페르시아 출신 성인 '하즈라트 사르마드'이다.

그는 알라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자 이슬람 신앙고백문의 형식적 암송을 거부하다 처형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성자가 된다.

이는 다양성과 상호 이해, 사랑이라는 궁극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작품의 주제 의식을 함축한다.

남녀 성기를 함께 지닌 채 태어난 '히즈라'(제3의 성)가 역경을 극복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안식처를 건설하는 이야기, 네 명의 남녀 친구가 불가해한 운명 속에서 얽히고설키며 겸허히 삶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인간성에 대한 희망과 사랑을 말한다.

로이는 1997년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상을 받으며 세계적 작가로 이름을 알렸고, 사회운동가와 영화인으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다양한 글을 썼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린 적도 있다.

민승남 옮김.


/연합뉴스